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 간소화, 욕도 칭찬도 많이 들어…가족들 의견이 가장 중요”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3. 1. 21. 15: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차례상 대혁명 일으킨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장
지난 16일 열린 '함께하는 설 차례 간소화 기자회견'에서 최영갑 성균관의례정립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차례상에 전 올리지 않아도 된다.”

작년 추석을 앞두고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위원장 최영갑)가 발표한 ‘차례상 간소화 방안’은 폭발적 화제가 됐다. 차례 준비를 하던 가정마다 “성균관에서 전 안 부쳐도 된대”라는 말이 회자됐고, 최영갑(60) 위원장 역시 화제의 인물이 됐다. 한국 현대사에서 유교, 성균관이 이렇게 화제의 중심이 된 적이 또 있을까. 이는 최 위원장이 지난해 6월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추진하는 ‘유교 현대화’의 방안의 하나. 최 위원장은 의례정립위원장과 유도회총본부 회장을 겸하고 있다. 성균관유도회총본부는 보도자료를 낼 때에도 상단에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 국민이 행복한 유교를 위해’라는 표어를 기입하고 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는 어떤 예서(禮書)에도 나오지 않는다”면서 유교 현대화의 신호탄을 올렸다. 이어 추석을 맞아 ‘전 부치지 않아도 된다’고 2탄을 발표했다.

최 위원장은 “차례상 간소화 표준안 발표 후 욕도 많이 먹었지만 칭찬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당시 성균관이 제시한 키워드는 ‘대례필간(大禮必簡)’ ‘큰 예법은 간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름진 음식으로 제사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다’는 김장생 선생의 가르침 등을 근거로 전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유권해석했다. 그밖에도 차례와 성묘 등 명절 행사의 대부분을 가족이 상의해서 정하면 된다고 했다. 차례가 가족 갈등의 원인이 돼선 안 된다는 취지였다.

지난해 9월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가 발표한 '차례상 표준안'. /뉴스1
설 차례 간소화 진설도. 추석의 송편 대신 떡국을 올렸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와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설을 앞두고 지난 16일 다시 기자회견을 가졌다. “또 어떤 폭탄 선언(?)이 나올까” 시선이 쏠렸지만 이번엔 ‘세배 예절’ 설명에 중심을 뒀다. 특히 두 손을 배꼽 부근에 겹쳐 모으는 ‘공수(拱手)’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일상생활의 인사에서도 어린이들의 ‘배꼽 인사’처럼 공수 예법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설을 맞아 최영갑 위원장에게 차례의 의미와 현대화·간소화 방법, 유교의 현대화 구상 등을 들어봤다.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 취임하면서 ‘유교 현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그중 차례 간소화를 가장 먼저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일반 국민들에게 유교는 ‘케케묵은 것, 전통만 고수하는 것’이란 이미지가 많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국민들에게 가장 피부에 와닿는 것이 추석과 설 차례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본래 의례정립위원회를 만든 것은 전반적인 유교의 의례를 바로잡자는 뜻이었는데, 국민들이 행복하게 느끼게 할 것이 무엇인가, 추석이 가까우니 차례를 먼저 연구해 표준안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은 상징적이었습니다. 유교의 이미지가 ‘안 된다’는 금지 보다는 ‘해도 된다’는 권유로 바뀐 느낌이랄까요.

“유교를 공부하면서 금지보다는 오히려 ‘선비는 이렇게 해야 한다, 군자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유교가 금지의 아이콘처럼 이미지가 박혔다는 것이 충격이었습니다. 뭔가 잘못됐던 것이지요.”

-국민적 관심을 피부로 느끼시나요.

