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왕짜증' 정치 이야기 기피… 정치개혁 나서야
선거 없는 올해, 정치개혁의 적기
기득권 내려놓고, 국민 바라봐야
설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만나지 못했던 가족·친지들이 3년 만에 함께 차례를 지내고 세배도 하게 됐다. 일상 회복에 따라 귀성·귀경객은 물론 여행객이 동시에 몰리며 설 연휴 기간 교통 혼잡이 상당할 전망이다.
명절이면 흔히 '민심의 용광로'가 열린다고들 한다. 차례와 밥상머리에서 으레 정치판 돌아가는 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이것이 여론 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사정이 좀 달라 보인다.
이미 지난해 추석 때부터 그런 흐름이 있었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모여도 과거보다 정치 이야기를 덜 한다. '정치 말고 다른 이야기하자'며 애써 피하려 든다. 정치판이 워낙 극단화돼 있어 정치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족·친지들 간에도 얼굴을 붉히거나 큰소리를 내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는 큰 선거가 없는 해다. 경제 상황은 좋지 않고 민생이 팍팍한데 정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해 짜증을 더한다. 여야 정당 가릴 것 없이 당대표 때문에 갈등을 겪고 있다.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문제로,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표를 새로 뽑는 문제로 시끄럽다.
그러면서 지지층만 바라보는 진영·팬덤 정치,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당론 정치는 강경파의 목소리만 커지는 극단 정치로 나타나고 있다. 양극화한 정치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민생 법안과 예산안 처리는 기약 없이 표류했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도, 무인기 침투 등 안보 문제도 정쟁거리로 전락했다.
그래도 새해 초라서인지 정치권에서도 정치개혁 논의가 일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언론 인터뷰에서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3월 안에 선거법 개정을 끝내자고 화답했다. 아울러 개헌 논의를 위한 국회 헌법개정특위도 출범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와 대선 결선투표 도입을 위한 개헌을 하자고 제안했다.
정치개혁의 당사자이자 대상인 여야 의원들도 나섰다. '초당적 정치개혁 의원모임' 70여명이 준비회의를 열고 활동을 개시했다. "지역구도나 양당 간 극단 대결, 무한 정쟁이 반복되며 국정이 표류하고 국민이 분열되는 정치는 곤란하다" "정치가 사회의 갈등을 조정·완화하고, 국민을 통합해야 하는데 반대로 가고 있다" "정당이 팬덤 정치, 진영 정치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임계점에 와 있다" 등 개혁파 의원들의 문제의식은 현실을 직격한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도 논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정당별 이해관계가 엇갈려 내년 총선을 1년 앞둔 4월까지 선거구제를 바꾸는 법 개정을 이룰지는 회의적이다. 여야가 정치개혁에 진정성이 있다면 무엇보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여야 정당이 시급히 내려놓아야 할 그릇된 기득권으로 '선거비용 이중 수령'이 꼽힌다. 우리나라 정당들은 선거가 있는 해에는 정당 운영에 필요한 경상보조금 외에도 선거비용을 이중으로 지원받는다.
먼저 선거 전 후보 등록을 마치면 정치자금법에 따라 국회 의석수와 직전 총선 득표율을 토대로 산출한 선거보조금을 받는다. 불법 정치자금을 없애고 다양한 정당의 득표 활동을 독려한다는 선거공영제 취지에서다.
이어 선거가 끝나면 공직선거법에 따라 별도로 선거비용을 보전받는다. 정당 소속 후보의 득표율이 15% 이상이면 비용 전액을, 10~15% 미만이면 절반을 보전해준다. 이러니 주요 정당들은 선거를 치르면 금고가 빵빵해진다. 민주당이 2016년, 국민의힘은 2020년 각각 서울 여의도에 당사 건물을 구입했을 정도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치러진 2022년, 국가가 지급한 정당별 국고보조금은 142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민의힘은 1517억원을, 민주당은 1483억원을 선거보조금으로 받았다. 양당 합쳐 3000억원이다. 거대 정당이 '선거테크'를 한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문제점을 정치권이 모를 리 없다. 중앙선관위가 2013년 '선거비용 보전 때 선거보조금만큼 감액하자'는 의견을, 2021년에는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에서 선거에 지출한 금액은 감액하자'고 제안했지만, 입법 권한을 쥔 원내 정당들은 외면했다.
큰 선거가 없는 2023년이야말로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여야 정당들과 국회는 정치가 더 이상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기 이전에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 누가 봐도 불합리한 기득권은 과감히 내려놓고, 선거구제와 정치체제도 소모적 정쟁을 줄이고 선진 민주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개편해야 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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