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삐걱 우왕좌왕 ‘美 하원은 괴로워’[김수현의 세계 한 조각]

김수현 기자 2023. 1.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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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양극화에 빠진 미국 사회, 미 하원은 ‘초당적’ 평화에 도달할 수 있을까
당신이 잠든 사이, 오늘 밤에도 세상은 빙글빙글 돌아가는 중입니다. 지난 밤 당신이 놓쳤을 수도 있는 세계 각국의 소식들, ‘세계 한 조각’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순식간에 바뀌는 세상만사, “잠깐! 왜 이러는 거지?”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민족 대명절 설입니다. 정치 경제 결혼 취업 입시에 대한 각자 소견은 잠시 내려 두고 가족 간 ‘극적 합의’를 이뤄내고 계신가요?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에게 가정의 평화가 함께하길 기원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싸우실 필요가 없습니다. 갈등과 분열이 필요하신 이들을 위해 미국 하원이 대신 싸워드립니다. 오늘의 주제, “사분오열 미 하원”입니다. ‘디폴트 위기’ 앞두고 여야 초강경 대치

13일(현지 시간) 미국 재무부가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에게 보낸 서한. 19일에 미 부채가 상한선에 도달할 것이라는 경고가 담겨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관련 법령에 따라 미국 재무부는 오늘부터 특별 조치(extraordinary measure)에 들어갑니다. 이에 이 서한으로 당신에게 통보합니다.”

미국 시간 1월 19일. 케빈 매카시 미 하원의장(공화·캘리포니아주)은 재무부로부터 서한을 한 통 받습니다. 약 일주일 전,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정확히 19일에 미국이 부채 상한선(debt ceiling)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날 미국 국가 부채 총액은 재무부 예고대로 31조4000억 달러(약 3경8900조원)에 도달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부채 상한선은 연방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누적 국가 부채 상한선입니다. 미국은 1917년부터 부채 상한선을 법률로 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상한선보다 더 많은 빚을 져야 한다면 의회는 부채 한도를 늘릴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거나 상한선 적용을 일시 유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수 있습니다. 2021년 12월 이후 현재 미국 부채 상한선은 31조4000억 달러입니다.
한마디로 미국은 더 이상 국채를 발행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국가 신용 문제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지만 여야는 강(强) 대 강 모드입니다. 하원 다수당 공화당은 ‘정부 지출 삭감’을, 백악관과 민주당은 ‘조건 없는 (상한선) 상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때 재정 완화 정책 등으로 대폭 늘어난 정부 지출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미 연방 부채는 지난해 1월 처음으로 30조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2020년 이후 국내총생산(GDP)의 120% 수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자는 지난해 12월 850억 달러(약 105조7000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4배 증가했습니다. 기준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원조 등에 따른 결과로 풀이됩니다.

12일 미국 수도 워싱턴 국회의사당 스테츄어리 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워싱턴=AP 뉴시스
매카시 의장은 공화당 성향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던 4년간 그들은 지출의 약 30%를 늘렸다. 이는 연간 4000억 달러 수준”이라며 “공화당은 다수당이던 그전 8년간 단 1달러도 늘리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매카시 의장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전후 “백지수표는 없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 규모와 속도 조절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백악관과 민주당은 특별 조치 발표 직후 (부채 상한선 증액 불발에 따른) 신용 저하가 미국과 세계 경제에 미칠 여파를 언급하며 조속한 (부채 상한선) 상향을 요구했습니다. 2011년 8월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디폴트 위기에 처한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시킨 초유 사태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당시 하원 다수당이던 공화당은 오마바 행정부에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급증한 정부 지출을 감축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치열한 논쟁 끝에 양당은 극적 합의를 이뤘지만 S&P는 “정치 리스크가 미국 신용을 흔들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신용등급 강등 직후 미국 주가는 15% 이상 폭락했고 한국 주식시장도 10% 이상 추락했습니다.

