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의 생존방식]②롯데케미칼, 적극적 실탄 확보 이유
유상증자·자회사 지분매각 등으로 자금조달 안정적
전통 굴뚝 산업인 화학업계가 변신 중이다. 탄소중립 등을 중시하는 움직임이 거세지자 친환경 신사업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작년부터 이어진 기존 사업군의 부진으로 화학사에게 신사업은 선택 아닌 생존 문제가 됐다. 친환경 신사업을 외치는 화학사들의 변신 과정과 감내해야 할 고충을 살펴본다.[편집자]
롯데케미칼은 업계에서 석유화학 비중이 높은 회사다. 김교현 롯데케미칼 부회장은 앞으로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석유화학 사업 의존도를 낮추고 배터리 소재, 수소에너지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성공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 투자계획도 적극적이다.
다만 주요 수익원인 석유화학 사업 부진으로 투자금 조달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롯데케미칼은 유상증자와 자회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해 현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올해부터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난다
현재 롯데케미칼에서 석유화학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기초소재사업부 매출은 3조5874억원으로 전체 매출(5조6829억원)의 63.1%를 차지했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 비중을 낮추고, 지속가능한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ESG 경영 확산과 환경 규제 강화로 석유화학 사업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어서다. 김 부회장은 회사를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김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2023년은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게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사업 구조의 근본적 개편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김 부회장은 지난해 5월 '2030 비전·성장전략' 발표 간담회에서 2030년 매출 50조원을 거두겠다고 밝혔다. 이중 고부가 스페셜티와 친환경 소재사업에서 전체 매출의 60%(약 30조원)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롯데케미칼이 집중하고 있는 투자사업은 배터리 소재 분야다. 이 회사는 2030년까지 배터리 소재 사업에만 총 7조원을 투자해 7조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53.5%를 2조7000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고, 올 1월 공정거래위원회의 기합결합 승인까지 났다. 일진머티리얼즈는 배터리 핵심 소재인 동박을 생산하는 업체다.
또 롯데케미칼은 지난 2021년 5월 충남 서산 소재 대산공장에 2100억원을 투자, 전기차 배터리 전해액 유기용매 생산시설을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6월에는 같은 공장에 1400억원을 추가로 투입했다. 전해액 유기용매 수요가 급성장하면서 생산시설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수소에너지 사업도 적극적이다. 롯데케미칼은 2030년까지 6조원을 투입해 120만t(톤)의 친환경 블루·그린 수소를 암모니아 형태로 국내 도입하겠다는 목표다. 최근에는 SK가스, 에어리퀴드코리아와 합작사 '롯데SK에너루트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3000억원을 들여 울산공장 내 1만2000㎡(제곱미터) 규모 부지에 부생수소 연료전지 발전소를 건설할 예정이다.
이달 초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인 CES에도 참가했다. 롯데케미칼은 서울시, 서울산업진흥원과 함께 CCU(이산화탄소 포집·활용) 기술과 차세대 ESS용 배터리로 주목받는 VIB(바나듐 이온 배터리)를 소개했다.
VIB도 롯데케미칼이 점찍은 미래 사업 중 하나다. 회사 내 기초소재사업부에서 VIB용 전해액을 개발하고 있으며, 현재 파일럿 생산 라인을 건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VIB 자체에 대한 투자도 적극적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1월 VIB을 개발한 스탠다드에너지에 650억원을 투자하고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스탠다드에너지에 VIB 소재와 전해액을 공급하며 사업을 확장해간다는 구상이다.
투자 대비 자금 마련 나서
롯데케미칼이 대규모 투자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2021년까지 높은 영업이익을 바탕으로 현금을 축적해놓은 덕분이다. 롯데케미칼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연결 기준 2022년 3분기 말 현금·예금 보유량(현금및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당기손익및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금융자산)은 4조4072억원이다. 부채비율도 53%로 양호한 편이다.
다만 최근들어 자금안정성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나이스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조정했다. 롯데그룹 계열사 자금 지원에 나서는 등 돈 나갈 곳은 늘었지만 들어올 곳은 줄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은 굵직한 투자를 여럿 계획하고 있다. 현재까지 진행중인 투자만 해도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자금 2조7000억원, 인도네시아에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는 '라인 프로젝트' 투자금 39억달러(4조7970억원) 등으로 총 7조원이 넘는다.
장기적으로 봤을 땐 배터리 소재와 수소 사업 등 신사업에 2030년까지 13조원(일진머티리얼즈 인수 포함)을 투자한다.
하지만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는 조금 더딘 상태다. 가장 큰 원인은 안정적이었던 석유화학 사업의 부진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4392억원의 영업손실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영업이익이 악화된 이유는 원자재 가격이 급증한 영향이 크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3분기까지 원자재 구입 비용으로 7조6641억원을 썼다. 전년 동기(5조4061억원) 대비 29.4% 늘었다. 이 기간 매출원가(5조8433억원)가 매출(5조6829억원)보다 높아지면서 팔수록 손해를 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건설이 회사채를 발행할 당시 지급보증을 섰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지난해 말 롯데건설은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PF(프로젝트 파이낸셜)대출 시장이 얼어붙자, 롯데케미칼의 신용도를 빌려 2500억원의 1년 만기 회사채 발행에 나섰다. 만기 시점까지 롯데건설이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상환 부담은 롯데케미칼이 지게 되는 셈이다.
유증·자회사 지분매각·석유화학 회복 기대감
롯데케미칼은 유상증자 카드를 꺼냈다. 지난 17일 롯데케미칼은 유상증자 신주 발행가액을 주당 14만3000원으로 확정했다고 공시했다. 발행 신주가 보통주 850만주인 것을 고려하면 전체 유상증자 규모는 총 1조2155억원이다. 이중 6050억원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자금으로 사용하고, 나머지(6105억원)는 원자재 구입비 등 운영비용에 쓸 예정이다.
현금 확보를 위해 자회사 지분 매각도 단행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6일 파키스탄 소재 자회사 LCPL(LOTTE CHEMICAL Pakistan Limited) 보유 지분 전량(75.01%)을 '럭키코어인더스트리'에 매각하고 약 1924억원을 마련했다. 지난 2009년 약 147억원에 인수한 회사였는데, 1800억원 가량의 수익을 남긴 셈이다.
이달 초엔 롯데건설에 빌려줬던 5000억원을 조기 상환받았다. 롯데케미칼에 따르면 5000억원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자금 대신 환경 사업에 투자할 예정이다.
작년 바닥을 친 석유화학 사업이 올해부터는 회복세에 들어서면서 자체 현금창출 능력도 개선될 전망이다. 최영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중국의 방역 정책 완화에 따른 석유화학 제품의 점진적 수요 개선을 기대한다"며 "롯데정밀화학 및 일진머티리얼즈 실적 연결 편입 등으로 인해 올해 영업이익 흑자전환이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일진머티리얼즈 인수를 비롯해 발표된 투자금 조달엔 무리가 없다"면서 "올해 발생할 영업이익과 유상증자와 자회사 판매 등을 통해 조달하는 자금까지 포함하면 앞으로 재무안정성을 유지하는 데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성 (mnsu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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