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김광수·이상군 추모 메시지에 담긴, 고(故) 김영덕 감독의 ‘야구 일생’

안승호 기자 2023. 1. 2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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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그레 사령탑 시절의 김영덕 전 감독. 경향신문 DB



김영덕 전 감독의 부고에 김광수 일구회장은 불현듯 42년 전 어느 날의 전화 통화 장면을 떠올렸다.

김광수 일구회장은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OB 베어스 원년 멤버다. 김 회장은 “농협 야구단에 뛰던 시절, 감독님 전화를 받았다. 직접 전화를 주셔서 프로야구가 생기니 함께 하자는 말씀에 고민 끝에 OB 유니폼을 입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난 김 전 감독은 KBO리그 원년 꼴찌 후보이던 OB를 정상에 올려놓는 이력을 남겼다. 김 회장 또한 OB 2루수로 팀에 합류한 끝에 입단 당시에는 꿈꾸기 어려웠던 원년 우승 샴페인을 마셨다. 김 회장은 “지금 돌이켜보면, 감독님이 선수단 내 신구조화에 섬세할 정도로 신경을 쓰셔서 전체적인 팀 분위기를 만드셨다. 고참이던 김우열·윤동균 선배들을 움직이시면서 팀을 하나로 묶으셨다”며 “OB가 우승할 수 있던 배경이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설날인 지난 22일 김성근 전 감독과 함께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다녀왔다. 김성근 전 감독 역시 고인과 인연이 각별하다. 김성근 전 감독은 일본 교토 가쓰라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1959년 김영덕 전 감독을 처음 만났다. 당시 일본프로야구 난카이 호크스에서 뛰던 김영덕 전 감독은 같은 재일교포 선수인 김성근 전 감독에 용품 지원을 비롯해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이후로 한국에서는 한동안 이웃으로도 지냈을 만큼 인연이 깊다.

김영덕 전 감독은 김성근 전 감독이 이미 기업은행에서 뛰고 있던 1964년 대한해운공사에서 합류하면서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성근 전 감독은 고인에 대해 “당시는 흔치 않은 사이드암 투수로 슬라이더와 싱커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던졌다. 투수의 길을 새롭게 만들었다”며 “우리나라가 아무래도 처져있을 때다. 그것을 일본하고 대등하게 싸울 수 있도록 만드신 분이다”고 말했다.

김영덕 전 감독이 2006년 삼성-한화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김영덕 전 감독 그리고 김성근 전 감독을 비롯한 배수찬, 신용균 등 재일교포 선수들이 한국 실업야구에 합류한 1960년대를 보내며 한일전 양상에 변화가 나타난다. 한국은 1963년 아시아선수권 첫 정상에 선 뒤 이들이 지도자로 변신한 1971년과 1975년 대회에서 일본을 밀어내고 우승 횟수를 늘려갔다.

김영덕 전 감독은 1969년 선수로 뛰던 한일은행 감독대행으로 사령탑 이력을 시작했다. 프로 출범 이후로도 OB(1982~1983), 삼성(1984~1986), 빙그레(1988~1993) 감독을 지냈다. 김성근 전 감독은 “감독으로의 모습도 만들어가신 분”이라며 “내가 해태 2군 감독(1995)을 할 때는 김응용 감독(당시 해태 사령탑)과 김영덕 감독, 두가지 스타일을 보고 싶기도 했는데, 김응용 감독이 전체적으로 강한 느낌이라면 김영덕 감독은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상군 천안북일고 감독은 고인의 리더십을 직접 체험한 야구인이다. 서울권 학교를 마다하고 1978년 천안북일고를 선택한 것도 그해 북일고 야구부를 맡은 김영덕 전 감독의 권유 때문이었다. 훗날 프로야구 빙그레에서 뛰며 김 전 감독과 재회했던 이 감독은 “내게는 아버지 같으신 분이다. 훈련에서는 굉장히 엄하셨지만, 정도 엄청 많으셨다”고 말했다. 이 감독을 비롯해, 이정훈, 송진우, 한용덕, 김상국, 정민철 등 당시 빙그레 주축선수들은 그간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김 전 감독에게 어김없이 선물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도 “늘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다.

김 전 감독은 프로감독 통산 승률 0.596(707승20무480패)의 빛나는 이력을 남겼다. 프로 원년 우승에 이어 1985년에는 삼성 사령탑으로 전후기 통합 우승 역사도 썼다. 그러나 삼성에서 2차례, 빙그레에서는 4차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도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다. 빙그레 전성 시절 우완 에이스였던 이상군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안겨드리지 못한 죄송스러움이 늘 먼저 떠오른다”며 고 말했다. ‘야구인 김영덕’에 대한 기억은 이처럼 여러 갈래로 이어진다. 한국야구에 고인이 남긴 족적이 그만큼 깊고 넓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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