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아르헨도 '脫달러' 신호탄 쐈다

이태규 기자 2023. 1. 2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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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판 유로 '수르' 개발 추진
룰라 대통령, 취임 후 아르헨 방문
정상회담서 공동통화 창설 공식화
양국 경제상황 달라 비현실 평가도
亞 12개국 脫달러화 실험 거세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왼쪽) 브라질 대통령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23일(현지 시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통령궁에서 정상 합의문에 서명한 후 손을 맞잡고 있다. AFP연합뉴스
[서울경제]

라틴아메리카의 양대 경제대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남미판 ‘유로화’를 개발하기로 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이 너무 달라 현실성이 없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지만 그만큼 미국 ‘달러 패권’에 대한 각국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23일(현지 시간)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취임 이후 첫 해외 순방국으로 아르헨티나를 택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을 열고 “달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공동 통화 개발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측은 전날에도 공동 통화를 개발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하고 “금융 및 상업 부문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남미 공동 통화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 관련 비용과 외부 취약성을 줄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브라질은 새 통화를 ‘수르(sur·남쪽)’로 칭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남미의 공동 통화 창설은 30여 년 전부터 추진돼왔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1987년 역내 경제 교류를 활성화하고 달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가우초’라는 공동 통화를 만들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후 우루과이·파라과이를 포함한 남미 4개국 경제공동체 ‘메르코수르’가 출범한 1991년에도 역내 공동 통화 창설을 공언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를 덮친 일련의 경제위기와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브라질의 무역 장벽 등에 가로막혀 진척되지 못했다.

이번에도 양국 정상이 공동 통화 창설을 공식화했지만 실현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절대 다수다. 친재계 성향의 브라질 정당 ‘뉴파티’의 파비우 오스테르만은 “(경제위기를 겪는) 아르헨티나와 공동 통화를 만든다는 것은 빚 많은 실업가 친구와 공동 은행 계좌를 개설한다는 뜻”이라고 룰라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선임고문도 “양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실현까지는 매우 먼 길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물가·통화가치 등이 어느 정도 비슷해야 공동 통화를 만들어도 연착륙할 수 있지만 브라질의 물가 상승률이 5%대인 반면 아르헨티나는 100%에 육박한다.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도 불안정하다. 여기에 우루과이·파라과이 등 다른 나라 상황까지 고려하면 논의는 더 복잡해진다.

하지만 달러화 아성에 대한 또 하나의 도전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너무 강하고 무기화된 달러에 지친 각국이 달러를 우회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며 “킹달러가 반란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달러화가 전 세계 금융·무역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최근 달러화 가치가 치솟자 금융시장이 휘청이고 수입 물가가 급등하면서 각국은 큰 비용을 치렀다. 신냉전 시대에는 각국이 국익 극대화를 위해 중립적 입장을 취하기 마련인데 달러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는 점도 ‘탈(脫)달러화’ 추세에 속도가 붙는 이유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달러화 의존도를 낮추는 실험을 하는 나라는 최소 12개국에 달한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향후 3~5년 내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로부터의 에너지 수입을 늘리고 위안화로 결제할 것”이라며 ‘페트로 위안화’ 의지를 천명했다. 인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루피화와 UAE디르함 결제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향후 수십 년간 국제 시장에서 달러화는 여전히 최고 위치에서 군림할 것”이라면서도 “대체 통화를 사용하려는 모멘텀도 줄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위스 투자사 롬바르오디에의 호민 리 아시아 거시전략가는 “수십 년간 우리가 사용한 세계 무역·결제 플랫폼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신호”라고 평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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