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예? 아들(가족) 다 모였으면 좋겠니더”…외로운 ‘설’ 보내는 울진 산불 이재민들

김현수 기자 2023. 1. 2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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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산불로 집을 잃은 어르신들이 지난해 30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동회관에 모여있다. 김현수 기자

“소망예? 새집이 빨리 지어가 추석에는 아들(자녀와 손자들) 다 모딨으면(모여서) 좋겠니더(좋겠어요).”

주미자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노인회장(79)은 지난 18일 동네 어르신 3명과 함께 택시를 타고 읍내로 나가 차례상을 봤다. 평소 같으면 온 가족이 모이는 설날인 만큼 푸짐하게 장을 봤겠지만, 올해는 아니었다. 지난해 3월 울진·삼척 산불로 집을 잃었기 때문이다.

주 노인회장은 “동태와 가자미, 열기(불볼락) 생선 세종류랑 나물 조금 샀다”며 “차례를 지낼 곳이 없기도 하고, 음식을 먹을 사람도 없으니 살 것도 없더라”고 말했다. 주 노인회장은 울진군이 마련한 27㎡(약 8평) 남짓한 좁은 컨테이너 임시조립주택에 입주해 있다.

울진에 들이닥친 화마는 서울 면적(6만500㏊)의 30%가 넘는 2만923㏊(울진 1만8463㏊·삼척 2460㏊)를 태우고 진화됐다. 산불이 진화되기까지 213시간43분이 걸렸다.

이 산불로 울진에서는 328가구 467명이 주택을 잃거나 피해를 봤다. 이 가운데 181가구 290명이 188동의 임시주택에 입주했다. 그동안 14가구가 복귀해 현재 174동의 임시주택에 266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달희 경북도 경제부지사가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8일 울진 죽변면과 북면에 있는 산불피해 임시조립주택에서 생활하는 이재민에게 위문품을 전달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주 노인회장과 같이 차례상을 본 엄석 어르신(83)도 착잡한 심정은 마찬가지다. 아들 내외가 찾아와도 방 한 칸 내줄 수 없는 신세여서다. 엄 어르신의 유일한 낙이었던 손주를 보는 재미도 화마와 함께 사라졌다. 엄 어르신은 “애들 찾아와도 자고 갈 곳도 마땅찮으니 (귀성길) 밤길 위험하다고 오지 말라고 했지 뭐”라고 말했다.

영월 은씨 종부인 김향난씨(72)는 올해는 제사를 지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임시주택에서는 제사를 지내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번 차례도 산소에서 간단하게 약식으로 하기로 했다. 은씨는 “병풍이랑 제기 등이 모두 타버렸다”며 “집이 빨리 지어져야 제기 등도 새로 사둘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산불 이재민 중 일부는 정부 지원금과 성금 지원액으로 집을 새로 짓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이재민들은 집을 지을 돈이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 건축비가 크게 오르면서 지원금만으로는 집을 짓기 어려워서다.

경북도는 이재민의 불편 사항 해결 및 안전을 위해 임시주택 현장 점검과 모니터링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파에 대비해 제설 자재를 비치하고 상수도 동파 예방을 위한 점검도 했다.

화재를 막기 위해 울진소방서와 협조해 안전 점검을 하고 예방 교육도 할 계획이다.

이 경제부지사는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행·재정적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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