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만의 종목 스터디] 한전, 상반기에 12조 적자⋯더 큰 문제는 신뢰 상실
인플레 우려에 전기료 인상 어려워
배당률 5% 나오는 은행주가 대안
한국전력은 미국 증시에 상장해 있다. 주식예탁증서(DR·Depositary receipt)를 발행해 한국 투자자가 본주를 거래하듯 미국 투자자들도 거래할 수 있다.
하지만 존재감은 거의 없다. 거래량이 수억원대에 불과한 날이 부지기수다. 어쩔 수 없다. 기본적으로 전력 공급사업이 매력적인 사업이 아닐뿐더러, 특히 한국전력은 전 세계 어느 유사 기업과 비교해도 가격 통제력이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적자가 심화해도 가격을 올리지 못하는 기업이니 주가 또한 상승하기 힘들다. 이처럼 시장을 상징하는 가격을 주도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기업이 자본주의의 총본산인 미국 증시에 상장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대신 한국전력이 자랑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배당’이었다. 한국전력은 국민주로 보급된 1989년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7년까지 20여 년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배당을 실시했다. 문제는 이 또한 옛날얘기라는 점이다. 지금은 모범 배당주라고 하기 어렵다. 2008~2010년과 2012년, 2018~2019년, 2021년 배당을 집행하지 못했다. 31조원 적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2022년에도 배당을 지급하지 못할 전망이다. 2022년 배당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안건으로 상정되는데, 전문가들은 배당은 거론하지도 못할 분위기라고 설명한다. 종목으로서의 한국전력은 매력이 전혀 없다.
반등하던 주가, 기대 이하 전기료 인상에 재차 주저앉아
한국전력 주가는 2022년 말 반짝 불꽃을 지폈다. 2022년 10월 17일 1만6500원에서 2022년 말 2만2750원으로 30% 넘게 급등했다. 전반적으로 증시가 부진한 와중에 한국전력만 올라 눈길을 끌었다. 상승 이유는 두 가지. 윤석열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기, 그리고 전기료 정상화에 대한 기대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첫 거래일인 1월 2일엔 11% 넘게 급락했는데, 이는 전기료 인상 폭이 시장의 기대치를 밑돌아서다.
당초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올해 전기요금 인상 적정액으로 킬로와트시(㎾h)당 51.6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올해 1분기 전기요금은 ㎾h당 13.1원 인상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연내 지속적으로 전기료가 인상될 것이라고 투자자들을 달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를 감안하면 그렇게 꾸준히 올리기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자칫 잘못하면 꺾이는 듯하던 물가가 치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전력은 올해도 천문학적인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NH투자증권은 한국전력이 올해 상반기에도 12조원의 적자를 내고, 하반기는 연료비가 안정화되며 적자 규모가 2조원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증권가 전체 예상 영업적자는 11조1414억원이다(올해 1월 3일 에프앤가이드 기준). 나민식 SK증권 연구원은 “어느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전기요금 인상”이라며 “산업부는 2분기 이후 전기요금 인상 폭을 결정한다고 했는데, 그때는 무슨 근거로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냉정히 얘기했을 때 한국전력은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 있는 타이밍을 이미 놓쳤다. 한 애널리스트는 “코로나 사태를 억누르기 위해 돈을 무한정 풀어 기업들이 특수를 누릴 때 전기 요금을 올렸어야 했다”면서 “올해는 상당한 수준의 경기 둔화가 우려되기 때문에 한국전력이 계속 요금을 올릴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투자 매력 찾으려면 제대로 된 ‘연료비 연동제’ 도입 시급
한국전력은 1996~1998년 시가총액 1위 기업이었다.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 시총의 5배를 넘었다. 배당도 정부가 4000억~5000억원을 타갈 정도로 우량했다. 한국전력은 과연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긍정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투자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22년 8월부터 10월 31일까지 개인 투자자가 한국전력 주식을 순매수한 규모는 1억6075만주에 달한다. 2022년 전체 기준으로는 개인이 2억7428만주 매도했으니, 최소한 8~10월엔 뜨거운 종목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참고로 거래소 수치상 당시 개인이 매수한 가격은 현재 주가와 엇비슷한 1만9422원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한국전력을 매수한 투자자 중 상당수는 가치투자자 성향의 개인이라고 한다. 특히 일부는 마젤란펀드 운영자였던 투자계의 거물, 피터 린치의 저서를 참고해 한국전력에 투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피터 린치는 저서 ‘이기는 투자’에서 일반적인 경기 순환주보다 곤경에 빠진 공공설비주에 투자하면 훨씬 좋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고 소개했다. 피터 린치는 공공설비주는 ▲위기 발생 단계 ▲위기 관리 단계 ▲재정 안정화 단계 ▲회복 단계 등의 사이클을 타며, 본인 또한 전력공급 업체 CMS에너지에 투자해 상당한 고수익을 기록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피터 린치 투자법 또한 국내 시장에 그대로 접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은 정치권의 입김이 커 다른 국가 대비 요금을 올리기 어려워서다.
결국 한국전력이 투자처로 매력을 되찾으려면 ‘연료비 연동제’가 필수다. 우리나라는 2021년까지 전 세계 거의 유일의 연료비 연동제 미도입 국가였다. 연료비 연동제는 유류와 석탄, 가스 등 전기 발전에 사용되는 연료 가격의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주기적으로 반영하는 제도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과거 한 보고서에서 “확인 가능한 대부분 나라에서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또한 2021년 도입하긴 했는데 반쪽 제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요금을 연간 ㎾h당 ±5원, 직전분기 대비 ±3원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1분기 요금 인상을 수립할 때도 연료비 조정 단가는 현행을 유지하고 전력량 요금과 기후환경 요금을 각각 11.4원, 1.7원 인상하는 식으로 대응해야 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2022년 한국전력의 대규모 적자와 같은 사례는 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되지 않는 이상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 도시가스, 항공 요금 등에 연료비 연동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전기요금도 제대로 된 연료비 연동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면서 “매번 요금을 얼마로 올리느냐를 두고 심사하는 것도 상당한 행정적 낭비다. 기본적으로 연료비에 맞춰 결정하되, 정부가 일부 관여할 수 있는 정도로 고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전력에 관심이 있다면, 차라리 은행주를 매수하라는 조언도 나온다. 은행은 대출 금리와 예금 금리차를 이용한 예대마진이 있어 금융위기가 터지지 않는 이상 안정적으로 이익을 낸다. 그로 인해 매해 5% 이상의 배당을 꾸준히 실시한다. 상장기업으로서 한국전력의 입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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