[손현덕칼럼] 타는 간절함으로

손현덕 기자(ubsohn@mk.co.kr) 2023. 1. 2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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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와 전략은 곁가지
의도보다는 시도가 중요
무법노조와 北지하조직은
간절함 없인 척결 못한다

매일경제는 작년 말 일본경제신문사에서 디지털 사업을 총괄하는 와타나베 히로유키 전무에게 특별강연을 주문했다. 주제는 '닛케이 전자판은 어떻게 성공했는가'였다. 모든 전통 언론들의 당면 이슈인 디지털 뉴스의 유료화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2010년 닛케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일본 언론계는 다들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내부도 그랬다. 그러나 와타나베 전무는 보란 듯이 해냈다. 현재는 유료 구독자 80만명. 성과가 가시화되자 냉소와 비난은 눈 녹듯 사라졌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물적 토대를 이룬 박정희 전 대통령. 누가 뭐래도 조국 근대화에 그의 공을 빼놓을 순 없다. 1969년 10월 10일 박 대통령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 가시밭이었음을 대국민 담화로 호소한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다 매국노라는 욕을 듣고 남의 나라 돈 빌려와 경제 건설한다고 차관망국이라 비난하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분을 토해낸다. 비장하다.

"만일, 우리가 그때 야당의 반대를 못 이겨 이를 중단하거나 포기했더라면, 과연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설 땅은 어디겠습니까. 내가 만일, 야당의 반대에 굴복하여 물에 물 탄 듯 소신 없는 일만 해왔더라면, 나를 가리켜 그들은 독재자라고는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공간, 다른 시간대의 두 사례에서 나는 공통된 성공 요인을 찾았다. 아이디어나 전략은 곁가지다. 성공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언컨대 간절함이었다.

닛케이는 유료화를 하면서 월 4000엔의 구독료를 받았다. 포르노 사이트를 만드느냐는 조롱이 빗발쳤다. 조롱은 오히려 간절함을 키웠다. 닛케이는 철저하게 고객에게만 집중했다. 기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와타나베 전무는 말했다. "기사를 전달하는 건 우리가 전문이다. 기자들은 빠져라. 결과로 보여주겠다." 결과가 나오자 시끄럽던 기자들은 침묵했다.

박정희의 담화를 민주투사들은 영구 집권을 위한 궤변이라고도 비난했다. 그 시대 저항시인 김지하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러나 박정희는 타는 간절함으로 조국 근대화를 꿈꿨다.

그는 "값싼 인기에 영합하고 편안한 길을 가려면, 나에게도 얼마든지 쉬운 길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나를 버리고 국가를 위해 십자가를 지겠다"고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의 뼈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닛케이도, 박정희도 성공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속이 타들어 가는 간절함으로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실패한다면 역적이 될 판이었다. 세상사 늘 그렇듯이 의도보다는 시도가 중요하고 얻어맞고 부서지는 과정에서의 간절함은 어떤 내용과 형식보다도 강력하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에게 그런 간절함이 보인다. 노조의 부패와 폭력과 무법을 척결하겠다고 나선 거라든지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는 북한의 지하조직을 뿌리 뽑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건 간절함이 없으면 못할 일이다.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라도, 영광보다는 상처가 크더라도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라는 믿음이 그에겐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함이 "그거 못하면 우리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는 투지와 결기로 전이됐다. 거대한 기득권의 저항과 이념으로 뭉친 일각의 비우호적 여론은 오히려 위장된 축복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용산 집무실 책상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선물한 팻말이 놓여 있다. 영어로 'The BUCK STOPS Here!'라고 쓰여 있다. 모든 책임은 여기서 끝난다는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의 경구. 그러나 말로는 누가 못하나. 의도가 아니라 시도가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 테니스의 간판 권순우 선수가 지난주 호주에서 투어 우승을 하고 나서 한 인터뷰가 생각난다. "한 경기 한 경기 이길 때마다 간절함이 커졌다"고. 그래 중요한 건 간절함이었다. 그 간절함이 1등과 2등을 가른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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