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애들레이드의 기적' 권순우, "데이비스컵 직관 오실 거죠?"

서봉국 2023. 1. 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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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 ATP통산 2승 직관 후기

"아니, 권순우가 드레이퍼도 누르고 결승에 올라갔다고?" "이건 계획(?)과 다르잖아?" 2019년 US오픈 이후 4년 만의 그랜드슬램 출장. 지난 13일 인천에서 콴타스 항공을 타고 무려 20시간 만에 멜버른에 도착했건만 애들레이드에서 들려온 뜻밖의 낭보에 취재진 스케줄은 다 꼬여버렸습니다. 일찌감치 권순우 전담 유다니엘 코치와 호주오픈 1회전 직전 멜버른 연습 코트에서 만나 인터뷰하기로 약속을 했지만, 이젠 호주오픈이 문제가 아닙니다.

비행기 날개 위로 보이는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경기장 코트
한국 테니스 사상 세 번째 ATP 투어 우승이 걸린 절체절명의 상황. 숙소를 잡자마자 다음날 다시 애들레이드행 국내선 비행기 편을 수소문했고, 테니스협회 관계자들의 기민한 대처 속에 가까스로 애들래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 결승전 취재 신청에 성공했습니다. 휴~

계획에 없던 애들레이드행..녹음이 우거진 친환경 도시

멜버른을 '살짝 디스'하던 애들레이드대회 관계자
조식도 거른 채 멜버른에서 700km 떨어진 애들레이드행. 호주 국내선 기내에서는 와이파이가 지원되는 덕분에 백전노장 아굿과 맞붙은 결승전 상황을 실시간 문자로 보며 마음을 졸였고, 1세트가 끝난 뒤에야 애들레이드에 내렸습니다. 다행히 경기장과 공항은 불과 15분 거리. 호주오픈 메인스폰서이자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을 지원하는 KIA차량을 타고 대회 관계자들의 에스코트 속에 질주한 끝에 2세트 중반 코트에 도착했습니다.
노을이 황홀했던 애들레이드 인터내셔널 2차 대회 결승전 당일
"다소 오염된 호주 제2의 도시 멜버른보다 우리 애들레이드가 훨씬 친환경적입니다. 특히 도심 강변에 출몰하는 펠리칸은 꼭 보고 가세요!" 듣는 둥 마는 둥, 애타는 취재진에게 던진 대회 관계자의 친절한 설명이 그래도 귓전에 남았습니다

"Come on, Kwon!" 현지인들도 뜨거운 응원

지각(?)이 전화위복..중계카메라 옆자리를 얻었습니다
한 세트 씩을 주고받은 뒤 맞이한 3세트, 3번째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 당하면서 '이젠 끝이구나' 생각했는데 이게 웬 걸, 기적처럼 브레이크백을 한 뒤 역전에 성공했고 결국 승부는 피말리는 타이브레이크에서 갈렸습니다. 2세트 중반 라켓을 집어던지고, 유다니엘 코치 쪽을 바라보며 "어떡해야 돼?"를 눈빛으로 물어보던 권순우의 불안한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었죠. 승부처에서 대담한 스트로크와 적극적 네트 플레이. 마지막 매치포인트, 호크아이 판정 끝에 아굿의 공이 아웃되면서 권순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환한 미소를 던졌습니다.

한국 테니스 '약속의 땅' 호주

테니스 취재 20년이 넘었다는 호주기자..이형택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이형택의 시드니인터내셔널 우승 이후 우리 선수로는 20년 만의 호주 ATP대회 정상 정복, 권순우로선 관중도 거의 없었던 재작년 아스타나오픈과는 달리 만원 관중의 열광적 응원 속에 만끽한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죠. ATP 투어 대회 단식에서 '러키 루저가' 우승한 사례는 권순우까지 단 10차례. 그 좁은 문을, 그것도 세계 톱10에 가까운 부스타와 아굿을 연파하고 이뤄낸 기적이었습니다.
수줍은 까까머리..정희균 대한테니스협회장도 응원의 힘을 보탰습니다
결승전 뒤 인터뷰, 한 호주기자도 권순우에게 "이형택을 아느냐?"라고 물어볼 만큼 또 한번 호주는 한국 테니스 역사의 새로운 현장으로 남게 됐습니다. 전날 준결승에서 아굿이 호주 선수 코키나키스를 꺾고 올라와 홈팬들에겐 미운 털이 박힌 탓일까요? 시종일관 "컴온 권"을 외쳤던 호주 관중들도 적지 않은 힘을 보태준 듯 합니다.

