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의 미리미리] 케이팝과 다양성, 덕질하는 사람들의 덕목에 대하여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2023. 1. 2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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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이따금씩 어떤 유명한 연예인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를 아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연예인 덕질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서로의 덕력을 확인하며 함께 행복하게 덕질을 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내가 좋아했던 연예인은 누구였는지 생각해보면 한때는 핑클이었고 또 한때는 소녀시대였다. 나는 그들을 왜 좋아했을까? 돌이켜보면 방송에서 보여지기를 요구받은 모습만 보고 좋아했을 뿐, 실제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어떤 성격을 가진 인간인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인격체가 아니라 껍데기만 보고 환호하며 '소비'했을 뿐이었다. 아이돌이었던 당시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던 이들이, 점점 자신의 주관을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 사회적으로 멋진 메시지를 전하는 이효리와 티파니(스테파니)를 보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자신의 생각을 조금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그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누구나 “나답게”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자기 자신의 삶을 즐기는 사람이 될 권리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살아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생생하게 자기 삶을 즐기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아이돌은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이, 진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억압에 대해서 말하고 행동했던 아이돌도 있었다. 故설리가 그랬다. 그러나 이 사회는 소비의 대상이 돼야만 하는 사람이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케이팝 아이돌 노동자도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 모두 평등하고 건강하게 행복하길 바란다. 이것은 덕질을 하는 이들이라면 갖춰야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차별하거나 억압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사랑을 지속하기” - 덕양대학교

지난 해 11월, 구로의 다가치학교에서 “덕양대학교” 행사가 열렸다. 구로혁신교육지구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다양성연구소가 구로구의 청소년들과 함께 자기주도프로젝트로 기획한 것이었다. 덕양대학교는 '덕질 인재를 양성하는 큰 배움터'라는 의미로, 청소년들이 직접 작명했다. 덕양대 프로젝트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세 시간씩 여덟 번에 걸쳐 인종, 민종,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나이, 지역, 가족의 형태, 종교, 장애, 질병, 외모/사이즈, 소득/경제력, 고용의 형태, 학력/학벌 등에 의한 차별과 억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후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기자신과 사회구조에 대해 자신의 언어로 담아냈고, 그 중 하나가 덕양대였다. 케이팝을 즐기면서 동시에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경험하는 억압을 인지하고, 또 케이팝 문화가 사회적 억압과 불평등을 유지시키는 공고히 하는 양상을 살펴보는 프로젝트였다.

▲ 사진=한국다양성연구소 트위터

덕질하는 사람들의 덕목이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공출목디과졸X” 라고 표시하며 공항 사진, 출퇴근길 사진, 목격담, 디스패치, (공식적으로 공개된 적 없는) 과거사진과 졸업사진이 사생활 침해이고 이런 것들을 소비하는 행위로 아이돌을 억압하지 말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러한 노력들을 바탕으로, 덕양대학교는 케이팝을 응원하면서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체육시간에 휠체어 이용인의 공연예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과학 시간에 랜덤 포토카드 그리고 스트리밍 서비스에 필요한 지속 가능한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후위기를 다뤘고, 국어시간에 억압적인 가사를 발견하는 시간을 가졌다.

동시에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이 사회적 정체성 등 진짜 자신의 모습을 숨기거나 억압하지 않고 모두 자유롭게 드러내고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보기도 했다. 중국, 일본, 대만, 태국 등 다양한 국적 가진 아이돌이 한국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 종교 등 출신 국가와 관련있는 다른 정체성들과 문화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알아가는 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외려 그들의 국적은 쉽게 공격이나 비난의 대상으로 만드는 요소로 작동하기도 한다.

아이돌 중에는 분명히 성소수자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케이팝 아이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이돌은 획일적인 미적 기준에 의한 강요와 억압을 가장 많이 받는 대상이다. 여성인 아이돌은 마른 몸, 연약한 몸을 강요받고 있다. 마르지 않은 몸으로 판단되는 아이돌은 실력과 무관하게 비난을 받기도 한다. 또, 그들은 억압을 받는 동시에 그들의 몸은 '아름다운 몸', '예쁜 몸'의 기준이 되어 대중에게 또다른 억압으로 작동한다. 여성 아이돌을 향한 억압이 더욱 강할 뿐, 남성 아이돌에게도 외모와 체형에 대한 기준이 있으며 어떤 외모는 쉽게 희화화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

어린 여성에게 가해지는 심각한 수준의 성적대상화와 외모 평가에 대한 문제의식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이라고 해서 찬양만 하는 것은 그 그룹뿐만 아니라 아이돌 또는 모든 케이팝 종사자들에게 이로운 태도가 아니다.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의 어린 여성 착취라는 억압을 인식하고,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아이돌은 누군가에게 소비돼야 하는 대상이자 도구로 포장되느라 삶의 많은 부분들을 자유롭게 드러내지 못하고 억압되어 살아가는 부분이 많다.

'아이돌은 환상을 파는 직업이기 때문에 나의 상상연애를 위해서 당신들은 연애를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거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인생을 통제, 조종해서는 안된다. 양육자와 자녀, 친구관계, 애인관계에서도 그래서는 안되며 “나의 연예인”, “나의 최애”에게도 그래서는 안된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 존중과 사랑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해방되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아이돌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착취도 반드시 이야기해야만 한다. 아이돌과 팬들 모두 자유롭고 해방되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구조 속에서는 어느 누구도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 사진=gettyimagesbank

몇 년 전, 국내 기획사 중 한 곳에서 성평등과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소속된 아이돌의 노래 가사가 왜 "여성혐오"라고 지적받는지, 뮤직비디오 특정 장면에 대한 불편함이 왜 제기되었는지 설명했다. 앞으로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지 함께 이야기 나눴으며, 앞으로는 소속된 아이돌이 페미니스트이자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활동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바로 수긍하지는 않았지만, 해당 기획사의 아이돌은 이후 곡 발표 등의 활동을 통해 그와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물론 그 교육의 자리가 아이돌 개인이 페미니스트이며 앨라이임을 밝히며 활동하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나 유일한 영향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보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케이팝의 영향력으로 중요한 역할을 지속해나가길 기대한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조직한 덕양대학교 프로젝트는 일단락되었지만, 이대로 끝내려 하지 않는다. 수많은 덕질이 차별과 억압을 가하는 것이 아닌, 해방을 돕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케이팝의 성장에도 큰 동력이 될 것이다. 평등하고 안전한 케이팝 문화와 팬 문화를 만들어가는 기획을 케이팝 산업 내에서 이야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동시에 무지개 무무, 이달의 퀴어 등 퀴어 팬클럽들,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과 같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단위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이들이 다양성 관점을 가진 덕질인재가 되어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돌이 행복하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주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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