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임커피와 레몬마켓 [박영순의 커피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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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커피가 우리를 사유로 이끄는 것은 시간과 함께 향미가 다채롭게 변하기 때문이다.
커피애호가들이 향미 감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여러 속성이 내 삶의 다양한 시점을 떠오르게 하면서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미지의 커피를 대할 때 설레는 것은 커피마다 기억을 색다르게 자극하는 향미를 암호처럼 품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가 지니지 못한 향미를 과일 절임을 통해 보완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있는 것처럼 꾸미는 상술"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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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커피가 우리를 사유로 이끄는 것은 시간과 함께 향미가 다채롭게 변하기 때문이다. 커피 가루에서 풍기던 망고와 바닐린 향은 추출 과정에서 물을 만나면 초콜릿과 메이플 시럽 향으로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특정한 성분의 화학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해도 우리의 관능이 그렇게 느낀다. 입 안으로 들어와서는 미각을 일깨우면서 익힌 파인애플과 꿀 같은 향미와 질감을 나타낼 수 있다.
무산소발효가 유행하는 듯싶더니 특정 과일을 커피 열매와 1대 5쯤의 비율로 섞어 발효하고 건조해낸 절임커피가 급속히 퍼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탄산침용 커피를 선보이며 세계바리스타챔피언에 올라 무산소발효 커피 붐을 일으킨 사샤 세스틱마저도 절임커피의 유행에 우려를 표하면서, 소비자들이 알레르기를 겪을 위험도 있는 만큼 추가된 성분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절임커피의 맛은 커피 자체가 지닌 잠재력이 아니라, 단지 무엇을 스며들게 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홉을 넣고는 에일 맥주 같은 커피라고 자랑하고, 리치나 포도를 스며들게 하고는 생두 자체가 품고 있는 아름다운 면모인 양 속인다. 3∼4년 전 ‘시나몬 게이트’로 망신을 당한 업체들도 여전히 ‘영업 비밀’이라는 구실로 성분은커녕 절임커피라는 사실조차 표기하지 않고 비싼 값에 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
첨가물을 커피의 성분으로 간주하는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판매자들이 정보를 숨기고 독점하는 탓에 소비자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은 조지 애컬로프의 지적대로 레몬마켓(lemon market)으로 귀결된다. 커피가 지니지 못한 향미를 과일 절임을 통해 보완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있는 것처럼 꾸미는 상술”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저급한 커피만이 유통되는 시장은 결국 애써 일군 스페셜티 커피의 가치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것이다. 신뢰를 잃은 자리에서는 문화가 꽃을 피워내지 못한다.
정보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절임커피를 유통하는 행동이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은 죄가 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의도가 가해진 행동에 대한 법적·제도적 처벌 장치는 한 템포 늦기 마련이다. 로스팅할 때 첨가물로 인한 유해성 물질의 생성 여부도 확인해야 할 문제이다.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절임커피에 길들면 커피 맛을 잊게 된다. 테루아르 커피를 외쳤던 에르나 크누첸 여사의 절규도 흔적 없이 스멀스멀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커피 본성에 대한 기억상실증의 공포’가 밀려들고 있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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