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쌀 격리에만 1.38조 쓴다는데…양곡법 두고 농업단체도 이견

임용우 기자 2023. 1. 2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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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원, 의무매입 도입하면 현 정책 유지 때보다 쌀값 14.1%↑ 전망
본회의 처리돼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 일부 농업단체는 농경원 규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2회 국회(임시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 출석한 최재해 감사원장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앞으로 더불어민주당 위원석이 텅 비어 있다. 더불어민주당 위원들은 이날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법안심사2소위에 회부한 것에 항의,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2023.1.16/뉴스1 ⓒ News1 유승관 기자

(세종=뉴스1) 임용우 기자 = 쌀이 초과생산되거나 가격이 떨어졌을 때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여야 갈등이 여전히 첨예한 가운데 농업단체들마저 양곡법을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23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지난 16일 국민의힘은 양곡법 처리 과정에서 절차·내용상 중대한 하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위헌 여부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2소위에 회부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양곡관리법은 이미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직회부를 요청했다며 반발하는 한편, 법사위 회부와 상관 없이 국회법 절차에 따라 오는 30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처리를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지난해 12월28일 야당 단독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본회의 부의 요구의 건'을 의결한 바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사위가 특정 법안 심사를 60일 안에 마치지 않으면 법안을 소관하는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간사와 협의해 본회의에 해당 법안을 부의할 수 있는데,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농해수위가 민주당 의원들 주도로 직회부를 의결한 당시 법사위 처리가 당시 70여일간 지연됐었다.

본회의로 부의된 법안이 상정되려면 국회의장이 교섭단체와 합의해야 하는데, 30일 이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처음 열리는 본회의에서 상정 여부를 무기명 투표로 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과반 의석을 점한 민주당이 단독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게 가능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법안소위에서 다시 발목 잡겠다는 건 국회법 개정 취지를 정면으로 왜곡하는 것"이라며 "절차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혀, 국민의힘의 법사위 부의와 관계 없이 본회의 처리 강행 의사를 밝혔다.

양곡법 개정안은 수확기에 초과생산량이 예상생산량의 3% 이상이거나 쌀값이 평년 대비 5% 이상 하락한 경우 초과생산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발의 때부터 쌀 공급과잉 심화, 가격 하락 등을 이유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30년에는 60만톤 이상 초과 공급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2030년 쌀 격리에만 1조3870억원이 투입되며, 미래 농업을 위한 청년농 육성, 스마트팜 투자 등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도 반대 이유로 언급했다.

식량안보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정부는 판단했다. 시장격리 의무화가 시행되면 쌀 생산량이 늘며, 밀·콩 재배율이 정체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밀 1.1%, 콩 25.0% 수준이던 자급률을 2027년까지 각각 7.9%, 40.0%까지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시장격리 의무화가 시행되면 2027년 밀은 4.0%, 콩은 26.4%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됐다.

농경원은 시장격리 의무화로 인해 쌀 가격이 상승하며 타작물을 재배하는 유인 요소가 줄어들며 쌀 농사 재배에서 타작물로 변환하는 유도에 실패할 것으로 관측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이를 두고 농민단체에서도 엇갈린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 등 6개 단체는 지난해 12월2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 재고를 촉구했다.

이학구 한종협 회장은 "쌀 시장격리를 의무화하면 타작물 전환 유도가 쉽지 않을뿐더러 판로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 쌀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다"며 "이는 정책 실패를 넘어 쌀 가격 하락에 따른 농가경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법률 개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유례없는 풍년이 들며 지난해 9월까지 쌀값이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자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반복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가톨릭농민회·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은 지난 18일 쌀 시장격리가 의무화하면 재정 손실이 클 뿐 쌀값은 오히려 떨어지고 수급 조절도 어렵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을 규탄했다. 이들은 농식품부를 두고 '농민을 위한 정책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쌀값 하락을 우려하는 농민들의 목소리에도 농경원의 연구결과는 의무매입이 도입됐을 때 쌀 가격이 현 정책을 유지할 때보다 높게 형성될 것으로 전망됐다. 현 정책기조가 이어질 경우 2030년 쌀 80㎏에 15만1335원으로 예측됐으나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17만2709원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농경원은 분석했다.

쌀 의무매입이 쌀 가격 인상 중 가장 강력한 정책이라는 전제를 두고 나온 분석결과다. 정부는 쌀값이 폭락할 때마다 비축분 매입 등을 통해 쌀 가격을 안정화시킨 바 있다.

지난해에도 쌀값이 1년만에 25% 이상 하락하자 수급안정 90만톤 격리·매입을 결정한 후 반등해 현재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2023년 연두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3.1.4/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윤석열 정부는 양곡법에 대해 반대의사를 거듭 피력하고 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이달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합동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시장 기능에 의한 자율적 수급 조절이 이뤄지고, 농민에게 생산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주고 가격 안정을 (끌어내기) 위해 정부가 일정 부분 관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이 해당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쌀 생산량이 늘어 시장에 남는 양도 많아지게 되면 가격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며 "의무매입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사용해야 하는 만큼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농식품부는 쌀 생산량이 과도하다고 보고, 쌀 대신 가루쌀·논콩 등 전략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엔 직불금을 주는 전략작물직불제 등을 통해 식량자급률을 확보할 계획이다.

올해 △굳건한 식량안보 확보 △농업의 미래성장산업화 △든든한 농가경영안전망 구축 △새로운 농촌공간 조성 및 동물복지 강화의 4가지 정책 과제를 중점 추진할 방침이다.

phlox@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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