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미분양 사들이는 정부, 전세사기 주택은 방치할건가?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2023. 1. 23.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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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학봉 기자의 부동산 봉다방>
‘전세 전문가’ 김진유 경기대 교수 인터뷰-하
문정부, 신고제 먼저 도입했다면 빌라왕 예방 가능
사기피해 빌라 매입, 공공임대전환도 필요
양질의 임대, 강남 다주택, 사기꾼 구분 않고 정책
3억 빌라 소유자가 10억 전세보다 불리한 청약 제도
다가구 주택 역전세대란도 우려

전세 전문가인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임대차 3법을 도입할 당시 전문가들이 주택 ‘임대차 신고제’를 먼저 도입, 실태를 파악한 후 계약갱신 청구권과 임대료 인상 상한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지만 묵살됐다고 밝혔다. 그는 “신고제를 먼저 도입했다면 빌라왕들의 실체가 그때 어느 정도 드러나 전세사기극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을 조기에 도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작년 3월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연대가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임대차 3법 폐지·축소 및 민간임대사업자 활성화 정책 즉각 중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임대차 3법 졸속개정이 사기극 촉발

-정부가 2020년 임대차 3법을 졸속 시행해 사기극의 판을 깔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임대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임대료 인상률을 5%로 제한한 임대차 2법이 갑자기 도입되면서 시장에 혼란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아파트 전세가격이 폭등하면서 20,30대가 가격이 싼 빌라로 몰렸다. 어떻게 보면 전세 사기극이 벌어질 수 있는 판이 깔린 것이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임대차 신고제’를 먼저 도입해서 실태를 파악한 후 보완대책을 마련한 후 계약갱신 청구권과 임대료 인상 상한제를 도입하자고 했다. 신고제를 먼저 도입했다면 전세보증금이 신고되어 깡통전세 위험이 높은 주택들이 드러나고, 비 상식적인 다주택자들이 파악돼 빌라왕들의 실체가 그때 드러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정부는 순서를 거꾸로 했고 결과적으로 전세사기극이 커졌다.”

-지난 정부는 등록 민간임대 사업 제도를 사실상 폐지했다.

“2020년 임대차 3법 도입과 함께 등록 민간 임대사업자 제도를 사실상 폐지하는 정책을 폈다. 등록 민간 임대사업자는 세제혜택을 받는 대신 임대료 인상이 제한되고 재계약을 해야 하는 등 양질의 임대주택 공급자의 역할이 기대됐다. 정부가 갑자기 등록 민간 임대사업자를 집값 급등의 주범으로 지목, 시장에서 퇴출시키면서 여러 부작용이 벌어졌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임대주택 사업을 벌이던 법인도 종부세 폭탄을 맞고 사업에서 철수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빌라왕과 같은 사기꾼들이 임대시장을 주도하게 됐다. 등록 민간임대 사업자는 최소한 전세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정부가 어느 정도 실태를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다. 미등록으로 수십채, 수백채의 주택을 소유하는 것은 전세 보증금 사기를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주요 외국의 경우, 안정적인 임대차 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기업형 임대사업을 적극 육성한다. “

◇국민의 40%가 임대, 전세시장 안전장치는 필수

-임대주택은 다주택자들이 공급한다. 다주택자 정책이 중요하다.

“지금와서 보면 역대 정부가 다주택자들의 실체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주택자들도 여러 종류가 있다. 강남 등의 고가 아파트를 두세 채 소유한 다주택자들도 있지만 시장의 다수는 노후를 위해 빌라 서너채로 임대사업을 하는 생계형이다. 이들이 가진 주택은 집값도 별로 오르지 않는 저렴한 주택들이다.

여유 자금이 없이 주택을 사들이는 무갭투자가들도 있다. 전세보증금을 노리고 수십채에서 수백채 소유한 빌라왕과 같은 사기꾼들도 있다. 다주택자들의 실태를 파악해서 맞춤형 정책을 폈어야 했다. 국민의 40%가 민간임대주택에서 사는데,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다주택자의 실태를 모르고 정책을 벌인 것이 결국 오늘의 사태로 이어졌다.”

김진유 경기대 교수

-HUG(주택도시보증공사) 의 전세보증이 전세사기를 오히려 촉진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세 보증보험이 빌라 공시가격의 150%까지 가격을 인정해준다. 사기꾼들이 ‘공시가의 150% 이내, 전세보증 가입 안심’ 등을 명분으로 판촉을 해서 세입자를 끌여들이기도 했다. 또 공시가격의 150%까지 전세금을 끌어올리는 근거로 악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험 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로, 세입자들에게는 일종의 사회 안전망이라는 측면에서 불가피하다고 본다. 사기꾼들이 결과적으로 HUG를 대상으로 사기를 친 꼴이 됐지만, 보증보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다만 HUG가 전세금 미반환 사고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사고가 증가하던 2020년 전후해서 국토부나 HUG는 심사기준을 엄격하게 했어야 했다. 당시 정부는 보증대상을 축소할 경우, 서민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으로 방치한 듯하다.

개인이 수백채의 임대주택을 사들이고 전세보증을 신청하면 비정상적이라고 판단을 했어야 한다. 국토부는 집값과 전세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미반환 리스크를 낮게 보고 조기에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 같다. 2020년 임대차 2법을 도입할 때도 이런 부분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오직 전세가격이 오르는 것을 막기위한 법 도입이었다. "

-전세보증 반환 보험을 더 강화해야 하나?