'헤어 스타일에 진심'..일일이 팬서비스

국내외 팬을 가리지 않고 흔쾌히 셀카
기대를 모았던 호주오픈 1회전. 권순우는 정작 유뱅크스(곧바로 2회전 '광탈')의 크레이지 모드(1회전 에이스 42개/위너 83개 실화?)에 3시간 8분 접전 끝에 초반 탈락했습니다. 애들레이드 1, 2차 대회 11경기 강행군 피로가 쌓였겠죠. 이 미국 선수 키가 198cm인데 거짓말 조금 보태 얼굴이 주먹만 하더군요. 존 이스너, 호주의 샛별 포피린 등 제가 멜버른에서 만난 장신 선수들도 하나같이 '小頭'였습니다.
호주오픈1회전 뒤 공식 인터뷰룸
머리 얘기 나온 김에, 애들레이드 대회 인터뷰 촬영 때 얼굴에 음영이 졌던 터라 공식 인터뷰 때 "모자를 좀 들어달라"고 했더니, "헤어스타일에 민감해 죄송하지만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이미 '까까머리 투혼'이 다 알려진 상황이었지만, 선수의 의사를 존중해야죠. 아, 참고로 아굿은 '마라톤 테니스' 머레이까지 제치고 호주오픈 16강 순항 중입니다. 애들레이드 결승전 패배가 약이 된 걸까요?

'포핸드 장인'에서 공격적 리턴까지 무장..새 라켓도 한 몫

오랜지색이 유다니엘 코치..은근 근육형이라 놀랐습니다
포핸드 마스터로 불릴 만큼 반 박자 빠른 라이징볼 스트로크가 특기인 권순우. 동계훈련 때 연습했던 공격적인 '스탭 인 리턴'이 애들레이드에서 주효했고, 무엇보다 톱랭커들과 대결에서 자신감을 얻었다는 얘기였습니다. ATP홈피는 애들레이드 대회를 결산하며 강력해진 세컨서비스에도 후한 점수를 줬습니다. 유다니엘 코치도 "순우가 경기 중 제게 도움을 청했을 때 조언한 것은 사실상 없고, 선수의 판단 아래 경기를 훌륭히 수행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최근 그랜드슬램 초반 탈락 단골손님이 된 US오픈의 여왕 라두카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코치를 바꾸면서 부진에 빠진 것을 보면, 미국 유학을 경험하고 영어가 유창한데다, 투어생활까지 경험한 유다니엘 코치와 권순우의 궁합 역시 상승세에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호주오픈 1회전..300여 명 교민이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사실 동네 테니스장에서도 세컨서브 좋은 분이 고수잖아요? 호주 원정을 전후로 오래 쓰던 '헤드' 라켓 대신 요넥스의 '브이코어 97'로 바꿨다는데 특히 부드러운 타구감이 좋았다고 털어놓더군요.

'직관 기회' 데이비스컵..'컴퓨터샷' 고팽과 맞대결 기대

지난해 오스트리아전 완승 재연을 기대합니다
아쉽게 권순우 경기 중계를 놓쳤다면 불과 2월 첫 주, 권순우의 세계적 포핸드를 직관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벨기에와 맞붙는 단체전 데이비스컵 예선, 서울 올림픽 공원 실내코트가 무대입니다. 벨기에 하면 과거 톱10을 넘나들던 '컴퓨터 샷' 다비드 고팽(50위)이 버티는 강호. 권순우 현재 랭킹이 52위이고, 두 선수 스타일도 다소 비슷해 더 흥미로운 매치업이 예상됩니다.
애들레이드 '신스틸러' 호주 원주민..시상식 악기 연주도 인상적
올림픽공원 관리 책임을 맡은 국민체육진흥공단과 약간의 잡음(?)이 있었지만, 봉합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회는 별다른 무리 없이 열리게 됐습니다.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을 권순우, 지난해 금발처럼 새로운 헤어스타일로 국내 팬앞에 나타날 지도 모르겠습니다.

PS.호주오픈에서 돌아온 출장 시차도 있고 해서 다소 늦은 직관 후기가 됐습니다.

아직 진행중인 호주오픈, '왕의 귀환' 조코비치 얘기로 곧 찾아오겠습니다.

YTN 서봉국 (bksuh@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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