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차 1위 한국선 무조건 벤츠...세계는 아니네?
지난해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메르세데스 벤츠가 판매 1위(8만976대)를 지키며 BMW(7만8545대)를 제쳤지만, 글로벌 전체 시장에서는 BMW가 벤츠를 앞지르고 있다. 고급차 시장의 오래된 라이벌인 BMW와 벤츠의 묘한 전략 차이가 글로벌 판매 순위를 가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양사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BMW는 지난해 전세계에서 전년 대비 5.1% 감소한 210만692대를 판매했다. 벤츠는 전년 대비 1% 감소한 204만3900대를 팔았지만, BMW 판매를 넘진 못했다. BMW가 벤츠 판매를 앞지른 것은 이번이 2년째다.
특히 BMW는 순수전기차 판매에서도 벤츠를 앞섰다. BMW그룹은 지난해 전기차 판매가 107.7% 증가한 21만5755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벤츠가 밝힌 순수전기차 판매량 11만7800대(전년 대비 +124%)보다 크게 앞서는 수치다. BMW가 밝힌 전기차 판매량에 약 6만대의 MINI(미니) 전기차 판매가 포함돼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벤츠보다 많다.
전기차에 플러그인하이브리드를 합친 판매량에서도 BMW는 지난해 전년 대비 35% 증가한 37만2956대를 팔았고, 벤츠는 19% 증가한 31만9200대를 팔아 차이가 났다.
이 같은 판매 차이는 벤츠와 BMW의 전략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각각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에 본사를 둔 두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고급차 시장에서 100년 이상 경쟁을 벌여왔다. 1916년 항공기 엔진 사업으로 시작한 후발주자 BMW는 1880년대 자동차를 발명한 역사를 가진 벤츠를 이기기 위해 ‘양적 성장’ 전략에 집중해왔다. 이때문에 ‘펀 드라이빙’과 ‘팬시한 디자인’으로 승부를 건 차종을 엔트리부터 고성능까지 다양하게 출시했고, 대형 세단 S클래스와 중형 세단 E클래스 중심으로 판매를 해오던 벤츠를 오랫동안 앞서왔다.
벤츠가 BMW를 판매에서 이기기 시작한 건, 2015년이다. 벤츠가 젊은 소비자를 겨냥해 A클래스와 C클래스등 다양한 중소형 모델들을 선보이며 양적 성장 경쟁에 뛰어든 것이다. 당시 벤츠는 BMW의 할인 전략에 맞서 큰 폭의 할인도 주저 없이 해왔다.
하지만 벤츠의 기조가 최근 코로나를 겪으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양적 판매보다는 ‘럭셔리카’로서의 브랜드 이미지 관리와 수익성 향상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올라 칼레니우스 벤츠 CEO는 지난해 5월 “우리는 향후 브랜드의 방향을 럭셔리로 설정했으며,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며 벤츠의 럭셔리 브랜드 전략을 재정의했다.
지난 2년간 공급망 붕괴와 반도체 부족에 따른 신차 공급난을 겪은 자동차 업계는 할인 판매를 없애고 가격을 인상해 높은 수익을 올려왔다. 벤츠는 이러한 고수익 전략을 코로나 이후에도 유지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전 라인업을 총 3가지(탑 앤드 럭셔리, 코어 럭셔리, 엔트리 럭셔리)로 분류를 단순화하고, 그동안 불필요하게 늘렸던 소형 차종들을 일부 정리하기로 했다.
반대로 BMW는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차종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전기차 모델도 전용 플랫폼을 개발하는데 시간을 쏟기보다, 기존 플랫폼을 활용해 최대한 ‘빨리’ ‘다양한’ 차종을 많이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 BMW는 반도체가 부족해져 완성차 생산 차질이 빚어지자, 일부 전자 옵션을 뺀 ‘마이너스 옵션’ 차량을 만들어 신차 공급난을 최대한 방어했다. 지난해 2년간은 특히 누가 많이 만들어내느냐가 판매 순위를 가르는 관건이었는데, 마이너스 옵션을 지양한 벤츠보다 BMW가 공급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벤츠는 실제 더 큰 수익을 얻고 있을까.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벤츠는 39.9억유로(5조3484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했고, BMW그룹은 31.7억유로(4조2492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벤츠의 3분기 판매량(51만7800대)로 BMW그룹(58만7744대)보다 적었지만, 더 많은 수익을 낸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벤츠의 전략이 좀 더 효과적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벤츠가 양적 성장을 포기하는 럭셔리 전략을 강화할 경우, 향후 공급망이 정상화되고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생산 물량이 적어지면 각종 부품 조달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의 안정적 공급이 중요한데, 발주 물량이 많지 않으면 배터리업체들과의 협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보급형 차량을 너무 많이 줄일 경우, 각종 부품 조달에 있어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 않아 원가 비용이 올라갈 수 있다”며 벤츠의 럭셔리 전략이 팬데믹 이후에 자칫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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