“이번에 드러난 제도의 구멍을 보완해야 한다. 사기꾼을 걸러낼 수 있도록 심사도 강화해야 하지만. 가입대상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 전세보증보험은 전세 계약 기간의 절반이 경과하기 전까지 신청해야 한다. 여기다가 상가 등 근린생활시설은 보증대상에 속하지 않지만, 근린생활시설을 주거용으로 개조한 사례도 상당수 있다. 사고가 늘면서 부실이 늘어나면서 보증 중단위기에 처한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정부가 재정을 지원, 보증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임대주택의 계약시 반환보험 가입여부를 반드시 고지하도록 하는 등의 제도 보완도 필요하다. 더불어 전세계약 시 보증보험 가입대상임에도 잔금일까지 가입이 안될 시에는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권리를 세입자가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

-전세주택의 보증보험 의무화방안은 어떤가?

“현재는 등록 임대사업자에게만 보증보험 가입이 의무화돼 있다. 등록임대사업자 중에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정부가 좀 더 관리 감독을 철저하게 해야 할 것이다.

보증보험은 만능이 아니다. 전세보증 제도를 모든 주택에 일시에 의무화하면 시장이 일시적으로 스톱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중고가 주택들은 전세가와 매매가의 격차가 커서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는 크지 않다. 기존의 임대차 보호법에서 소비자 권리를 강화하는 정도의 보완책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대체로 전세 사고가 터지는 주택은 전세가 1억~3억원대에 집중돼 있다. 이런 주택은 의무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2~3채 임대하는 경우는 집주인들이 전세가가 떨어지더라도 대출을 받는 등 전세보증금을 반환하려는 노력을 한다. 10채 이상 임대를 할 경우, 전세가격이 하락하면 사기 의도가 없어도 전세금 반환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일정 가구수 이상의 임대를 놓는 경우, 등록임대사업자가 아니더라도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본다.”

-빌라 시장을 정상화할 방법은 없는가?

“저렴한 빌라와 다세대 주택은 서민들의 주거를 책임지고 있다. 아파트보다 인허가 절차가 간편하고 단기간에 건설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가격이 아파트에 비해 잘 오르지 않고 편의시설이 크게 부족해 매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다가 빌라 등 저가 주택 한채를 갖고 있다고 아파트 청약시장에서 배제되는 등 불이익을 받는 것도 문제이다. 10억원 전세 세입자가 무주택자라는 이유로 3억원 빌라를 소유한 유주택자보다 청약 등에서 혜택을 보는 것은 문제이다. ”

-대통령이 작년 7월 전세 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본격적인 대책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아직도 전세 사기극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대책도 사고가 터진 다음 쫓아가며 뒷수습하는 형국이다. 보증금 반환 사고 가능성이 있는 주택의 실태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십채, 수백채의 주택 보유자의 실태조사를 조속하게 벌여야 한다. 세입자가 자기집 소유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지 알아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다주택자들의 정보를 갖고 있는 국세청이 국토부와 합동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2021년 고점에서 계약한 전세의 만기가 도래하는 올해는 전세금 미반환 대란이 벌어질 수 있는 만큼, 미리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가 분양가가 비싸 팔리지 않는 이른바 악성미분양 주택을 매입,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정책을 택했다. 실제 LH가 경매로 넘어간 빌라를 매입해서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는 것 아닌가?

“사기로 경매로 넘겨지는 빌라를 정부가 구입해서 공공임대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만 하다. 기존에도 다세대주택을 구입해서 서민들에게 임대해주는 매입임대주택 사업이 있다. 현재 사기로 인해 경매로 넘어간 빌라의 경우, 종합부동산세 등이 체납돼 낙찰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런 부동산을 정부가 매입해서 활용하는 것도 고민해볼 만하다.”

-다가구 주택이 더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빌라,다세대 주택은 각 주택 별로 등기를 하기 때문에 권리 관계가 명확하다. 그런데 한 채로 등기돼 있지만, 여러 가구가 있는 다가구 주택은 권리관계가 훨씬 복잡하다. 가령, 다가구 주택에 1억 전세보증금으로 10가구가 살고 있다면, 문제가 돼 경매로 넘어가 6억에 팔릴 경우, 입주한 순서대로 6가구만 보증금을 돌려받고 나머지 4가구는 피해를 볼 수 있다. 전세가 가격이 급락하면 다가주택에서도 연쇄적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빌라 전세시장이 사기극으로 거래가 거의 끊겼다.

“사기 불안 탓에 빌라 전세를 찾는 세입자가 줄어들면 역전세 대란이 더 확산될 수 있다. 전세시장에 대한 불안으로 월세화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전세가와 매매가의 격차가 10~20% 정도라면 너무 불안하다. 그 격차가 30~40%는 벌어져야 한다. 월세화의 진전은 불가피한 만큼, 제도 개편도 필요하다. 월세에 대한 보조금 지원정책은 월세를 급등시킬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 과거 전세대출을 완화하면서 전세가격이 급등했다. 우리도 월세를 낮게 받는 임대주택 사업자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호주의 경우, 공시한 시장 가격 이하로 월세를 받으면 세금을 깎아준다. 세제혜택을 주는 대신 정부가 임대료 및 사고 리스크를 통제하는 식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사기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구제해야 하는 것 아닌가 ?

“보증보험에 가입해 있으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정부도 보증보험의 집행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보증보험 미가입자는 청년층의 인생이 망가지는 수준의 피해를 볼 수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를 위한 기금 조성도 고려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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