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500억 떼먹은 '전세사기범' 신상정보 공개 언제?

유엄식 기자 2023. 1. 22.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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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사건 이후 관련 입법안 늘어...HUG도 입법 찬성 입장
(서울=뉴스1) 이승배 기자 = 이른바 '빌라왕' 등 전세 사기 피해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지난해 11월 기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파악한 상위 30위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집중 관리 다주택 채무자(악성 임대인)의 지역별 통계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발생한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737건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서울 전 지역 사고의 41%를 차지한다. 사진은 9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빌라 밀집 지역. 2023.1.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세금 2억원 미납한 사람은 실명과 집 주소까지 모두 공개하면서, 나랏돈 500억원 이상 떼먹은 악질 전세사기범 명단은 왜 개인정보로 보호받아야 하나."

지난해 말 '빌라왕 김씨' 사망 사건 이후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자 주택도시금융공사(HUG)가 보증보험 가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대신 갚아준 대위변제 채무자의 신상을 공개하란 목소리가 높다. 정치권에서도 여야 모두 입법안을 제출했고 HUG도 관련 입법에 찬성한다는 입장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보증금 미반환 악성 채무자 신상공개 입법안 잇따라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HUG 대위변제 채무자 신상 공개를 규정한 '주택도시기금법 개정안' 4건이 계류 중이다.

대체로 영국의 '나쁜임대인 이력확인 시스템'과 우리나라의 국세징수법상 '고액·상습체납자 명단 공개' 및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 명단 공개' 제도를 준용한 것이다.

관련 법안은 2021년 9월 처음 발의됐다.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은 'HUG가 대신 전세금을 갚아주고, 그 변제를 장기간 방기한 임대인을 공개한다'는 규정을 신설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그해 초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신도시 땅투기 의혹이 불거졌고, 정부와 국회가 관련 수습책에 주력했기 때문에 이 법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이후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관련 입법안이 쏟아졌다.

지난해 7월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전세보증금을 임차인에게 상습적으로 반환하지 않아 HUG가 보증금을 대위변제한 임대인 명단을 공개할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내용이다. 12월에는 '국토교통부와 HUG 내 정보공개심의원회를 두고, 악성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명단 공개를 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를 신설하는 개정안(장철민 민주당 의원)이 나왔다.

같은달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보다 규제 기준을 구체화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HUG가 보증 채무를 이행한 연도부터 과거 3년간 보증금 미반환으로 강제집행, 보전처분 등을 3회 이상 받은 임대인의 인적사항을 공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HUG "추가 피해 방지 도움" 긍정 입장…500억대 채무 불이행 등 악성 채무자 타깃
(서울=뉴스1)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3일 서울 여의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서부관리센터에서 전세사기 관련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원 장관은 "보증이 필요한 임차인들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100%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제공) 2023.1.3/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HUG는 전세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아 대위변제한 나쁜 집주인 명단을 관리하고 있다. 세입자가 HUG에 전세금반환보증을 신청하면 HUG는 집주인이 이 명단에 있을 경우 보증을 거절한다. 명단이 공개돼 있으면 세입자가 이런 집주인과는 계약하지 않을 수 있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HUG는 '나쁜 집주인' 신상공개 방안에 긍정적 입장이다. HUG 관계자는 "상습, 고액 채무자 명단 등 관련 정보를 일반에 공개하면 추가 피해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집값 하락에 따른 깡통주택(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높은 주택)이 증가하고, 전세사기 범죄가 늘어나면서 HUG의 보증금 대위변제 금액도 대폭 늘어나는 추세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5443건 발생해 관련 금액은 1조1726억원에 달한다. 2021년 보증사고 금액(5790억원)대비 2배 증가했다.

HUG가 그동안 빌라왕 등 불량 채무자를 대신해 세입자에 돌려준 보증금은 1조7000억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약 9000억원을 회수하지 못했다.

특히 500억원 이상 보증금 미반환 사고를 낸 개인은 3명이고, 100건 이상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개인도 이들을 포함해 10명이나 된다. HUG가 이들 10명에게 되돌려받아야 하는 금액은 3000억원이 넘는다. 이들 중엔 최근 사망한 빌라왕 김씨를 비롯해 같은 방식의 전세사기 범죄가 드러나 이미 구속 기소된 사기범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인 HUG의 운용 자금은 주택도시기금 등 사실상 나랏돈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이들 악성 대위변제 채무자도 세금 체납자처럼 신상공개 등 추가 제재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다만 법률 제정 과정에서 좀 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 변호사는 "보증금 채무 불이행자 신상공개 대상 기준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며 "기준액이나 법위반 횟수 등을 명확히 정해야 개인정보 침해 논란이 제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보증금 채무 불이행자가 명의만 빌려준 바지사장으로 사실상 상환 불능 상태라면 명단 공개 실효성이 낮다"며 "전세사기 사건 주범에 대한 민·형사 처벌을 강화해야 추가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세청은 2004년부터 고액, 상습 체납자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최초 체납기간 2년, 체납액 10억원이었던 기준은 최근 체납기간 1년, 체납액 2억원으로 점차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유엄식 기자 us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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