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100일 다가오는데···갈 길 먼 진상조사기구 설치
오는 2월5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100일을 맞는다. 특별수사본부 수사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윗선에 책임을 묻지 못한 채 꼬리자르기에 그쳤고,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활동은 반쪽짜리 결과보고서 채택으로 끝났다. 진상규명은 여전히 안갯속이고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도 요원하다. 유가족이 요구하는 독립적인 진상조사기구 설치는 가능할까.
야 3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은 지난 18일 ‘용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결과 국민보고회’를 열고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설치 의지를 밝혔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집권 여당이 참사를 정쟁화하며 시간을 끄는 통에 너무나 아쉬움이 크지만 독립적으로 조사를 수행할 기구를 구성하고, 책임자 처벌을 위한 후속 조치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진상조사기구 설치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이태원 참사에 한정한 단기적 조사기구를 설치하거나 이태원 참사를 포함해 모든 사회적 참사에 대한 상설 조사기구를 설치하는 것이다. 안전사고에 대한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에 대한 내용을 담은 ‘생명안전기본법’은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행안위 소속인 용혜인 의원은 지난 17일 MBC 라디오에서 “단기적으로는 이태원 참사에 한정된 재난조사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조금 더 지금의 당면한 과제”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독립적이고 상설적인 재난조사기구를 설치하는 것 역시 국회에서 논의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재난과 관련해서 독립적으로 조사하는 기구를 두자는 것이고, 이번에 이태원 참사 관련해서 조사를 하지만 상설적으로 가동하자는 것까지 담아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주호영 원내대표와 재난 안전 참사 방지대책과 관련해서 별도의 특위를 구성할 것인지 아니면 행안위에 별도 소위를 구성하는 것이 좋을지 논의한 바 있다”고 밝혔다.
야당은 진상조사기구를 꾸리기 위한 특별법 제정도 검토하고 있다. 2기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도 특별법 제정을 통해 출범한 바 있다.
지난 2017년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참사특별법)은 여야 합의 난항으로 통과에 진통을 겪었다. 사회적참사특별법은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본회의를 통과한 첫 사례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후 계류 기간(330일)을 거쳐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됐다. 진상조사위원 9명은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이 4명, 야당이 4명(자유한국당 3명·국민의당 1명), 국회의장이 1명씩 추천하도록 규정했다. 총 투표수 216표 중 찬성 162표, 반대 46표, 기권 8표로 가결됐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지역구에 단원고가 있는 의원을 포함해 3명만 찬성했다.
이태원 참사 진상조사기구 설치 역시 여당이 반대한다면 지지부진할 가능성이 크다. 야 3당 단독으로 법이 통과되더라도 진상조사기구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는 여당 협조가 필수적이다.
야 3당은 여당과의 합의를 위한 노력한다는 입장이다. 박 원내대표는 18일 1월 임시국회 내 특별법 통과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당연히 빠를수록 좋다”면서도 “여야 합의를 통해서 만드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은 진상조사위 출범에 미온적이거나 부정적이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 17일 KBS에 출연해 “유족들의 얘기를 100% 수용하는 것이 과연 최선의 길인지는 별도 차원에서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그동안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무려 9차례에 걸쳐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특별조사위원회니 여러 가지 추가 진상조사위원회 등 했지만 돈만 썼지 사실상 더 추가로 밝혀진 진실은 없었다”면서 “이태원 참사 같은 경우에도 정쟁으로 갈 수밖에 없는 특정 장관에 대한 해임이라든지, 추가 진상조사위원회라든지 이런 주장을 민주당이 계속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상조사기구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9월 3년9개월 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공식 해산한 가습기살균제 사건·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특정하지 못했다. 인력 부족과 여야가 추천하는 인선 방식 등의 한계도 있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세월호 특조위가 성과가 크지 않았다는 것을 두고 지금의 여야 누구도 큰소리를 치기는 어렵다”면서 “정치적 대립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돈이 들더라도 (참사 발생 시 진상규명을 위한) 상설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처벌을 하자고 한다면 (조사위가) 꾸려지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참사로부터 우리가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교훈을 남기는 조사위를 꾸려야 한다”고 말했다.
신주영 기자 j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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