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도 운전석도 없는…하네다공항에 가면 ‘자율주행’ 버스 탈 수 있다
도시·지방 곳곳에서 다양한 실증실험
“출발하겠습니다.”
13일 오후 2시25분 도쿄 오타구 하네다공항 3터미널 앞에 정차해 있던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핸들도 운전석도 없이 운행이 가능한 이 버스는 미래형 스마트시티를 표방한 대규모 복합시설인 ‘하네다 이노베이션 시티’에서 운영하는 자율주행 버스다. 승객 10명 정도가 앉는 미니버스 크기로 프랑스 회사인 나비야가 만들었다.
이 버스는 지난 5일부터 3월 말까지 자율주행 실증실험 중이다. 최대 시속 20㎞으로 약 3.9㎞를 주행한다. 전철로 한 정거장 거리인 하네다공항 3터미널역에서 ‘이노베이션 시티’가 있는 덴쿠바시역를 오간다.
자율주행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 버스엔 운전사 대신 오퍼레이터 1명이 타고 있다. 그는 게임기 조이스틱 같은 컨트롤러를 손에 쥐고 있었다. 차안엔 도로와 주행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단말기도 붙어 있다. 지피에스(GPS)로 자율주행 버스의 위치를 파악하고, 차량에 탑재한 카메라와 센서로 장애물을 감지하면서 미리 정해진 경로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다. 오퍼레이터는 “운전은 대체로 자율주행 시스템에 맡긴다. 위험 상황에서만 컨트롤러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스는 공공도로에서 트럭이나 자동차와 섞여 직선·커브 길을 안전하게 주행했다. 속도가 느린 것을 제외하고는 자율주행 버스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였다. 버스 운행 중간에 ‘딩동~’ 하는 종소리가 꽤 여러 번 울렸다. 오퍼레이터는 “신호등이나 앞에 차가 끼어드는 등 장애물이 나타나면 센서가 작동하면서 종소리가 난다. 안전을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이 버스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편도 8번씩, 왕복으로 총 16번 운행한다. 목적지까지 편도로 약 10분 정도 걸린다. 무료로 운행되며, 사전 예약을 하면 누구나 탈 수 있다. 그래서인지 평일 낮인데도 이용하는 승객이 꽤 있었다. 하네다의 자율주행 버스는 이노베이션 시티 내·외부에서 2020년 9월부터 시범 운영되고 있다.
일본은 도로교통법을 바꿔 올 4월부터 한정된 지역이나 환경에서 차량의 모든 조작을 자율주행 시스템이 담당하는 ‘레벨4’ 주행을 허용했다. 쉽게 말해 도로에서 ‘운전자 없는 버스’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자동차공학회는 차량 자율주행을 0~5단계로 구분한다. 2단계까지 인간이 개입하고 3단계부터는 시스템이 주체가 된다. 4단계에는 위험 상황에서도 시스템이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5단계는 완전한 자율주행을 말한다.
일본에선 이 제도가 시행된 뒤 도쿄 하네다와 후쿠이현 에이헤이지초 정도가 ‘레벨4’ 조기신청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레벨4를 인정받으면 하네다 자율주행 버스에 오퍼레이터가 타지 않아도 된다.
일본에서 자율주행 실험은 스마트시티를 꿈꾸는 도시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후쿠이현 에이헤이지초에선 2021년 3월부터 ‘운전자 없는 자율주행 차’가 운행 중이다. 6명 정도가 탈 수 있는 골프장 ‘전동카트’ 형태의 자동차로 자전거·보행자 전용 도로를 달린다. 인근에 자율주행 자동차를 원격으로 관리하는 시설이 있고, 담당자가 자동차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대응을 한다. 약 2㎞ 정도의 구간이긴 하지만 ‘레벨3’ 수준의 자율주행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마을의 노인이나 학생들의 이동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관광객의 탑승도 늘고 있다.
이바라키현 사카이마치는 2020년 11월부터 일본 지방자치단체 처음으로 공공도로에서 자율주행 노선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하네다공항과 마찬가지로 오퍼레이터가 버스에 타서 긴급 상황이 생기면 대응한다. 사카이마치는 인구 약 2만4천여명의 작은 마을로 철도역이 없어 버스가 대중교통의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고령화로 버스 기사를 구하기 힘들어지며 자율주행 버스 도입을 결정했다. 현재 왕복 약 6km, 8km 두 경로에서 매일 운행 중이다. <아사히신문>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지방이나 운전자 인력 부족을 고민하는 업계에서는 자율주행에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미국·중국·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미래의 주요 기술인 자율주행 실현을 위한 도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2월 영국 자동차데이터분석기관 컨퓨즈드닷컴의 자료를 보면, 자율주행차 준비도에서 미국이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안전요원이 탑승하는 것을 조건으로 로보택시(자율주행 택시) 사업을 승인했다. 제너럴모터스(GM)의 자회사 크루즈와 구글의 계열사인 웨이모는 이미 로보택시 서비스를 시작한 상태다.
미국에 이어 일본(2위)이 자율주행 분야에서 앞서 있으며 프랑스(3위), 영국(4위), 독일(5위) 등이 뒤를 따랐다. 한국은 16위다. 특허출원은 2위를 차지했지만 정책 및 법률 부문과 스타트업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기는 하지만 ‘운전자 없는 자율주행’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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