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 수출시대]① 바삭~ 스낵김, 달콤~ 케이크 과자…세계 입맛 사로잡아 수출 120억弗 고지 오른 K-농수산
마른김보다 부가가치 38.5배 큰 스낵김 등 제품 개발 노력
작년 농수산 식품 수출 120억불…2년 연속 100억불 돌파
올해 수출 역성장 전망…정부 “물류비 절감·수출품목 발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주요국의 긴축 행보, 글로벌 경기 둔화 등의 악재가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수출 환경을 세게 흔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의 농수산 식품 수출은 2021년에 이어 작년에도 100억달러 고지를 돌파했다. 우수한 품질과 농수산 기업인의 열정, 정부 뒷받침이 조화를 이룬 결과다. 올해 교역 여건은 작년보다 더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세계로 뻗어 가는 K-농수산의 저력은 이 위기를 뚫고 전진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조선비즈가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김 브랜드 ‘만전김’ 제조사인 만전식품은 최고급 원초(元草·김의 원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국 곳곳을 누빈다. 다양한 원초를 사들인 뒤 삼각김밥·반찬·수출 등 용도에 따라 달리 가공한다. 국가·식습관 등 철저한 세분화로 이 회사가 만드는 김 종류는 100여가지나 된다. 800개에 달하는 국내 김 가공업체 중 만전식품은 유럽시장 수출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작년에는 2100만달러 이상의 김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스낵 제조·유통업체 백견에프에스는 정부 ‘수출기업 맞춤형 조사’의 도움으로 상당수 중국 소비자가 스낵류 정보 탐색과 구매를 온라인으로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중국 대도시에 사는 10~20대의 수입제품 선호도와 신제품 시도 의향이 높다는 점도 파악했다. 이 회사는 깊이 있는 시장조사 결과를 토대로 판매 전략을 세웠고, 지난해 중국에 레드벨벳 케이크 스낵 80만달러어치를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만전식품과 백견에프에스의 해외 진출 성공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K-농수산 식품 사례의 일부에 불과하다. 도전정신 강한 우리나라 농수산 기업인들은 최상의 품질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수출 지원 정책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글로벌 물류난 심화 등으로 크게 악화한 교역 여건을 뚫고 K-농수산 식품이 2년 연속(2021~2022년) 연간 수출액 100억달러를 돌파하는 데 기여했다.
정부는 올해 농수산 식품 수출 지원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경기 둔화 흐름이 작년보다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서다. 민관 합동 조직을 꾸려 수출 신시장 개척에 나서고, 고(高)물가에 신음하는 기업들이 물류비 압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도록 금전적 도움을 확대한다. 기업 실적 극대화를 위한 고부가가치 가공식품 개발도 적극 돕는다.
◇ K-농수산 식품, 공급난·전쟁 뚫고 2년 연속 수출 100억불 돌파
23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지난해 농수산 식품 수출액(잠정)은 전년 대비 5.3% 증가한 120억달러로 집계됐다. 2018년 93억달러를 기록한 우리나라 농수산 식품 수출은 2019년 95억달러에 이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진 2020년에도 99억달러로 오름세를 지속했다. 2021년 114억달러로 사상 처음 100억달러를 넘어선 농수산물 수출액은 작년까지 2년 연속으로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정부와 농수산 업계 관계자들은 수출 100억달러대 진입 자체도 뿌듯한 일이지만, 이 성과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심화한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경기 하강에 따른 수요 둔화 등 날로 어려워지는 수출 환경 속에서 얻은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작년의 경우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한 농수산물 수출은 전년보다 소폭 감소했으나, 일본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 대한 수출은 각각 전년 대비 13.6%, 10.2% 증가했다.
부가가치가 큰 농수산 가공식품 개발 노력이 수출 확대의 비결 중 하나로 꼽힌다. 2019년부터 수산 식품 수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은 조미김이나 간식용 스낵김 등 다양한 형태로 개발돼 세계인의 호평을 받고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일반 마른김과 비교해 조미김은 부가가치가 7.3배 크고, 스낵김은 38.5배나 크다. 충남 보령에 있는 김 제조업체 대천맛김은 시즈닝(양념)이 아닌 자연스러운 불맛향 김 제품을 개발해 미국·태국·프랑스 등 20여개 국가로 수출 중이다. 2017년 100만달러 수준이던 이 회사 수출액은 지난해 600만달러를 넘어섰다.
김만 효자 노릇을 하는 건 아니다. 굴 전문업체 대일씨에프는 생굴뿐 아니라 냉동굴·건조굴·훈제굴 등을 북미·유럽·일본·동남아 등으로 수출하고, 수산가공품 제조사 고래미는 붉은대게 딱지장 제품을 태국·미국·대만·홍콩 등에 판매한다. 동오식품은 해초샐러드·톳샐러드·염장 해조류 등 다양한 해조류 가공품을 수출한다. 동오식품이 취급하는 실미역은 일본에서 품질을 인정받아 일반 수출 단가보다 두 배 비싼 가격을 받고 있다.
