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눈웃음X99토끼"김민선의 시대"난 행복한 스케이터,남은 대회 다 1등할래요!"[새해 진심인터뷰]
"검은 토끼해, 저의 해가 돌아왔으니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1999년생 토끼띠, '신 빙속여제' 김민선(24·의정부시청)은 2023년 계묘년, 가장 기대되는 스포츠 스타 중 하나다. '빙속여제' 이상화(34)의 은퇴 이후 못볼 것 같았던 금빛 계보를 잇는, 야무진 선수가 나타났다. 토끼같은 '깜찍발랄' 외모에, 빠르고 영민한 'MZ세대' 대표 스프린터, 이상화가 '꼬맹이'라 부르며 유독 아낀다는 이 선수, 올 시즌 약진이 경이롭다. 2022~2023시즌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1~4차 대회 여자 500m 1위를 휩쓸더니, 사대륙선수권은 물론 새해 첫 출전한 미국 레이스플래시드동계유니버시아드 3관왕(500m, 1000m, 혼성계주)까지 나서는 대회마다 온통 금빛 찬란하다.
▶베이징올림픽 7위→월드컵 4연속 우승 '세계 1위'
김민선은 18세였던 2017년 12월 미국 솔트레이크 ISU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500m에서 37초78, 2007년 이상화의 세계주니어신기록을 10년 만에 깨뜨렸다. '포스트 이상화'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얼음판 승부는 늘 마음 같진 않았다. 19세에 출전한 생애 첫 평창올림픽에서 16위에 머물렀고, 올림픽 후엔 허리 부상으로 선수 인생에서 가장 힘든 2년을 보냈다. 이 악물고 나선 지난해 2월 베이징올림픽에선 7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그녀의 폭풍 반전이 시작됐다. 시즌 첫 월드컵에서 첫 1위를 찍더니 이후 단 한번도 정상을 내주지 않는 '괴력 레이스'를 선보였다.
지난해 12월 17일(한국시각)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ISU 월드컵 4차 대회, 김민선은 여자 500m에서 36초96,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하며 우승했다. 불과 일주일 전 3차 대회서 경신한 개인 최고기록(36초972)을 0.12초 줄이며, 선배 이상화의 세계기록(36초36, 2013년)에 0.6초차로 바짝 다가섰다. '베이징 금메달' 에린 잭슨(미국)과 '은메달' 다카기 미호(일본)를 모두 꺾었고, 월드컵 4연속 우승과 함께 세계랭킹 1위를 질주했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선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도 목표 삼은 500, 1000m 금메달은 물론 혼성 릴레이 1위까지 휩쓸며 3관왕에 올랐다.
김민선은 "이번 시즌도 똑같이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 과정이 쌓여서 올 시즌 포텐(잠재력)이 터진 것 같다. 꾸준히 열심히 한 것 외엔 특별한 비결은 없다"며 웃었다.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감독 역시 "하루아침에 올라온 것같겠지만 지난 4년 혹독하게 준비한 결과"라고 평했다. "지난 3월 마지막 월드컵에서 3위(시니어 데뷔 첫 메달)를 했다. 상승세의 시작이었다"고 돌아봤다.
▶반달눈웃음의 반전 승부사, 초상승세의 비결은?
반달 눈웃음이 사랑스러운 소녀는 링크에만 들어서면 지고는 못사는 전사로 돌변한다. 제갈 감독은 "민선이는 평창, 베이징서 두 번의 눈물을 흘렸다. 그 울분과 분노가 엄청났다"고 귀띔했다. "'해내고 말겠다'는 독기가 엄청난 선수다. 스케이트를 신는 순간 눈빛이 바뀐다"고 했다. 김민선 스스로도 '독종'임을 인정했다. "승부욕이 있다. 어릴 때부터 지는 걸 정말 싫어했다. 지고 나면 많이 울었다. 운동할 때 특히 독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것같다."
어쩌다 한번 반짝 우승은 할 수도 있지만, 단거리 여자 500m에서 월드컵 4연속 우승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김민선은 "솔직히 나도 기대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1~2차 대회 연속 1위 후 기록을 보고 자신감이 생겼고, 남은 대회도 다 1위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제갈 감독 역시 "나 역시 놀랐다. 여자 빙상계에서 연속 우승은 이상화, 고다이라 나오, 그리고 김민선 3명 정도로 손꼽히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노력은 도망가지 않는다. 비장의 무기 '하이브리드 훈련'이 결실을 맺고 있다. 허리 부상으로 인해 최고 근력, 최대 파워 훈련은 할 수 없는 상황. 중장거리 훈련을 통해 스피드와 지구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면서, 스케이팅 기술을 통해 적은 힘을 효율적으로 나눠쓰는데 집중했다. 올 시즌 스타트의 불리함을 레이스 후반 뒷심으로 극복해내는 '역전 우승' 장면은 이 훈련 덕이다.
김민선은 '선배' 이상화와는 스타일이 판이하다. 이상화가 남자선수 못잖은 파워풀한 스피드, 불꽃같은 스퍼트, 타고난 근력으로 승부했다면 김민선은 폭발적인 뒷심과 회심의 코너링 기술로 경기를 뒤집는 스타일이다. 김민선 역시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후반 속도를 올리면서 코너에서 가속을 내는 것이 내 장점"이라면서 "스타트에 약점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성장형 선수인 김민선에게 약점은 곧 가능성이다. 김민선의 첫 100m 구간기록은 10초40대. 이상화의 경우 밴쿠버올림픽 금메달 당시 100m에서 10초34, 소치올림픽 금메달 당시 10초17, '36초36' 세계신기록 당시 10초09를 기록했다. 산술적으로 김민선이 첫 100m에서 0.3초를 줄여낼 수 있다면 세계신기록도, 올림픽 금메달도 가능하다.
올 시즌 김민선에겐 '신 빙속여제'라는, 제법 마음에 드는 새 별명이 생겼다. "'제2의 이상화'보다 좀더 뿌듯하고 기쁜 마음이다. 스피드스케이팅에 김민선이 있다는 걸 증명해보인 것같아 기분이 좋다"며 반색했다. 선수로서 최종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녀는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신기록"이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내가 세운 목표를 하나하나 깨나가고 있다. 월드컵에서 36초대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고 다음은 세계신기록"이라며 선배 이상화의 세계신기록을 겨냥했다. "36초36이라는 상화 언니의 기록은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 쉽게 도전하고, 쉽게 깰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지금처럼 꾸준히 열심히 하다보면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라며 눈을 반짝였다.
부상과 시련을 오롯이 떨쳐내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김민선은 "행복한 스케이터"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번도 후회한 적 없다. 어렵고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잘 헤쳐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타고 있다. 앞으로도 쭉 그러고 싶다"고 했다. 2022~2023시즌은 밀라노를 향한 4년 여정의 시작일 뿐,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이 결코 베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김민선 스스로 목표 삼은 인생 최고의 순간 역시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올림픽"이다.
1999년생 김민선은 "토끼띠, 저의 해가 돌아왔으니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아주 기대되는 한 해"라며 웃었다. "남은 시즌 5차 월드컵(2월 10~12일), 월드컵 파이널(2월 18~19일), 종목별 세계선수권(3월 2~5일)서도 모두 우승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의정부=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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