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들도 즐겼다고? 명절음식과 와인 꿀조합 비법 공개 [전형민의 와인프릭]
이때 처음 등장했던 와인은 400년 후 한반도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조선 효종 때인 1653년 8월,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네덜란드 선박 스페르베르호와 선원들이 태풍을 만나 제주도 해안에 내동댕이 쳐지면서인데요. 당시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던 조선인과 서양인들을 연결해준 것이 바로 와인이었습니다.
“한 통의 붉은 포도주를 들고 가서 우리가 바위틈에서 발견한 회사용 은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들은 포도주를 맛보더니 좋은지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는데, 나중에는 대단히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하멜표류기 中-
하지만 아쉽게도 이 때 조선인들이 마신 와인이 어떤 와인이었는지, 무엇과 함께 이를 먹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와인을 즐길 때 와인 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게 페어링(안주)인데, 와인과 한식의 페어링은 좀처럼 쉽지 않거든요. 300여년 전 조상님들은 ‘깡와인’을 드시고 ‘대단히 기분이 좋아졌던’ 것일까요?
민족의 명절, 설을 맞이한 이번주 와인프릭의 주제는 ‘명절 음식과 궁합이 좋은 와인’입니다.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3만원대 와인 중 명절 음식과 즐기기 좋은 녀석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과거 조선시대 선조들도 이미 이런 경험을 했나 봅니다.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독일인 오페르트는 저서 ‘금단의 나라 조선’에 “조선인은 샴페인과 체리 브랜디를 선호하며, 그 외에도 백포도주와 브랜디 여러 종류의 독주를 좋아한다. 반면 적포도주는 떫은 맛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특유의 탄산 덕분에 어디에나 잘 어울리고 상큼한 매력을 지닌 샴페인과 화이트와인에 비해, 정작 전체 와인의 7할 이상을 차지하는 레드와인은 선조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다는 건데요. 역시 한식과의 페어링이 문제가 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 상에서 짠맛, 단맛, 신맛, 쓴맛, 감칠맛, 매운맛이 각기 다른 조합으로 구성돼 강렬한 풍미를 내는 한식은 아마 레드와인의 타닌만 부각시켰을 겁니다.
한식과 와인의 조합은 아주 불가능한 얘기일까요?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소믈리에들은 와인과 한식을 페어링을 할 때, 가능한 여러 음식 풍미와 조화를 이루고 심한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데 집중해 와인을 선택하면 좋다고 조언합니다. 드라이나 오프드라이, 옅은 타닌감,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바디에 적당한 풍미 강도, 잘 익은 과실미와 균형미 등이 키포인트죠.
전문가들은 기름기가 많은 전의 특성상 산미가 높고, 깊이와 질감이 좋은 화이트 와인이 적합하다고 조언합니다. 허브나 풀향, 복숭아, 시트러스 계열 풍미를 지니면 더욱 좋은 페어링을 이루죠. 구체적으로 드라이한 샴페인이나 스파클링 와인, 향이 좋은 소비뇽 블랑과 리슬링, 피노 그리 등 품종을 추천합니다.
저는 평소 쉽게 접하는 소비뇽 블랑이나 리슬링보다는 피노 그리 품종을 한번 즐겨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프랑스 알자스 지역의 명가 파미유 위겔이 양조한 ‘위겔, 피노 그리 클래식’은 이번 명절 전과 함께 즐기기 좋은 선택지가 될 겁니다.
3만원대라는 합리적인 가격대에 화이트와인이 가지는 기본적인 시트러스 풍미는 물론, 잘 익은 살구와 어렴풋하게 브리오슈 향까지 피어오르는 매력적인 친구죠. 다양하지만 어느 한 가지도 자신을 뽐내기보다는 은은하게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산뜻한 뒷맛을 남겨서, 자칫 니글거릴 수 있는 전과의 궁합이 특히 뛰어납니다.
다만 충분히 차갑게 칠링해서 즐겨야 진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상온에서 보관하셨다면 마시기 전 30분 정도만 냉장고에 넣어서 반드시 차갑게 해서 드세요.