“유교 역사상 근래 들어 반응이 이렇게 뜨거운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차례상 간소화를 주제로 생방송까지 4번이나 출연했어요. 국민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잘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늦었다. 왜 이제야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 나름대로 핑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젊은 세대인 제가 성균관유도회총본부 회장을 맡게 되면서 새 흐름을 주도할 수 있게 된 것이 차례상 간소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난 16일 열린 '함께하는 설 차례 간소화' 기자회견에서 올바른 세배 인사법을 시연하고 있다. /김한수 기자

-설을 앞둔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는 ‘세배하는 법’을 주로 설명했습니다. ‘전 안 부쳐도 된다’에 비해서는 덜 파격적이었습니다. 강약조절(?) 한 것인가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제례(제사) 문제도 의례 간소화 차원에서 연구 중인데 아직 의견 수렴에 시간이 더 필요해서 이번엔 세배 등 인사법을 설명했습니다. 사실 세배하는 법도 정확히 잘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새해 덕담을 건네는 순서도 어른이 먼저 해야 한다는 것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인사법 중심으로 설명회를 했지요. 그런데 이번 기자회견 이후에도 세배 보다는 여전히 차례상 간소화에 대한 관심이 훨씬 높아서 내심 좀 놀랐습니다. 한편으로는 ‘차례상 차리는 것이 이렇게 큰 압박감을 국민에게 주고 있었구나’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그만큼 국민들이 제대로 된 의례에 목 말랐다는 뜻이겠지요.”

세배나 절을 할 때에는 양손을 배꼽 부근에 겹쳐 모으는 '공수' 자세에서 시작한다.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그는 “약식 제사인 차례는 비교적 쉽게 간소화 표준안을 제시할 수 있었지만 제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의 종가는 50 문중 정도 되는데 그분들이 해온 제례를 한꺼번에 표준화할 수는 없습니다. 전국을 돌면서 간담회 등을 통해 종손과 종부의 고충을 더 들어보고 오히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든지 더욱 가치를 보존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정부와 협력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이번 간담회에서 과일 장사 하시는 분들께 송구하다고 하셨는데.

“지난번 추석 차례상 표준안을 시연하면서 밤, 사과, 배, 감을 놓았습니다. 물론 ‘과일은 홍동백서 조율이시를 따질 필요 없고, 과일 가짓수도 4~6가지로 얽매일 필요 없다’고 했지요. 그런데 그 사진을 보고 대추로 유명한 충북 보은의 유림들이 ‘왜 대추는 없느냐’고 항의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 설 차례상 진설도에는 그냥 ‘과일’이라고만 표기했습니다. 그 일을 겪으면서 성균관이 제시하는 안이 얼마나 파급력이 큰지 깨달았습니다. 혹시 그때 표준안 때문에 장사에 피해를 입은 분이 계시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차례상에 올리는 과일은 지역 특산물을 올려도 되고 가족들이 상의해서 정하시면 됩니다.”

-대학 전공(성균관대 유학과)과 경력(성균관 기획실장·교학처장·유교방송 대표 등) 대부분이 성균관과 유교 관련입니다. 집안 전통이 한학이나 유교와 관련이 깊은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외조부는 훈장이셨지만 특별히 유교적인 가풍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직업군인이셨던 부친은 제가 법대나 사관학교에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제가 유학과로 진학하니 한동안 마음을 여시지 않으셨을 정도입니다. 저도 처음엔 교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45세가 됐을 때부터 강의보다는 유교의 현대화가 필요하다고 느껴서 그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기자회견에서는 ‘K-유교’ ‘K-예절’도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구상이신지요.

“일반적으로 유교의 종주국은 중국이라고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문화혁명 때 전통이 다 사라지다시피 했지요. 반면 우리는 전통을 지켜왔고요. 지금 세계는 한국의 영화, 음악, 음식에 열광합니다. 그동안 유교의 본질을 지켜온 한국이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유교적 가치를 제시한다면 ‘K-유교’도 가능할 것입니다. 경쟁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차례나 제사 때문에 가족이 갈등, 불화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남자는 여자의 고충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성씨가 다른 집에 며느리가 들어와서 성씨 다른 조상을 모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배려하면 차례상을 받는 조상님들도 좋아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누가 혼자 결정하지 말고 가족 구성원, 심지어 어린 자녀에게까지도 물어보고 상의해서 결정하면 행복한 명절이 되지 않을까요.”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