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커머스가 뭔데요” 코로나로 망할 뻔한 전통시장들 방송으로 웃음 되찾다
“‘라이브커머스’요? 처음 들었을 땐 마치 외계어인 줄 알았어요. 쇼호스트도 아닌데 방송 카메라 앞에 어떻게 서라는 건가 싶고”
대전의 전통시장 신도꼼지락시장에서 3년 동안 전집을 운영하고 있는 정은아(50)씨가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작년 9월 첫 라이브커머스 출연 소감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라이브커머스는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된 전통시장이 TV홈쇼핑처럼 상인들이 실시간으로 상품을 홍보, 판매, 흥정하는 걸 말한다.
정씨는 당시 오후 7시 방송에서 쇼호스트와 함께 산적, 동태전, 동그랑땡 등을 만들며 방송을 진행했다. 직접 구운 전을 카메라 앞에 보여주기도 했지만, 전이 화면에 잘 보이지 않았다. 정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방송하기 전에 가게 젊은 직원이랑 연습도 해봤는데 방송이 시작되자 머리가 새하얘졌었다 “면서도 “다음에 불러주면 당연히 하죠” 라고 말했다.
‘디지털 전통시장’이 침체됐던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디지털 전통시장은 현대이지웰, 쿠팡이츠 등 온라인 쇼핑몰 플랫폼에 전통시장이 입점해 시장 내 가게들이 만든 밀키트 제품 등을 판매하는 것을 가리킨다. 현재 전국 각지의 전통시장 중 22곳이 디지털 전통시장으로 선정돼있다. 이들은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주관하는 특성화시장육성사업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선정된 시장들은 2022년 1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2년간 최대 6억원까지 지원받는다.
그중에서도 대전 신도꼼지락시장, 인천 신기시장, 경북 하양꿈바우시장, 충남 세종전통시장 등 4곳은 지난해 9월 온누리 전통시장 사이트, 공무원 복지몰 플랫폼 등에서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해 실시간으로 제품을 팔기도 한다.
대전 신도꼼지락시장은 지난 2019년 초 인근 지역이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찾는 이들이 줄면서 위기를 겪었다. 2020년부터는 코로나도 겹쳐 시장을 찾는 손님이 하루에 많아야 50여명일 정도였다. 이곳에서 23년째 생선가게를 운영해온 상인회장 백호진(53)씨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장사가 안 된다면서 6~7곳 점포들이 문을 닫고 폐업까지 했다. 당시에 가게를 접어야 하나 생각했다”고 했다.
백씨는 고민 끝에 “그래도 그만둘 수 없다는 생각에 시장 상인들끼리 문경 중앙시장 등을 견학했다”며 “그러다 소셜미디어로 물건을 파는 시장을 보고 시장 상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할 수 있게 앱을 만들어 출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신도꼼지락시장 상인들은 2020년 말 ‘꼼지락배송 앱’을 만들었다. 이 앱을 통해 시장에서 판매하는 음식과 자체 개발한 밀키트 제품을 팔기 시작했지만, 시행착오는 계속됐다. 대전 지역이 아닌 타지역 시민들에게도 제품을 판매 배송했지만, 주문 10건을 배송 보내면 ‘포장이 깔끔하지 않다’ ‘김치를 주문했는데 배송 받아보니 김치국물이 샜다’ 등의 민원과 댓글이 2~3개씩 들어왔다.
시장 내 디지털 담당 직원 김선태(38)씨는 “앱 홍보를 아무리 많이 해도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진 않았다”며 “작년 9월 디지털 전통시장에 입점하게 됐는데, 여기서 진행하는 라이브커머스를 하면 효과가 더 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처음엔 라이브커머스도 시청자가 5~20명뿐이었고, 주문도 2~3건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상인들과 시장 디지털 담당 직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상인들에게 계속해서 라이브커머스를 하자고 독려했다. 방송 하루 이틀 전부터는 일대일로 같이 연습하기도 했다. 백호진 상인회장은 “시청자가 많든 적든 일주일에 2~3번씩 꾸준히 라이브커머스에 도전했다”며 “화면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댓글을 읽고 소통하려 했다”고 말했다.
변화는 서서히 나타났다. 작년 10월 말부터 주문이 50개, 100개로 조금씩 늘더니 이제는 하루에 500~600개씩 팔리고 있다. 동태탕, 고등어조림, 바지락칼국수 등 종류도 다양하다. 밀키트 특성상 제품 1개가 팔리면 반찬가게 5~6개가 동시에 수익이 난다. 제품에 여러 반찬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 달에 약 3000만원의 매출이 나와 백호진 상인회장은 웃으며 “장사할 맛 난다”고 말했다.
디지털 전통시장에 입점한 또다른 시장인 인천 신기시장도 디지털 도구를 활용해 부흥에 성공했다. 이곳 상인들 역시 라이브커머스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라이브커머스의 진행자를 맡은 상인회장 김종린(68)씨는 “초반에 시선 처리나 몸짓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며 “살 길은 TV에 나오는 쇼호스트의 말투, 제스처, 진행 방식 등을 따라하며 연습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에 반복 또 반복했다”고 했다. “14번이나 라이브커머스에 출연한 지금은 수준급으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이 시장 라이브커머스에 출연한 정육점 사장 이창봉(37)씨는 “방송 1시간에 3000만원 가량의 매출이 나와 정말 신기했다. 5일치 매출이 나온 거다”며 “다음날부터 직원 4명이 300개 배송물량을 처리해야 해서 바빴다”고 했다. 건어물 가게 사장 김영자(68)씨도 “원래는 1시간 동안 가게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이 많은데 우리 가게 라이브커머스 방송 때는 1시간에 시청자만 1000명이 넘더라”며 “이게 방송의 힘이라는 걸 느끼고 각종 순발력을 발휘해 열심히 방송을 끝마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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