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스트] 사라진 '1등 복권'…"대국민 사기" 내부자 폭로
박현석 / 탐사보도부 기자
화강윤 / 탐사보도부 기자
유수환 / 탐사보도부 기자
[남궁헌/인쇄복권 동호회 매니저 : 이거는 제가 볼 때 58회 인쇄 오류분에 대한 뒷수습을 안 해주는 거는 이건 국민한테 사기 친 겁니다. 사기죠. 당연히.]
[동행복권 관계자 :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기만행위죠. 뻔히 그 안에 1등이 있을 거라고 예상을 하면서도 그걸 폐기시켜놓고 사용자들한테는 그런 얘길 안 하고 판 거 자체가 그건 기만이고, 사기죠.]
얼굴을 드러낸 사람은 복권을 평소 사는 소비자이고, 얼굴을 가린 사람은 복권을 발행하는 민간 수탁업자인 동행복권 내부 관계자입니다.
공정성과 정확성, 그에 따른 신뢰도가 생명인 복권을 두고 왜 내부 폭로까지 나온 걸까요.
발단은 재작년 9월 6일에 발견된 58회차 즉석 복권 6장이었습니다.
모자 그림 2개가 일치해 육안상으론 1천 원, 5등에 당첨된 건데 판매점에서 바코드를 찍어보니, 미당첨으로 뜨네 이거 뭐지 했던 겁니다. 이날 하루에만 1천 원짜리 복권, 스피또 1000 58회차에서 이런 복권이 6장 신고됐는데, 당첨 데이터에 문제가 있는 걸로 보였습니다.
SBS가 입수한 당첨 확인 데이터 사진을 보면, 난해하고 복잡해 보이는 숫자, 알파벳 중 줄 가운데 8개 알파벳이 각각의 그림을 뜻하는 건데, 원래대로라면 JJ 또는 AA로 같은 그림 쌍이어야 할 데이터가 J, A로 돼 있는 겁니다. 이런 오류가 확인된 때는 전체 4천만 장 중에 1천460만 장, 3분의 1 이상이 이미 팔린 뒤였습니다.
이 즉석 복권을 비롯해 우리나라 복권은 그 종류에 관계없이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가 민간 수탁업자인 동행복권을 통해 발행하고 있습니다.
SBS가 입수한 동행복권 관계자들 간 텔레그램 대화 내용입니다. 오류가 발견된 다음 날인 재작년 9월 7일, 한 직원이 부득이하게 텔레방을 만들었다며, 스피또 1000 58회차 검증 번호 데이터, 즉 당첨 데이터를 교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취재진이 확보한 동행복권 내부 보고서엔 오류 원인과 수습 과정도 드러나 있었습니다.
복권 오류는 인쇄소 전산 담당자가 운영 서버에 접근, 테스트 시행을 하다 데이터가 훼손되면서 발생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규정상 복권 인쇄 완료와 동시에 시스템상에서 삭제됐어야 할 당첨 데이터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데이터를 누군가 훼손하고, 그게 훼손된지도 모른 채 넘겨진 겁니다.
임의로 복권 1만 8천 장을 직접 긁는 등의 방식으로 검증해보니, 끝자리 '0번' 북, 그러니까 특정 '묶음'에서 오류를 확인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동행복권 관계자 : 밤새 아마 긁었을… 예, 밤새 긁었다고 들었어요.]
[동행복권 관계자 : 오류에 대한 내역을 받았고, 그걸 복권위에 보고했고, 그러니까 이런 의사결정도 사실 복권위에서 해서. 빨리 회수 조치해라. 3일 만에 다 조치가 끝난 거거든요. 굉장히 빠르게.]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사흘 동안 열심히 확인해서 오류로 추정되는 복권들을 추려냈고, 그렇게 20만 장을 시장에서 회수, 분리 조치했는데, 이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는 확률과 기댓값은 물론이고, 회수 사실조차 소비자들에게 숨긴 겁니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건 두 달여 뒤,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서였는데, 그 사이에 4천만 장 중 남은 2천500만여 장은 대부분 팔렸습니다.
[남궁헌/인쇄 복권 동호회 매니저 : 사람이 하다 보면 실수를 할 수 있는데 그 실수한 거를 어떻게 소명하는 게 중요한 건데 근데 이 자체를 감추니까.]
해당 회차의 판매율은 99.34%, 팔리지 않아 반품된 복권은 2만 7천여 장에 불과합니다. 당첨금 지급 기한이 다음 달 말까진데, 아직 5억 원 1등 복권 한 장, 2천만 원 2등 복권 5장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누군가 아직 당첨금을 타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회수 물량 가운데 1, 2등 당첨 복권들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57회차부터 62회차까지 비교를 해보면, 1등 복권이 안 나온 건 58회차가 유일하고, 2등 복권이 나오지 않은 것도 58회차 5장 외에는 57회차 1장뿐이기 때문입니다.
즉석 복권은 로또와 달리 1등 몇 장, 2등 몇 장 이렇게 딱딱 정해진 대로 인쇄돼 시장에 풀리기 때문에 출고율과 1등 복권 출현 여부가 판매에 영향을 크게 줍니다.
복권이 거의 다 팔렸는데 아직 1, 2등이 여러 장 남았다고 하면 사려는 사람이 많을 거고, 거액의 당첨금이 다 나왔다면 더 구매하려고 하지 않겠죠. 58회차에서 1등 1장이 안 나오면서 일부 소비자들이 끝까지 찾아다녔다, 전국에 복권 투어를 다녔다는 후문이 들리는 이유입니다.
취재진이 이른바 '사고 대응 매뉴얼'에 어떻게 돼 있는지 동행복권 측에 내용 공개를 요청했습니다.
