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삶 살길 바래요”… 아프간 특별기여자 가족들의 새해 소망

이보람 2023. 1. 21.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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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가족의 명절나기

차가운 바닷바람에 금세 얼굴이 얼얼해졌다.

20일 바다를 끼고 있는 울산 동구 서부동 현대중공업 문화관 앞은 공장 건물 사이로 부는 바람 탓에 더 시리게 느껴졌다. 공장을 오가는 대형 트럭과 사람들 사이로 하얀색 안전모, 청색 작업복 차림의 하피스 압둘(49)씨의 모습이 보였다.

지난 20일 오전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에서 하피즈 압둘씨가 인터뷰 후 손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하피스는 탈레반에 아프간 정부가 넘어간 2021년 8월, 한국 정부의 ‘미라클 작전’으로 고국을 탈출해 한국에 왔다. 국내엔 391명의 특별기여자가 입국했고, 그 중 157명(29가구)은 지난해 2월 울산 동구에 정착했다. 이들 가구의 가장인 남성 28명, 여성 1명 등 29명은 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의 12개 협력사에서 일하고 있다.

하피스는 현대중공업 협력사인 지테크(선박엔진 업체)에서 근무하며 전기 설비 일을 한다. 아프간에서는 15년간 간호사로 일했고, 탈출 직전엔 아프간 한국 협력 병원에서 7년간 근무했다.

그는 “긴 시간 간호사로 일한 만큼 나의 경기장(필드)은 ‘간호사’다”며 “직업이 너무 달라서 오는 어려움은 있지만, 주변 사람들이 친절하고 잘 해줘서 차츰 적응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피스는 아내, 자녀 4명과 함께 왔다. 유치원에 다니는 막냇딸(5)의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아이들은 한국말을 잘 하는데 나만 조금 밖에 못한다”며 웃는다. 그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이웃과 소통하고 있다고 한다. ‘플리즈 할인’, ‘할인 주세요’ 하는 식으로 말한단다. 아들 2명은 한국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잘 어울리고, 딸들도 친구들이 잘해줘서 학교생활 적응을 잘 하고 있다.

하피스는 이번 설 명절기간 인천과 수원, 경기 김포에 있는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러 가서 후무스와 하프트 메와 등의 아랍요리를 해 먹을 생각이라고 했다.

2022년 설 명절을 앞두고 인천에 정착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들이 떡국을 맛보고 있다. 연합뉴스
아프간의 새해를 보내는 법은 우리와 비슷하다. 친·인척 모임을 위해 집을 단장하고, ‘하프트 메와’(7가지 말린 과일을 불려서 먹는 음식)’라는 새해 상차림 음식을 해 나눠 먹는다. 축하인사와 덕담을 나누며, 가족들과 소풍을 가기도 한다.

다만 새해 명절 시기는 다르다. 우리는 음력 1월1일이지만, 아프간, 이란 등지에서는 춘분(3월21일)을 기점으로 한다. 페르시아력 1월1일로, 아프간에선 새해를 나우루즈(Nawrouz), ‘새로운 날’이라 부른다.

하피스는 “운전면허는 있지만, 아직 차가 없어서 소풍(피크닉)을 못 간다”며 “차를 사게 되고, 더 따뜻해지면 아름다운 도시 부산에 가고 싶다”고 했다.

고향 파르완주(州)에 두고 온 어머니와 두 형제, 결혼한 딸은 언제나 그립다.

그는 “모바일 앱을 통해 가끔 통화는 하지만, 그리움이 채워지진 않는다”며 쓸쓸해했다. 이어 “딸은 미국 쪽 협력자였는데, 가능하다면 특별비자를 받아 미국으로 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하키미(39)씨는 설날을 앞두고 큰 선물을 받았다. 10일 전 막냇아들을 품에 안았다. 그는 아내, 세 자녀와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에서 1년 가까이 보내는 동안 가족이 한 명 더 늘었다.

하키미 가족은 최근 동구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법무부를 통해 한국어 공부에 열심이다. 그는 “우리 가족은 아프간에서 학교를 가본 적이 없는데 한국에서 처음 공부를 시작했다”며 “아이들은 금방 배워 잘 하게 됐고, 나도 제법 익혔지만 행정복지센터나 병원, 은행 업무는 아직 혼자 하기 힘들다”며 웃었다.

하키미는 아프간에선 명절이 되면 가족들과 꽃이 많이 피는 곳에 놀러 다녔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설 명절은 겨울이고, 아직 추운 날이라 꽃 구경은 갈 수 없다”며 “이번 명절엔 아직 어린 막냇아들과 아내는 집에 있고, 나머지 아이들 3명과 부산에 가서 바다를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새해소망에 대해 물었다. 하키미는 “아프간에서는 단순한 일만 했는데 지금 현대중공업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며 “한국어를 더 익혀 지금 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직업학교에 가고, 전문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아내의 소망은 아이들이 다른 한국의 아이들처럼 배우고 크는 것이다. 그는 “저도, 아내도 아이들이 앞으로 안전한 삶을 살고, 잘 크길 바란다”며 웃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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