◇ 농수산 식품 수출 뒷받침한 ‘맞춤조사·바우처’ 정책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도 K-농수산 식품 수출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일례로 농산물 분야 기업들은 해외시장 개척 과정에서 큰 도움을 받은 제도로 농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제공하는 ‘수출기업 맞춤형 조사’를 꼽는다. 이 제도는 해외 수출을 시도하는 국내 기업과 농가에 맞춤형 해외시장 정보를 적기에 제공해주는 사업이다.
건강기능식품 제조사인 디네이쳐바이오랩스는 미국 수출을 준비하던 2021년 최종 수출 판매가 설정과 목표 소비자층 확립에 어려움을 느껴 정부에 도움을 청했다. 정부는 현지에서 경쟁 관계에 놓일 인기 제품의 소비자가격 정보와 예상 타깃 소비자층 정보를 파악해 디네이쳐바이오랩스에 전달했다. 또 경쟁 제품의 100ml당 가격 분석과 바이어의 기존 제품 구상 가격 비교 등을 통해 이 업체 제품의 최종 수출 판매가 설정을 지원했다. 현재 디네이쳐바이오랩스 제품은 미국 내 H마트 50개 매장에 입점한 상태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2020년 바이어 발굴용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베트남·중국 우유 시장에 관한 분석 보고서를 정부에 신청했다. 조합은 이 중 베트남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현지 바이어와 협상했고, 8000달러 수출 계약에 성공했다. 2021년에는 유기농 치즈를 베트남으로 수출하기 위해 수출기업 맞춤형 조사를 한 번 더 활용했다. 그 결과 베트남을 상대로 18만달러 규모의 수출 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앞서 수산 식품 수출 성공 사례로 소개한 대천맛김·대일씨에프·고래미·동오식품 등도 해수부로부터 다양한 정책 지원을 받았다. 이들 기업이 활용한 제도 가운데 하나는 ‘수산기업 바우처 사업’이다. 유망 수산 기업을 발굴해 해외시장 조사와 무역 실무 교육, 컨설팅, 상품 개발, 국제인증 취득 등을 돕는 제도다. 해수부는 지난해 33개 기업을 선정해 업체당 최대 2억7000만원을 지원했다.
인천 서구에 있는 칭도원은 자연산 활해삼을 직접 채취해 생산·가공·유통·수출하는 해삼 전문업체다. 칭도원은 건해삼을 비롯해 냉동즉석해삼·자숙해삼 등 다양한 해삼 가공품을 개발해 수출 대상국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해수부는 인플레이션 악재가 겹친 지난해 바우처 사업의 일환으로 이 회사에 3100만원을 제공하고 수출 애로 해소를 도왔다. 2021년 54만달러이던 칭도원의 연간 수출액은 지난해 220만달러를 넘어섰다.
◇ 올해 수출 역성장 우려에…정부 “총력 지원”
문제는 올해다. 계묘년(癸卯年) 수출 경기가 작년보다 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정부와 농수산 업계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간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수출은 세계 경기 하강과 맞물려 작년 하반기부터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우리나라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5월 21.3%에서 6월 5.4%로 16개월 만에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이후 7월(9%)과 8월(6.6%)에 이어 9월(2.8%)까지 부진한 흐름이 점점 심화하다가 10월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작년 12월 수출도 전년 동월 대비 9.5% 감소했다.
정부는 올해 연간 수출이 전년 대비 4.5%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3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을 1.8%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이보다 0.1%포인트(p) 낮은 1.7%를 제시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달 13일 새해 첫 통화정책방향회의를 마친 뒤 참석한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성장률이 당초 전망치(1.7%)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성장률을 한국은행보다 낮은 1.6%로 제시했다.
경기 둔화 위기 극복을 위해 농식품부는 올해 지자체·기업 등이 참여하는 ‘K푸드 수출 확대 추진본부’를 구성하고, 농식품부 장관이 직접 본부장을 맡아 민관 협력사업을 발굴하겠다고 했다. 뉴욕·파리·도쿄 등 주요국 대도시에 우수 한식당(K미쉐린) 20곳을 신규 지정하고, 한류와 연계한 한식 브랜딩 전략을 수립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또 수출 기업과 물류비 절감을 위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네덜란드·싱가포르 등에 해외 냉장유통 허브를 추가 확보하겠다고 했다.
해수부는 김·참치 등 핵심 품목과 굴·전복 등 유망 품목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미·중·일 등 주요 시장뿐 아니라 유럽·남미와 같은 신시장도 지속해서 개척한다고 밝혔다. 기업당 최대 2억2000만원의 바우처를 제공해 내수 기업을 수출 기업으로 육성하고, 현재 23개국에서 운영 중인 한국 기업 전용 해외 공동물류센터를 25개국으로 확대한다. ‘수산식품 수출 원팀’ 가동과 고부가가치 수산 가공식품 개발도 올해 해수부가 주력하겠다고 한 계획이다.
권재한 농식품부 농업혁신정책실장은 “수출 잠재력이 높은 신규 품목을 발굴·육성하고, 한류 확산세를 적극 활용해 한국산 농식품의 수출 성장세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이경규 해수부 수산정책실장은 “수산 식품이 국가 수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수출 지원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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