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시동 건 ‘선거개혁’…이번엔 다를까

김승환 2023. 1. 2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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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10일 제22대 총선이 치뤄질 예정입니다. 1년2개월여 남은 셈인데 정치권에서는 최근 이 총선의 ‘룰’을 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선거제를 논의하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관계법소위원회는 지난 19일 전문가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를 통해 제안한 중대선거구제나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에 대한 평가·분석이 이뤄졌습니다. 이런 개별 제도에 대한 각론과는 결이 다른 의견도 있었는데, 바로 이런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18일 국회 소통관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목적’ 달성만큼이나 새로운 제도의 채택에 따른 정치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필요하다.”

문은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각 나라별 선거제도 유형·사례를 소개, 평가한 뒤 “어느 제도를 선택하든지 실제 운영되는 현실과 다를 것이고, 각 사회의 현실적 맥락에 따라 특수성을 갖게 된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거제에 ‘정답’이 없다, 그러니 새 제도가 달성할 ‘목적’뿐 아니라 뒤따르는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준비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탈이 났던 게 바로 제21대 총선의 룰 중 하나였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일 겁니다.

◆제도는 ‘죄’가 없다

정당 득표율에 연동해 의석을 배정하는 걸 골자로 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2019년 도입 당시만 해도 양당 독점 구도 완화·의석과 득표 간 비례강 강화 등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 2020년 치룬 21대 총선 결과는 그 기대를 배반했습니다.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차례로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희대의 꼼수’를 부린 탓이었습니다.

그건 예견된 비극이었습니다. 애초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자체가 제1야당인 한국당이 배제된 채 진행됐기에 제도 취지를 부정하는 조치를 이행하는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당시 여야 4당(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공수처법·검경수사권 조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태워져 본회의 통과까지 심한 진통을 겪었습니다.

문은영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밀어붙인 여야 4당은 ‘기존 제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목적 달성’에만 치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채택에 따른 비용, 그러니깐 구체적으로 경쟁 당의 꼼수에 따른 의석 수 감소를 예상하지도, 감내할 수도 없었습니다. 여당인 민주당이 한국당을 따라 위성정당을 차렸고 그 순간 정치는 희화화됐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국회에서 열린 제4차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관계법개선소위원회에서 선거제도 관련 전문가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불이익’ 감내하는 합의가 절실하다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 1차 운영모임에서는 여기에 대한 반성을 표하는 발언이 여럿 나왔습니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는 “참 나쁜 선례를 남겼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당 김종민 의원도 “우리 정치의 오점이라 할 수 있는 결론이 났다”며 “정말 책임을 통감하고 다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고 했습니다. 김 의원은 당시 개정안을 논의한 정개특위에서 민주당 간사를 맡았습니다. 

여야 중진 의원 9명을 포함해 의원 약 70명이 이름을 올린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은 정개특위와 별도로 소속 당을 벗어나 의원 개개인이 선거제 개편 등 정치개혁에 대한 합의를 형성하기 위해 발족했습니다.

여기 참여한 의원들의 반성을 이끄는 건 위기감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가라앉고 있다. (가라앉는 배에서) 선장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 유불리를 따지는 싸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배가 가라앉지 않게 수선해 육지에 당도하게 만들겠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김종민 의원)

“우리 정치가 이대로 가선 안 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모두 느낀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태로, 승자독식구조로 내년 선거를 다시 치르면 국가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혀 주지 못할 것 같다.”(국민의힘 조해진 의원)

이같은 위기 의식이 당이라는 경계 너머 의원들을 모이게 만든 겁니다. 

현재 국회의 선거제 개편 논의는 이제 막 발을 뗀 상황입니다. 절차와 결과 모든 면에서 실패한 현행 선거제를 손봐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룬 게 전부입니다. 각론에 들어가면 논쟁과 갈등이 불가피합니다.

문은영 교수가 지적했듯, 각각 제도가 실제 현실에 적용돼 가져올 결과는 쉽사리 예상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소속 당, 지역, 정치 이념 등에 따라 달라지는 이해관계 때문에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안을 구별하려는 시도 또한 어쩌면 무의미해지는 지경에 이를 겁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우리가 국회의 선거제 개편 논의에서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할 건 ‘2019년의 잘못’을 또 한 번 재현되느냐, 아니냐 하는 겁니다.

아직까지는 낙관적입니다.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은 1차 운영모임에서 현 70명 수준인 참여 의원을 앞으로 더 늘려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합니다. 최대한 많은 의원이 동의하는 개편안을 도출해내기 위해섭니다.

여기서 ‘동의’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새 제도의 ‘목적’뿐 아니라 그 제도로 인해 본인이 지불해야 할지도 모를 ‘비용’, 다른 말로 불이익까지 포함해야 할 겁니다. 문은영 교수가 발제문 말미에 “(성공적인 선거제 개편은) 단순히 바람직한 제도로서의 대안이나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 성립되는 게 아니다”라면서 그 필요성을 강조한 ‘다른 차원의 고려를 포함한 정치적 판단’에는 바로 이같은 ‘동의’가 포함돼 있을 겁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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