이런 갈비류에는 과실미와 바디감이 짱짱하고, 허브류의 복합적인 아로마도 잘 나타나는 까베르네 소비뇽이나 찐득찐득한 매력의 프리미티보(미국에서는 진판델로 불립니다), 농축미가 돋보이는 아마로네가 잘 어울립니다.
편하게 모여 즐기는 명절 모임에서는 가격대가 있는 아마로네보다는 천혜의 환경을 깔고 태어나 농축미가 인상적이지만 가격대는 부담이 덜한 미국 나파밸리의 까베르네 소비뇽이 좋은 선택이 될 겁니다.
특히 3만원 미만으로 판매되는 그레이슨 셀러의 ‘프리시전 나파밸리 까베르네 소비뇽’이 눈에 띕니다. 품종 특유의 카시스, 블루베리와 블랙베리, 검은자두 등 검은과실 아로마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농축된 과실미를 뿜어냅니다. 적당한 오크 숙성으로 바닐라 뉘앙스도 곧잘 올라옵니다. 갈비로 달짝지근한 입안을 농축된 과실미가 산뜻하게 헹궈주고, 뒤이어 제법 묵직한 바닐라 뉘앙스가 기분 좋은 무게감을 더해줍니다.
식전주의 자타공인 ‘넘버원’은 샴페인 입니다. 샴페인은 상큼한 산도와 흰꽃부터 시트러스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는 아로마와 구운 빵의 풍미, 보글거리는 탄산 기포까지 오감을 만족시켜주거든요. 하지만 다소 비싼 가격은 식전주로 소비하기엔 꽤 부담스럽습니다.
이럴 땐 간치아의 스파클링 와인 시리즈가 좋은 대체재가 될 겁니다. 이탈리아 최고 판매량의 스파클링 브랜드지만, 병당 2만원 이하의 부담없는 가격으로 편하게 즐길 수 있거든요.
특히 모스카토, 프로세코, 로제, 샤도네 등 품종이 다양하다는 점도 메리트 입니다. 모스카토는 복숭아, 파인애플 등 열대과일과 단 맛을 조금 더 강조한 느낌이어서 와린이들도 쉽게 마실 수 있고요. 프로세코는 단순하지만 청량하고 푸릇푸릇한 느낌의 산도가 경쾌한 매력을 뽐냅니다. 샤도네는 프로세코와 모스카토의 중간 단계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사실 저가 선물 세트 상품에 포함된 와인 중 상당수는 와인러버들도 ‘듣도 보도 못한’ 와인들 입니다. 물론 무조건 ‘선물 세트 와인은 피해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요새는 제법 매력적인 세트 상품도 종종 보이거든요.
다만 팁은, ‘와인으로 유명한 국가의 이름이 와인병 레이블에 바로 보인다면 구매하지 않는 것’ 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인데요. 이들은 정말 괜찮은 와인을 만들 때는 나라 이름을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렵고 읽기도 힘든 지역 이름을 쓰죠. ‘쥐브레 샹베르탱’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쪼’ ‘프리오랏’ 같이 낯선 단어들요.
아주 익숙하지만 나라 이름이 아닌 ‘보르도’가 적힌 선물세트 와인은 괜찮을까요? 이것도 왠만하면 거르세요. 프랑스는 법으로 와인 품질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나라입니다. 정말 품질이 괜찮은 보르도 와인은 레이블 어딘가에 단순하게 ‘보르도’가 아닌 AOC(Appellation d‘Orgine Controlee·원산지 통제 명칭)가 써져 있을 겁니다. ‘Appellation Bourdeaux Controlee’ 이런 식으로요.
화려한 포장과 그럴싸한 문구에 속아 구매한 저질와인 때문에 와인을 포기하지 마세요. 세상은 넓고, 우리가 즐길 와인은 정말 많습니다. 와인프릭과 함께 매주 더 맛있고 재밌는 와인을 찾아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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