[동행복권 담당자 : 민간 기업의 저희 문서니까 그거를 공개하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민간 기업이라기보다는 공무 수탁 사업자 아닌가요?) 저희가 그런 거면 공기업이면 연속성이 있어야 되는데 저희는 5년하고 딱 입찰하는 회사라서 단기로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복권위원회 답은 이렇습니다.
[복권위원회 담당자 : 저희들이 가지고 있지는 않고, 그건 수탁 사업자가 가지고 있는 매뉴얼이니까. (사고가 났을 때 수탁사업자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복권위에서 모른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인쇄사업자는 어떻게 어떻게 한다. 이런 실무 대응 매뉴얼까지는 저희들이. 그것까지 저희들이 알고 있어야 되는 건가요?]
만약 '사고 대응 매뉴얼'에 소비자 공개 등의 내용이 없다면, 꼭 넣어야 할 겁니다. 발행기관이자 수탁사업자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복권위원회도 당연히 매뉴얼 내용을 알고 있는 게 상식일 겁니다. 되도록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았는지, 법에 따라 반기별로 공개하는 관보에서도 58회차 회수 건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대로 다음 달 당첨금 지급 기한마저 지나면 조용히 복권을 폐기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인 겁니다. SBS 취재가 시작되자, 판매점들에 함구령이 내려졌다는 이야기도 돌았습니다.
[남궁헌/인쇄 복권 동호회 매니저 : 주변에 보면 판매점에 대한 입단속이랄까요. 뒤쪽으로 강압적인, 이런 방송에서나 그런 얘기들 하지 말라고….]
회수된 복권 20만 장은 지금도 복권 인쇄소 창고에 보관돼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복권위와 동행복권은 20만 장 안에 1, 2등 당첨 복권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SBS가 입수한 또 다른 보고서엔 데이터 보정, 교체라는 말이 계속 등장하는데요.
재작년 9월 오류 복권이 나온 직후 방안별 장단점 비교라는 제목으로 동행복권 측이 작성한 이 문건을 보면, 회수한 20만 장에 대해 데이터를 보정해 다시 출고할지, 그냥 폐기할지를 검토합니다.
눈에 띄는 점은 확률상 회수한 20만 장에서 1등 배출 가능성 낮음, 단, 1등 미배출 시, 지속적인 메이저 소비자, 그러니까 복권 마니아들의 민원이 예상되고 신뢰도가 저하될 수 있다고 한 부분입니다. 회수한 20만 장 안에 1등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한 우려까지 한 겁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겐 알리지 않았죠. 이들은 당첨 데이터를 보정해 출고 준비는 하되, 1등이 모두 나오면 풀지 말고, 복권이 거의 다 팔렸는데도 안 나오면 그때 가서 조용히 푸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다만, 지근거리에 특정 우호적 판매점들을 통해 순차적으로 출고한다, 사전에 정보를 전달한 뒤 혹시 또 불량 복권이 나오면 즉시 회수한다고 썼습니다. 조용히 당첨 데이터 수정까지 검토했던 건데, 복권업계 관계자들은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복권업계 관계자 : 큰일 나죠. 로또에서 했다고 하면 난리 나죠. 이게 즉석식이라는 것 때문에 포커싱이 좀 덜 된 것뿐이지, 사실은. 말이 안 되는 거죠.]
[동행복권 관계자 : 데이터를 위변조한다는 거는 그건 말도 안 되는 그런 거죠. 잘못된 데이터를 바로잡는다고 하면 모든 것들이 다 그런 식으로 용서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복권위원회 담당자 : 20만 부를 일단 가지고 있다가 이걸 보정을 하고 1등이 안 나오면 순차적으로 팔자, 이 말을 저한테 보고를 하긴 했었어요.]
권위원회는 데이터 보정은 없었고, 매회 차마다 평균 40만 장 정도는 팔리지 않고 남았다며, 20만 장은 그보다 적기 때문에, 또 1등이 다 안 나온 것도 처음은 아니어서 당시로선 최선의 판단이었다고 했습니다.
[복권위원회 담당자 : 1천460만 장이라는 게 팔려나가 있는 이 상황 때문에 그러면, 2천540만 장을 다 없애면 이건 너무 큰 혼란이 발생하는 거죠. (앞서) 사신 분들이 이제 문제가 되는 거예요.]
58회차 잔여 복권을 모두 회수하고, 이미 인쇄돼 있던 59회차로 넘어가자니 앞서 팔려나간 1천460만 장이 문제가 됐다는 겁니다. 응당 환불, 교환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할 텐데, 그 대신 어차피 안 팔리는 40만 장 범위 안에 있으니 오류 복권들만 회수하기로 한 겁니다.
시장에 내놨는데, 소비자들이 그걸 선택하지 않은 것과, 공급자가 처음부터 분리해놓고 파는 건 엄연히 다른 얘기 아닐까요. 복권위는 당시 소비자 신뢰 저하가 걱정돼 그렇게 처리했다고 밝혔습니다.
오류 사실이 알려지면 신뢰도에 타격을 입을 거라고 본 건데, 그들이 지키고자 한 복권에 대한 신뢰도는 처음부터 회수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을 때 이미 시작됐고, 계속 숨기고 조용히 넘기려 갖가지 계획을 세울 때 더 떨어진 것 아닐까요.
(취재 : 박현석, 화강윤, 유수환 / 영상취재 : 김현상 / 편집 : 정용희 / 디자인 : 방명환 / 담당 : 전형우 / 제작 : D콘텐츠기획부)
박현석, 화강윤, 유수환 기자zes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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