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듯해도 든든하다, 노동자들은 혼자 싸우는 게 아니니까
“뿌듯하죠. 아주 큰 돈이 아니어도 싸우는 분들에게는 큰 응원이거든요. 저희도 많은 도움을 받아 왔으니까요.”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 농성장을 찾은 남은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병영상담관지부장이 말했다.
이날 농성장에서는 소소하지만 따뜻한 이벤트가 열렸다. 열악한 처지의 병영생활상담사들이 적은 임금에도 십시일반 후원금 400만원을 모아, 마찬가지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서 싸우는 다른 노동자들에게 투쟁기금을 전달한 것이다.
후원금을 마련한 병영생활상담관지부는 2019년에 출범한 260명 규모 노조다.
“임금협상으로 받은 성과급 중 일부를 ‘쟁의기금’으로 걷어요. 이 중 일부분을 지금도 힘들게 싸우는 다른 노동자들에게 연대하고 도와주는 데 쓰기로 했어요.” 남 지부장의 말이다. 병영상담관지부는 지난해에도 문화예술노동자 노조 2곳과 연세세브란스병원 청소노동자, 경북 경산시 청소·수도검침원 등 4곳에 후원금을 전달했다.
처음에는 조합원들의 의구심도 있었다. 병영상담사들이 처한 당장의 현실도 버거운데, 노조 활동비인 ‘쟁의기금’ 일부를 후원하는 것은 사실 다소 부담스러운 일이다.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이고, 군 장병들의 위기심리를 다루는 업무강도와 스트레스에 비해 책임과 징계성 조치는 날로 무거워졌다.
남 지부장과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들은 “우리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연관되고 연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득했다. 병영상담사노조가 새로 만들어져 교섭에 어려움을 겪을 때 상급단체나 다른 노조가 도와준 사례도 함께 말했다. “우리도 어려운 일이 닥칠 때 다른 사람들이 도와줄 거라고 말했어요. 실제로도 그랬고요.” 조합원들의 마음이 열렸다. 지난해 4곳에 후원을 한 뒤로는 조합원들도 후원의 의미에 공감하며 오히려 더 좋아한다고 했다.
이날 병영상담사지부는 노조 두 곳에 각각 200만원씩 후원금을 전달했다. 한 곳은 이날 농성장에서 만난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 쿠팡물류센터지회다. 조합원들은 냉·난방기와 휴게시간 등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위해 싸우다 해고까지 당했다. 80%가 비정규직·일용직이라 대기업인 쿠팡과 싸우기 힘겹다. 지난해 본사 로비에서 농성하던 이들은 7월 말 쫓겨나 빌딩 앞에서 6개월째 농성 중이다.
민병조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천막 농성장 유지 비용과 해고투쟁 법률지원도 능력이 버겁다”며 “이런 연대가 정말 감사하고 우리도 능력 되는 대로 다른 곳에 연대하고 싶다”고 했다. 민 지회장은 올 겨울 농성장 난방 기름값 부담도 일부 덜었다며 웃었다.
또 다른 곳은 공공운수노조 서울사회서비스원지부다. 서울사회서비스원은 돌봄을 공공이 책임지겠다는 취지로 출범한 기관인데, 지난해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142억원의 예산을 삭감하면서 존폐와 대량해고 위기에 처해 있다. 오대희 서울사회서비스원지부장은 “월 실수령 2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인데 많이 받는 것처럼 폄훼하면서 다들 힘들어하고 있다”며 “투쟁이 장기간 이어지고 불안한 상황이라 다들 지쳐가는데 응원해주셔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했다.
“사진 찍을까요?” “깃발 나오게 찍어 주세요!” 총 6명의 참석자는 쿠팡물류센터노조의 농성 텐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27층짜리 본사 빌딩 대신 길 위에서 소규모 전달식이 열렸다. 전달식이 시작되자 경비 2명이 본사 빌딩 문을 지키고 섰다. 참석자들은 전달식을 마치고 피켓과 유인물을 챙겨 인근 지하철 잠실역에서 설 귀향 전 선전전을 진행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서울 시내에서도 손꼽는 규모인 잠실역은 행인들로 가득 찼다. 남 지부장과 민 지회장, 오 지부장, 김호세아 공공운수노조 조직차장 등은 쿠팡물류센터와 서울시사회서비스원 노동자들의 상황을 담은 유인물을 행인들에게 나눠 줬다. “돈도 돈이지만 비금전적인 든든한 지원이 전달된 것 같아서 기뻐요. 우리 조합원들이 모아서 준 거니까 의미도 있고요.” 남 지부장이 말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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