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무기 성능 경연장 됐다… 우크라戰 속 또 다른 전쟁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3. 1. 21. 18: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레오파르트2 전차 /연합뉴스

전쟁 발발 12개월째, 러시아군을 밀어붙이며 기존 점령지 탈환에 나선 우크라이나군을 위한 서방의 ‘공격 무기’ 지원이 줄을 잇고 있다. 미국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 독일, 심지어 캐나다와 스웨덴, 노르웨이산 무기들도 우크라이나 전장을 향하고 있고, 앞으로 더 많은 공격 무기 지원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들 무기 상당수는 실전 경험이 그리많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장이 사실상 이들 서방 무기의 성능을 뽐내는 ‘경연장’이 되면서 각국 방위 산업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란 예측마저 나온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것은 서방의 주력 전차들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고화력·중무기 지원 빗장이 풀리면서, 영국의 챌린저2를 필두로 폴란드가 보유한 독일의 레오파르트2 전차 등의 지원이 이뤄질 전망이다. 미국의 M1 에이브럼스도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연료 소비가 많고 관리가 까다로운 가스터빈 엔진을 사용하고 있어 우크라이나군에 제공이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들 전차는 한국의 주력 전차인 K2 흑표와 같은 3.5세대 전차다. 방어력을 끌어 올린 복합 장갑과 디지털 사격 제어 시스템, 협동 공격을 원활하게 해주는 첨단 전투 정보 시스템, 대전차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는 능동방어체계 등을 갖추고 있다.

영국의 챌린저2 주력 전차 /연합뉴스

이들 서방의 주력 전차들은 현재 우크라이나에 투입된 러시아군의 T-72와 T-80, T-90 등 이전 세대 전차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이들 전차가 러시아의 최신 3.5세대 전차 T-14 ‘아르마타’와 맞대결을 펼쳤을 때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또 레오파르트2와 챌린저2 간에 어떤 격차가 나타날지도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전선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T-14의 우크라이나 투입을 적극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 전차가 러시아의 기갑 전력과 제대로 맞붙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차 무용론’이 나올 만큼, 이번 전쟁에서 두각을 보인 신형 대전차 미사일의 파괴력 앞에 서방 전차들이 어느 정도 버텨줄지도 관건이다.

우크라이나 보병의 기동력을 높여주고 적진 장악을 도와줄 장갑차 간의 경쟁도 관심을 끈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지원 받는 서방 무기 중 종류가 가장 다양하다. 미국이 M2 브래들리 장갑차와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독일이 마르더 장갑차를 제공하기로 했고, 스웨덴은 CV90 장갑차를, 프랑스는 AMX-10RC 장갑차를 제공한다. 캐나다는 새니터(Senator) 장갑차량을 200대나 보내기로 했다. 이들 장갑차는 강력한 무장을 갖춘 IFV(보병전투차량)와 무장은 약하지만 신속한 병력 수송에 좀 더 초점을 맞춘 APC(병력이동차량)로 나뉘어 성격이 다소 다르다. M2 브래들리와 마르더 장갑차, CV90, 프랑스 AMX-10RC 등은 IFV에 가깝고, 캐나다의 새니터는 APC에 속한다.

시리아에 등장한 미군의 M2 브래들리 장갑차 /연합뉴스

서방의 장갑차는 1990년대 유고 내전과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전, 최근 시리아전 등 여러 분쟁을 통해 그 성능을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번 우크라이나전처럼 적 포병의 지원 화력에 노출된 상황에서 비교적 훈련된 정규군과 직접 맞서는 형식의 전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 서방 장갑차가 화력을 앞세운 러시아 정규군과 전투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지 관심을 끌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전과 및 병사들의 생존율로 드러나는 냉혹한 결과에 따라 앞으로 각 국의 장갑차가 세계 방위 산업 시장에서 차지할 위상과 평가가 크게 갈릴 전망이다. 현대전에서 어떤 형태의 장갑차 개념과 전술이 더 적합한지도 판가름나게 된다.

서방 무기들의 또 다른 경쟁이 벌어지는 분야가 바로 포병 무기다. 화력전의 양상이 분명한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은 정확도와 파괴력이 높은 서방의 야포를 이용해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 미국의 M777 곡사포와 유럽산 FH70 곡사포는 전쟁 초기 우크라이나에 압도적으로 불리했던 화력을 만회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들은 서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표준 규격인 155㎜ 구경의 중포(重砲)다.

폴란드의 AHS 크라프 자주포. 차체는 한국산 K9 자주포의 것이다. /연합뉴스

미국산 다연장 로켓 발사대인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이 전장의 ‘스타’로 떠오른 데 이어, 자주포의 공급도 줄을 잇고 있다. 미국의 M109 자주포를 시작으로 독일의 PzH(판저하우비처) 2000, 프랑스의 세자르 자주포, 폴란드의 AHS 크라프 등이 우크라이나군에 제공돼 쓰이고 있다. 스웨덴도 최근 자국산 ‘아처(Archer)’ 자주포를, 영국은 AS90 자주포를 보내기로 했다. 이중 AHS 크라프는 한국산 자주포 K9의 차체에 AS90의 포탑을 얹은 ‘혼종’으로 유명하다. 우크라이나에서 한국산 무기 체계의 성능이 일부나마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현재는 독일의 PzH 2000이 정확도나 연사 속도 등에서 가장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포격전이 첨예해지면서 포격 후 빠르게 현장을 이탈할 수 있는 자주포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인공위성 및 드론을 이용한 관측을 통해 실시간으로 적의 위치를 파악해 포격을 퍼붓고 있고, 또 대포병레이더가 대거 배치되면서 상대편의 대응 사격도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포격을 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가에 따라 각국 자주포의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덴마크 육군이 운용 중인 프랑스산 세자르 자주포 /연합뉴스

방위산업계는 고화력·중무기 지원을 주저하던 서방 각국이 잇따라 자국산 무기 공급에 나선 것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의미가 가장 크지만, 그 이면에는 다시 돌아온 군비 경쟁의 시대에 자국산 무기의 성능을 보여주려는 ‘욕심’도 섞여 있단 해석이 나온다. ‘실전 기록’만큼 무기의 진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기회가 없는 만큼, 향후 폭발적 성장이 예상되는 글로벌 방산 시장에 자국 무기를 선보이려 앞다퉈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무기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서방의 최신 혹은 2선급 공격 무기들이 대거 우크라이나에 투입되면서, 그 공백을 빠르게 메울 수 있는 새 무기의 필요성이 고조될 것”이라며 “그 대안으로 한국산 공격 무기들이 주목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단적으로 K2 흑표 전차와 K9 자주포, K-239 천무 다연장 로켓이 폴란드에 대거 수출된 것과 유사한 사례가 이어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