지난해 10월 미국 버지니아주 헤른던 혁신기술센터를 찾은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 헤른던=AP 뉴시스
‘다행히’ 재무부는 6월 초까지는 기술적으로 디폴트에 직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별 조치 덕분인데요. 옐런 장관은 일부 정부 펀드를 매각하거나 비교적 쉽게 빚을 갚을 수 있는 분야에서 채무를 상환하는 조치를 지시했습니다. 다만 특별 조치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고 경고했습니다. 우왕좌왕 다수당… 이빨 빠진 트럼프에 분열된 코끼리

3일 제118대 미국 하원의장 선거 1차 투표 결과를 나타내는 표.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가 과반에 못 미치는 203표를 얻어 당선되지 못했다. 1차 투표에서 하원의장이 선출되지 못한 것은 1923년 이후 100년 만이다. 트위터 캡쳐
원래 가장 무서운 적은 내부의 적이라고 하죠. 14전 15기 끝에 하원의장에 당선된 매카시 의장. 그는 10차 투표를 넘기고도 의장에 당선되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는 남북전쟁 직전 양당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1859년 이후 164년 만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그의 앞을 번번이 가로막은 반란군 20명은 같은 공화당 소속이었습니다. 물론 민주당은 15차례 투표 모두 212명 전원 반대표를 던져 최상의 팀워크를 보였습니다. 미국 언론은 이 초유의 사태를 ‘프리덤 코커스(Freedom Caucus)의 반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매카시에 반대표를 던진 20명 중 19명이 프리덤 코커스 소속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12일 미국 수도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앤디 빅스 하원의원(공화·애리조나·왼쪽에서 다섯번 째)과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이 알레한드로 마요카스 국토안보부 장관 탄핵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날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의 하원의장 선출을 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워싱턴=AP 뉴시스
프리덤 코커스는 2015년 공화당 강경보수 하원의원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입니다. 그 전신은 공화당 강경파 ‘티 파티’입니다. 초창기 프리덤 코커스는 작은 정부, 개인 자유, 불법 이민자 추방, 의회 권력(하원의장) 분산 같은 정통 보수 목소리를 내며 ‘공화당 우향우’를 주장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장 후에는 그의 ‘열성 팬클럽’으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프리덤 코커스는 ‘반란표’에 대해 “매카시가 민주당에 지나치게 협조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당 하원 원내대표로서 조 바이든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호위무사’ 소리까지 듣던 친(親)트럼프계 인사 매카시 의장으로서는 다소 억울한 소리입니다. 그는 2019년 10월 트럼프 전 대통령 탄핵 하원 조사 청문회 당시 원내대표로서 청문회장 앞을 막아서기까지 했을 정도입니다.

6일 미국 하원의장 선출 14차 투표가 불발된 직후 맷 게이츠 의원(공화·플로리다·뒷 줄 오른쪽)을 향해 달려드는 마이크 로저스 의원(공화·앨러배마·뒷 줄 가운데)을 리처드 허드슨 의원(공화·노스캐롤라이나)이 제지하고 있다. 프리덤 코커스 소속 게이츠 의원은 총 15차례 투표에서 케빈 매카시 원내대표에게 단 한 번도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 워싱턴=AP 뉴시스
같은 편이면 사이좋게 지낼 법도 한데 왜 그런 걸까요? 미국 정치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트럼프의 공백’을 꼽았습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예상 밖으로 부진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 책임론이 공화당에서 대두했습니다. 여기에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의 부상(浮上), 전직 대통령 최초 형사 처벌 권고 등으로 여론은 점차 악화됐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번 ‘하원의장 선출 사태’에 대해 “(공화당의) 위대한 승리를 당혹스러운 패배로 만들지 말자”며 ‘팬클럽 회원 간 화해’를 시도했지만 먹히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매카시 의장에게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공화당 멧 게이츠 의원(플로리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매카시 의원을 지지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그(트럼프)는 인사 관리에는 소질이 없었다”고 쏘아붙였습니다.

지난해 11월 15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저택에서 세 번째 대통령 출마 선언을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팜비치=AP 뉴시스
이번 사태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부재한 틈을 타 매카시 의장 같은 공화당 정통파를 누르고 강경파가 당내 입지를 굳히려는 시도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현재 무직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는 어떠한 제도적 권한도 없습니다. 인기마저 시들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공화당 구심점이던 그가 약해지며 권력 공백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이종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국 의회 전공)는 “중간선거를 계기로 민주당은 이미 지도부 교체를 이룬 상황”이라며 “공화당 강경파 역시 새 지도부 선출을 기대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국 의회 전공)는 “트럼프 한 마디에 상·하원이 통제되는 시대는 지났다”며 “명백한 트럼프의 위기”라고 설명했습니다.

흔히 갈등은 민주주의의 동력이라고 말합니다.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면서 민주주의가 성장한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합리적 소통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이 명제는 성립합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 계신 하원의원 여러분께 한국 속담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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