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도 졸고 있었다, 1박2일 경기 이후 패배한 앤디 머리의 일침
남자 테니스 동갑내기 앤디 머리(36·영국·세계 66위)와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5위)가 2023 호주오픈 경기 시간 편성 문제에 관해 한 목소리를 냈다.
머리는 21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대회 단식 3회전에서 스페인의 로베르토 바우티스타 아구트(35·25위)에게 세트스코어 1대3(1-6 7-6<9-7> 3-6 4-6)으로 무릎을 꿇으며 대회를 마감했다.
같은 날 열린 대회 단식 3회전에서 조코비치는 그리고르 디미트로프(32·불가리아·28위)를 3대0(7-6<9-7> 6-3 6-4)으로 완파하며 4회전에 진출했다. 그는 23일 16강전에서 세계 랭킹 24위 알렉스 드 미노(24·호주)와 맞붙는다.
하지만 정작 이날 화제가 된 건 호주오픈의 밤 경기 편성 문제였다. 앞서 머리는 19일 열린 단식 2회전에서 5시간 45분의 혈투 끝에 호주의 서나시 코키나키스(27·159위)에게 3대2(4-6 6-7<4-7> 7-6<7-5> 6-3 7-5) 역전승을 거뒀다.
문제는 이 경기가 오후 10시 20분 정도에 시작했다는 것이다. 경기가 끝났을 땐 이미 20일이었고, 시계는 무려 새벽 4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관중석에 졸고 있는 관객들이 포착될 정도였다. 대회 중계진은 이 경기를 ‘자정의 광란(Midnight Madness)’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머리는 경기 후 “누구를 위한 경기였는지 모르겠다. 선수들을 포함해 팬, 심판진, 볼보이 그 누구에게도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기 편성 시간에 관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자리를 지켜준 분들에게 감사하지만, 빨리 잠을 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머리는 결국 훈련 리듬이 꼬이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며 다음 날 나선 3회전에서 탈락했다. 그는 두 번째 세트 이후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지는 등 ‘1박2일’ 마라톤 경기 여파에 시달리는 듯했다. 머리는 3회전 패배 이후 “새벽 4시에 경기가 끝난다는 건 선수들에게 좋지 않다”고 반복하며 아쉬움을 표출했다.
이날 3회전을 마친 조코비치는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 머리에게 힘을 실어줬다. 조코비치는 “팬들에게 자정이나 새벽에 끝나는 경기들은 흥분되는 게 사실이다”면서도 “하지만 나와 같은 선수들에겐 괴로운 일이다. 이긴다 해도 또 코트에 서야하기 때문이다. 수면과 생활 리듬이 완전히 깨지지 않냐”라고 했다. 이어 “결국 TV 중계진들이 원하는 시간에 결정되는 문제겠지만, 선수들의 의견은 중요하다”면서 “경기 스케줄에 관한 고려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호주오픈의 밤샘 경기 문제에 관해선 꾸준히 지적돼 왔다. 2008년 3회전 당시 레이튼 휴잇(호주)과 마르코스 바그다티스(키프로스)의 경기가 풀세트 혈투 끝에 새벽 4시 34분에 휴잇의 승리로 끝나는 일도 있었다. 휴잇은 이어진 16강전에서 0대3으로 완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호주오픈은 경기를 편성할 때 경기장마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하는 ‘낮 세션(day session)’과 오후 5시부터 진행되는 ‘밤 세션(night session)’으로 구분지어 분류한다. 문제는 밤 세션에 통상 2~3개의 경기가 배정됐을 때 전(前) 경기 결과에 따라 다음 경기 시간이 밀리고 조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회전 당시 머리의 경기는 이전 경기들의 연이은 접전 끝에 오후 10시 20분에 시작하며 애초에 험난한 일정을 예고했다. 자고 싶다고 경기를 그냥 포기할 순 없었고, 역대급 명승부가 펼쳐지며 상상할 수 없는 시간에 경기에 마침표가 찍혔다.
그래도 머리는 이 대회에서 희망을 찾았다. 머리는 한때 로저 페더러(스위스·은퇴), 라파엘 나달(스페인), 조코비치와 함께 남자 테니스 ‘빅4(Big 4)’로 군림했다. 수많은 부상에 허덕이며 은퇴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그는 이번 대회에서 건재를 과시하며 여전히 경쟁력이 있음을 입증했다. 머리는 “이 대회를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걸 바친 기분이라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며 “(이 대회에) 조금 더 오래 있길 바랐는데 어쩔 수 없다. 내 경기력엔 만족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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