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무기공장 병원 건물, 보존해야 할까요?
부평미군기지 캠프마켓에는 과거 일본군 조병창(무기공장)의 병원으로 사용된 건물이 있습니다. 조병창은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무기를 만들어 보관하던 시설로 조선인들이 강제노동으로 지은 것입니다. 이 조병창에 1945년 해방 이후 미군부대가 들어섰고, 조병창 병원 건물은 미군도 병원으로 썼습니다. 하지만 한국전쟁 중 대부분 소실돼 미군은 남은 병원 건물을 다목적 창고로 활용했습니다. 현재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은 한 개동만 남았습니다.
부평미군기지가 반환되면서 이 건물의 존치 혹은 철거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회에서도 토지 정화 비용과 시간적 제약 등을 이유로 철거하자는 쪽과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했습니다. 오랜 논의 끝에 2022년 6월 시민참여위에서 철거 뒤 복원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인천시도 국방부에 ‘사후 복원을 전제로 한 철거’ 방향을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두 달여 뒤인 8월 철거 유예를 요청했고 인천시는 결국 철거를 유보했습니다.
이후 국방부와 인천시, 문화재청은 조병창 병원 건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다시 논의했습니다.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에서도 마찬가지로 논쟁이 벌어집니다. 9월 국방부와 인천시, 문화재청 3자가 머리를 맞댄 결과 철거 쪽으로 방침이 다시 기울었습니다. 화학물질 등으로 오염된 캠프마켓 터의 토양을 복원하려면 병원 건물을 존치한 상태에서 하기엔 시간상 무리가 있다는 이유입니다. 환경보전법상 토양오염 정화 기간은 2년이고 1년 이내로 두 차례 연장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병원 건물이 있는 캠프마켓 B구역은 이미 2년의 정화 기간이 지났고, 2022년 12월까지 한 차례 6개월 기간 연장을 했습니다. 한 번 더 연장해도 길어봐야 2023년 12월에 토양오염 정화 기간이 종료됩니다.
결국 국방부는 2022년 조병창 병원 건물 활용 계획을 제시하지 않으면 철거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인천시에 보냈습니다. 인천시는 이에 별도의 공문을 보내지 않았고, 국방부는 2022년 11월 철거를 위한 석면 제거 공사를 했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지역 역사학계에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인천시는 국방부에 철거 유보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국방부도 인천시와 협의할 때까지 철거 공사는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철거는 중단됐지만 캠프마켓 조병창 건물을 둘러싼 논의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철거와 중단을 반복하면서 이해관계자 사이의 의견 대립이 더욱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천시는 2022년 12월부터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 부평숲추진위원회 등과 세 차례 ‘부평 캠프마켓 현안 소통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존치를 주장하는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와 철거를 주장하는 부평숲추진위원회의 견해차는 좁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2023년 1월18일 열린 마지막 소통간담회에서도 합의안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인천시는 19일 국방부에 지난번 중단된 토양오염 정화작업을 다시 시작해달라는 공문을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는 같은날 인천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천시는 시민 의견을 수렴해 조병창 병원 건물 존치 여부를 결정하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습니다.
캠프마켓 조병창 병원 건물 처리 방식은 캠프마켓 D구역에 있는 일제강점기 근대 건축 문화재 처리 방식과도 연결됩니다. 조병창 병원 건물은 캠프마켓 B구역에 있습니다. B구역은 조병창 병원 건물을 제외하면 존치 여부를 두고 갈등이 있는 건물이 없습니다. 하지만 D구역에는 71개 미군 건물이 있고 이 중 25개 건물에 대해 문화재청은 보존을 권고한 상태입니다. 조병창 병원 건물을 둘러싼 논의가 D구역에서도 반복된다면 그 갈등양상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이에 시는 D구역은 오염토 정화에 앞서 충분한 문화 및 역사적 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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