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이 '좔좔' 흐르는 LA갈비, 골라 먹는 재미를 주는 모둠전, 탱글탱글한 '피부'를 자랑하는 잡채. 먹기 전부터 식욕을 끌어올려 주는 메뉴들이다. 이 같은 명절의 단골 메뉴의 공통점은 '맛있다'는 것 외에도 하나 더 있다. 바로 '기름진 고칼로리' 음식이라는 것. 특히 이번 설 연휴는 주말을 포함해 4일간의 여정이 진행 중이라 식탐을 제어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실제로 명절엔 평소보다 과식하기 쉽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경상대 식품영양학과 김석영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평소 식사량을 절제하지 않는 그룹이 추석 때 먹은 열량은 하루 2515㎉로 평일(1755㎉)보다 43.3%나 많았다. 고칼로리에 고지방식이 많은 명절 음식은 같은 양의 단백질 식품을 먹을 때보다 체지방을 더 쉽게 늘린다.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는 "단백질의 포만감 지속시간은 최대 4시간이지만, 탄수화물·지방은 1~2시간에 불과하다"며 "지방과 당분이 많은 명절 음식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뇌가 허기를 빨리 느끼게 해 식욕을 촉진한다"고 경고했다.
그렇다고 명절에 맛있는 명절 음식을 먹지 않을 수는 없는 법. 기왕 먹는 명절 음식, 살 안 찌게 먹는 '참신한' 방법 6가지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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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혜는 밥 먹기 전에 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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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명절엔 식사를 다 마친 후 디저트용으로 식혜를 마신다. 그런데 식혜를 식사 직전에 마시면 어떻게 될까. 김형미 동덕여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는 "식혜 100mL(종이컵 반 정도)를 식사 전에 먹으면 과식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식혜에 든 설탕 같은 '단순 당'이 뇌 에너지원으로 재빨리 흡수되면서 뇌에서 포만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 덕분에 식사할 때 밥을 적게 먹을 수 있다. 이 방법은 뇌를 속여 식욕을 일시적으로 떨어뜨리는 기전이다. 단, 혈당을 조절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에겐 이 방법이 권장되지 않으며, 이들은 식혜 대신 충분한 양의 물을 먼저 마시는 게 대안이다. 물은 칼로리가 없으면서도 위에 포만감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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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메인 메뉴는 맨 나중에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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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할 때 메뉴별 먹는 순서를 조정하면 총식사량을 줄일 수 있다. 채소 샐러드, 나박김치, 데친 나물, 생선찜, 미역국 등 저열량 음식을 먼저 먹어 배를 어느 정도 불린 뒤 LA갈비 구이·명태전 같은 고열량 음식을 먹는 식이다. 특히 삼색 나물(시금치·도라지·고사리)과 미역 등에 풍부한 식이섬유는 포만감을 빠르게 느끼게 해준다. 처음부터 모든 음식을 상에 올리지 말고, 고칼로리 음식을 나중에 올리는 것도 팁이다. 몸에서 쓰고 남은 탄수화물은 체내에서 살(지방)로 바뀐다. 밥(탄수화물)양을 줄이려면 밥을 가장 나중에 먹어보자. 한 끼에 밥과 송편이 모두 있다면 밥을 송편으로 대체해도 좋은 방법이다. 단, 콩팥 질환이 있다면 단백질 식품이나 채소·과일의 과다 섭취는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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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0번 씹고, 30분 이상 대화하며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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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상차림이어도 식사 시간을 늘리면 식사량을 줄일 수 있다. 음식은 한입에 30번 이상 씹어야 한다. 오래 씹으면 침 분비량이 늘어나 소화력을 높일 뿐 아니라 씹는 행위 자체가 포만감을 느끼게 해줘서다. 식사를 시작하면 30분 정도 후에 포만 중추가 자극돼 '배가 부르다'고 느낀다. 30분간 천천히 나눠 먹어야 하는 이유다. 식탁에서 가급적 음식과 먼 거리에 착석하는 것도 과식을 막는 팁이다. 