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충돌 예방 조례’ 31건 제정됐지만···여전히 곳곳이 ‘죽음의 벽’
땅에 떨어져 있는 소형 조류의 사체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몸을 날렸던 새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부딪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멸종위기 맹금류 새매는 애써 몸을 일으켜 봤지만 결국 다시 날아오를 수 없었다. 날지 못하는 새는 아무리 맹금이라도 살아남기 힘들다. 새매의 운명은 땅에 떨어졌을 때 이미 결정됐다. 새매 주변에 떨어져 있는 다양한 새들은 모두 새의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의 벽’에 부딪혀 죽음을 맞았다.
신주열 한국물새네트워크 연구원은 최근 조류 조사를 위해 경기 연천 신서면 도신대교를 지나다 투명 방음벽에 부딪혀 목숨을 잃은 새들의 숱한 사체를 발견했다. 국도변이라 차를 천천히 몰면서 확인해보니 새뿐 아니라 너구리와 고양이 등도 로드킬을 당했다. 새의 사체를 노리고 도로를 건너려다 사고를 당한 개체들로 추정된다. 신 연구원은 “방음벽에 새들이 부딪혀 목숨을 잃고, 그 사체를 노린 포유동물들이 사고를 당하면서 운전 중이던 사람까지도 위험해지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건물 유리창이나 투명 방음벽 등에 조류가 충돌하면서 목숨을 잃는 사고를 뜻하는 ‘조류 충돌’을 예방하자는 전문가, 환경단체, 시민 등의 자발적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관련 법률이 개정돼 시행을 앞두고 있고, 사고 예방 내용을 담은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연천 도신대교 인근 방음벽의 사례처럼 여전히 다양한 조류가 참혹한 죽음을 맞는 사각지대는 전국 곳곳에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20일 경향신문이 행정안전부 자치법규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조류 충돌 예방을 위한 조항이 담긴 조례가 제정된 지자체는 31곳으로 집계됐다. 아직 국내 전체 지자체의 8분의 1 정도 수준이긴 하지만 조류 충돌 예방 캠페인이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얻은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광역지자체 가운데는 서울시와 경기도, 기초지자체 중에는 시흥, 천안, 진주, 김해, 서울 노원구, 광주 북구 등 지역에서 조류 충돌 예방을 위한 조례가 제정된 상태다.
지자체뿐 아니라 국회에서도 관련 내용이 포함된‘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지난해 6월 개정되면서 내년 6월부터 시행 예정이다. 개정안에는 야생생물의 충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의 인공구조물의 설치·관리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환경부가 인공구조물로 인한 야생동물 피해를 조사하고 피해가 심각하면 공공기관 등에 방지 조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들어있다. 앞서 2021년 환경부는 조류 충돌 저감을 위한 지침서를 마련해 전국 지자체와 건설업계 등에 배포한 바 있다.
조류가 유리창, 방음벽 등을 인식하도록 하려면 ‘5×10 규칙’을 이용한 무늬를 유리창에 넣어야 한다. 5×10 규칙이란 조류가 일반적으로 5㎝보다 낮고, 10㎝보다 폭이 좁은 공간은 통과하려 하지 않는다는 습성을 말한다. 기존에 일부 건물들에 부착돼 있는 천적인 맹금류 스티커의 효과는 매우 낮은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이렇게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법·제도적인 변화도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전국 곳곳의 도로변 방음벽이나 대형빌딩 등에서는 대량 폐사가 발생하고 있다. 개정된 야생생물 보호관리법이 시행되어도 민간건물은 여전히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지난해 자연관찰 애플리케이션 ‘네이처링’에 보고된 유리창·방음벽 등 충돌로 인한 조류 폐사체는 131종 1만3037마리에 달한다. 이는 일부 전문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관찰해서 올린 숫자기 때문에 전체 폐사 숫자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2018년 국립생태원이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국내에서 연간 유리창, 방음벽 충돌로 죽는 조류의 수는 약 800만마리에 달한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사과해” “손가락질 말라” 고성·삿대질 난무한 대통령실 국정감사 [국회풍경]
- 수능 격려 도중 실신한 신경호 강원교육감…교육청·전교조 원인 놓고 공방
- [스경X이슈] ‘나는 솔로’ 23기 정숙, 하다하다 범죄전과자까지 출연…검증 하긴 하나?
- “이러다 다 죽어요” 외치는 이정재···예고편으로 엿본 ‘오겜’ 시즌2
- [단독] ‘김건희 일가 특혜 의혹’ 일었던 양평고속도로 용역 업체도 관급 공사 수주↑
- 유승민 “윤 대통령 부부, 국민 앞에 나와 잘못 참회하고 사과해야”
- “부끄럽고 참담” “또 녹취 튼다 한다”···‘대통령 육성’ 공개에 위기감 고조되는 여당
- 김용민 “임기 단축 개헌하면 내년 5월 끝···탄핵보다 더 빨라”
- [한국갤럽]윤 대통령, 역대 최저 19% 지지율…TK선 18% ‘지지층 붕괴’
- 민주당, 대통령 관저 ‘호화 스크린골프장’ 설치 의혹 제기… 경호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