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탄생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앞으로 10년 세상 바꿀 것”
“지금까지의 유전자 편집은 시작에 불과하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의 발전은 10년 후 미래를 바꿔 놓을 것이다.”
제니퍼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화학과 교수는 지난 20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 개발 10년을 기념해 그간의 연구 성과와 앞으로 극복해야 할 한계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우드나 교수는 에마뉘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병원체연구소 교수와 함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한 인물이다. 두 명의 과학자는 지난 2020년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유전자 가위로 과학 발전 속도 빨라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사용자가 원하는 DNA 염기서열을 골라서 잘라내는 기술이다. 원하는 염기서열을 자를 수 있는 기술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정확도가 99%에 달했다. 자르고 싶은 염기서열과 결합하는 RNA를 빠르고 저렴하게 합성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현재 실험에 필요한 동물이나 세포를 만들기 위한 유전자 편집에 가장 많이 쓰인다. 유전자의 기능을 찾거나, 유전자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병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유전자 편집에 필요한 시간을 크게 줄였다. 원하는 유전자를 편집한 실험동물을 얻으려면 교배를 반복해야 해 1년 이상이 필요했다. 그러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사용하면 수정란의 DNA를 바로 편집할 수 있어 4주면 필요한 실험동물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유전자 편집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질병에 관한 연구도 탄력을 받고 있다. 골다공증·헌팅턴병·근위축증·알츠하이머병처럼 특정 인체 부위에서만 나타나는 질병을 가진 실험동물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치료제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실제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지난해 처음으로 미국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고, 뚜렷한 치료법이 없던 유전병 근위축증 치료제도 지난 2020년 처음 먹는 약으로 승인받기도 했다.
다우드나 교수는 “이전에는 유전자 편집된 실험동물을 얻는 것만으로 대부분 연구 시간을 쓰거나, 아예 만들지 못해 연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유전자 가위 기술로 본질적인 연구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 결과”라고 말했다.
◇발전 거듭하는 유전자 가위
최근에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정확도를 높이거나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4세대 유전자 가위로도 불리는 프라임 에디팅이 대표적이다. 프라임 에디팅은 2019년 미국 브로드연구소에서 개발한 유전자 가위다. 기존 유전자 가위보다 정확도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유전자 치료를 하려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고장난 염기서열을 잘라 편집하고, 정상적인 염기서열을 끼워 넣는 교정도 해야 한다. 그러나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교정 성공률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프라임 에디팅은 유전자 편집과 교정을 한번에 할 수 있게 해 교정 성공률을 최대 89%까지 끌어 올렸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2019년 10월 21일 “새로운 프라임 유전자 교정 기술이 크리스퍼를 능가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DNA 대신 RNA를 편집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DNA를 편집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기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다시 고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RNA를 편집하면 오류가 있더라도 일시적인 부작용만 나타난다. DNA 편집보다 안전성이 높아 유전자 치료제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전자 가위가 10년 뒤 세상 바꾼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이 안전성과 정확도를 높이며 꾸준히 발전해 온 만큼, 앞으로는 우리 삶에 밀접한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로 이어질 전망이다.
의학 분야에서는 다른 동물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이종 장기이식에 활용할 수 있다. 이종 장기이식은 장기 부족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로 꼽히지만, 안전성의 문제로 아직 실험 단계에 있다. 지난해에는 유전자 편집 돼지의 심장을 이식받은 환자가 2달가량 살아 이종 장기이식의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 당시 사용된 돼지는 총 6개의 유전자가 편집·교정된 상태였다.
갈수록 심해지는 식량 문제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로 식량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환경 변화에 저항성을 갖는 작물을 개발해야 한다. 작물에 온도 변화, 가뭄, 병충해에 저항성을 갖는 유전자를 넣는 방식이다. 일본은 지난 2021년 유전자 교정으로 영양 성분을 4~5배 많이 갖는 토마토를 만들어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이외에도 바이오 연료를 만들기 위해 생산량을 높이거나, 장내 미생물의 유전자를 교정해 건강을 관리하는 것처럼 실제 사람들의 삶과 관련된 기술을 구현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우드나 교수는 “지난 10년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 자체를 발전시키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10년은 사람들을 위한 기술로 만드는 시간”이라며 “인공지능(AI), 현미경, 염기서열 분석 기술 등과 함께 유전자 가위를 사용해 생명과학의 발전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자료
Science, DOI : https://doi.org/10.1126/science.add8643
Science, DOI : https://doi.org/10.1126/science.1225829
Nature, DOI : https://doi.org/10.1038/s41586-019-1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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