물리적으로 나와 음식과의 거리가 멀수록 음식을 떠먹는 행위를 자제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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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작은 식기류 사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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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크기를 줄여보자. 음식을 작은 그릇에 담으면 같은 양이라도 더 많게 느낀다. 미역국의 경우 조갯살을 발라내기보다 조개껍데기째 국그릇에 넣으면 양이 많아 보이는 데다, 조갯살을 발라내느라 식사 시간이 자연스레 길어진다. 숟가락 크기를 줄이기만 해도 식사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수원여대·안산대·동덕여대 공동 연구팀은 대학생 24명을 대상으로 성인용 일반 숟가락(부피 8.3㏄)과 어린이용 작은 숟가락(부피 4㏄)을 제공한 다음, 첫째 주엔 일반 숟가락으로, 둘째 주엔 작은 숟가락으로 식사(577.4㎉)하게 했다. 그랬더니 이들이 일반 숟가락으로 먹을 때는 13.6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작은 숟가락으로 먹을 땐 15.7분으로 식사 시간이 길어졌다. 1분당 섭취량은 각각 35.7g, 27.9g으로 작은 숟가락으로 먹을 때 더 적었는데도 포만감은 차이가 없었다. 천천히 오래 먹으면 적게 먹어도 포만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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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파란색·보라색 활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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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에 따라 식욕을 조절할 수도 있다. 특히 파란색·보라색 계열은 식욕을 떨어뜨린다. 일본 도요대의 색채학자인 노무라 주니치 박사는 색깔에 대한 식욕 반응 연구를 통해 '식욕 스펙트럼'을 발표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빨간색·주황색에서 식욕이 가장 상승했고, 노란색과 녹색이 그 뒤를 이었다. 황록색·파란색에서 보라색으로 이어지는 색상에서는 식욕이 급격히 떨어졌다. 빨간색·주황색·노란색 등 빛 파장이 길고 따뜻한 색은 긴장과 흥분도를 높여 식욕을 돋우고, 파란색·보라색 등 파장이 짧고 차가운 색은 긴장과 적대감을 낮춰 마음을 가라앉히며 식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보고된다. 빨간색이 식욕을 자극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은 학생 225명을 대상으로 스파게티를 각각 흰 접시와 빨간 접시, 흰 식탁보와 빨간 식탁보에서 먹게 한 다음 식사량을 비교했다. 그 결과, 흰 접시에 먹은 그룹은 빨간 접시 그룹보다 식사량이 21% 더 적었고, 흰 식탁보에서 먹은 사람은 빨간 식탁보에서 먹은 사람보다 섭취량이 10% 더 적었다. 연구팀은 빨간색이 뇌의 감정 중추뿐 아니라 식욕 중추를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명절 식탁에서 과식을 피하고 싶다면 파랗거나 보라색의 식탁보·식기류를 사용하거나, 여의찮다면 빨간색 식탁보·식기류는 가급적 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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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설탕 대신 양파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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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물엿 등의 당분은 몸에 빠르게 흡수되는 단순 당이다. 단순 당은 혈당을 빠르게 올리고, 살을 쉽게 찌운다. 단맛을 낼 땐 양파를 활용해 보자. 양파를 가열하면 매운맛 성분이 분해돼 단맛을 내는 성분이 설탕보다 50배 이상 많아진다. 불고기를 만들 때 일반적인 레시피보다 양파 사용량을 3~4배 늘리면 설탕 사용량을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 단, 양파의 단맛·감칠맛을 최대한 끌어내려면 10분 이상, 타지 않게 가열해야 한다. 양파 소스를 미리 만들어 다양한 요리에 활용해보는 건 어떨까. 양파 100g을 얇게 채를 썰어 물 500㎖와 함께 약한 불에서 30분 졸인 후 체에 걸러 양파 물만 사용하면 양파 소스가 완성된다. 양파 소스는 어느 요리에나 사용해도 되지만 해산물 요리와 궁합이 좋다. 생선·조개류의 비린내와 흙내를 잡아주면서 단맛·감칠맛은 높여준다. 양파 소스를 생선조림·갈비찜 등에 사용하면 자연스러운 단맛을 내기 좋다. 칼국수·수제비를 만들 때 밀가루 반죽에 양파 소스를 사용하면 밀가루 풋내가 덜 나고 잘 달라붙지 않는다. 양파 껍질엔 글루탐산이 함유돼 있어 감칠맛을 낸다. 국물을 낼 때 양파를 껍질째 넣고 끓이거나 양파 껍질만 따로 잘 씻은 뒤 진한 색이 나도록 팬에 구운 다음 끓는 물에 살짝 넣었다가 건지면 가스오부시 같은 향을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