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러시아의 겨울’ 아이 태어나자 마자 베란다에 내놓아
‘굴랴찌(гулять)’.
러시아어로 ‘산책하다’란 뜻이다. 러시아에선 일상 생활에서 ‘굴랴찌’라는 말이 ‘유비찌(любить·사랑하다)’라는 말보다 더 많이 쓰인다. 그만큼 러시아인들의 삶은 산책과 직결돼 있다. 남녀노소 어디서든 산책은 일과이다.

지난 19일 야쿠티야(사하) 공화국 오이먀콘. 수은주가 영하 50도까지 곤두박칠쳤다. 22일 오후 현재 기온은 영하 43도를 기록 중이다. 이곳의 기온은 당분간 영하 40~50도로 예보됐다. 북극해를 끼고 있는 사하공화국은 지구상 사람이 살고 있는 곳 중 가장 추운 곳이다. 그런데도 사하인들은 집에만 머물지 않는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일상을 유지한다.
영하 50도면 현지 적응되지 않은 일반인들은 숨이 턱 막힌다. 기자가 두 차례 취재간 적 있는 북극해 유목민들의 무대인 러시아 북쪽 땅끝 야말반도. 헬리곱터에서 내리자 마자 숨이 막히니 목도리로 코를 막지 않으면 숨쉬기 쉽지 않고 호흡이 불편했다. 추위보다 호흡하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코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이 정도 추위면 카메라 작동은 물론 볼펜 등 필기 도구도 작동하지 않는다. 도시 문명의 물건들은 죄다 사용 불가다. 이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네네츠 원주민들은 일상을 유지한다. 순록과 함께 유목 생활을 하는 이들 무리에는 갓 태어난 아이도 예외가 없다. 하루 200km 이상 이동을 하는 날에도 아이들을 썰매에 태우고 함께 이동했다.
이처럼 러시아인의 일상에서 산책은 절대적이다. 모스크비치(모스크바 시민)들도 영하 15~3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에다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산책을 거르지 않는다. 거의 시민 전부가 숲속을 찾아나선다.

모스크바 남부의 트로파료프스키공원.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도 산책 나온 시민들로 종일 북적인다. 유모차에 유아를 태운 엄마들의 산책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유모차 속의 아이들은 포대기로 온몸을 감싸거나 외투와 모자로 중무장시킨다. 하지만 얼굴은 노출돼 있거나, 호흡하기 편하게 코를 노출시킨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에다 눈보라까지 합세해 체감온도는 거의 영하 20도를 오르내려도 아이들의 산책은 이어진다. 맞벌이 하는 부부들은 퇴근 후 저녁에라도 반드시 아이를 데리고 산책한다.
아무리 추워도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한다는 게 러시아인들의 철칙이다. 심지어 산부인과 병원에서도 태어난지 몇시간 되지 않은 아이들을 베란다에 노출시켜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한다. 산모는 퇴원 후 아이들과 함께 산책에 나서는 게 일반적이다. 의사들은 겨우내 신선한 공기를 많이 마시고 땀 흘리는 운동을 해야 건강을 유지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햇볕과 공기, 물은 유아 건강을 위해 절대적이다”며 “겨울에도 엄마들은 하루 2~3시간 아이와 함께 산책해야 한다”고 적극 권장한다.

겨우내 해를 보기 힘들고 맑은 날을 접하기 힘든 모스크바에선 잠시라도 해가 나는 날 산책은 무조건이다. 저기압을 극복할 수 있는 즉효약도 햇볕이라는 게 모스크비치들의 통념이다. 이 때문에 어쩌다 잠시 해가 나는 날이면 모스크비치들은 습관적으로 베란다에 나가 태양을 흡입한다. 아이들에겐 일조량 부족으로 충당하지 못한 비타민D와 요오드를 별도로 섭취하도록 하는 것도 거의 의무 사항이다.
모스크바는 보통 집 주위에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공원과 숲을 접할 수 있다. 이런 환경과 어우러져 러시아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산책을 습관화 해 혹독한 겨울과의 공존법을 배운다.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엄마들이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것을 보는 외국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그들에게 산책은 유아나 노인을 막론하고 이미 생활 습관이다.

산책과 더불어 모스크비치들이 즐기는 겨울 스포츠는 노르딕 스키를 하며 즐기는 크로스컨트리다. 산이 없는 모스크바에서는 평지에서 조깅하듯 스키를 탄다. 겨울이면 길거리나 숲 어디서나 러시아인들이 스키 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모스크바 전역이 스키장이 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모스크바에선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스키마라톤 대회도 자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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