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러시아의 겨울’ 영하 30도 얼음 깨고 호수에 풍덩

정병선 기자 2023. 1. 2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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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카야 지마(Русская зима)’시리즈(1)-얼음물 수영

‘루스카야 지마(Русская зима)’ 러시아어로 러시아 겨울을 뜻한다.

러시아의 겨울은 운치 있고 신비하다. 북유럽 북극권의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도 비슷하겠지만 러시아는 독특하다. 북극해 주변 야말반도의 툰드라 지대선 영하 50도 넘나드는 혹한 속에서도 러시아인들은 순록과 더불어 기적적이고 신비하리만큼 생명력을 유지하고, 모스크바 도심 자작나무 소나무(적송) 숲은 1m 정도 쌓인 눈속에서 온갖 생명력을 잉태한 채 모스크비치(모스크바인)들을 유혹한다.

호수에서 얼음물 수영을 하고 나온 해마클럽 회원이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추위를 녹이고 있다. /정병선 기자

러시아인들에게 겨울은 숙명이다. 오전 10시가 돼야 날이 밝아오고 오후 4시면 어두워진다. 겨우내 해를 보는 경우는 드물다. 저기압 상태가 계속된다. 어둡고 침울한 날씨의 연속이다. 눈은 거의 매일 내리니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북위 55도에 위치한 모스크바는 1~2월 평균기온이 영하 10도 안팎이지만 영하 20~30도가 되는 날이 많다. 눈은 거의 매일 내려 도시 전체를 순백의 세상으로 물들인다.

모스크바는 보통 9월 말이나 10월 초 첫눈이 내린다. 첫눈으로 시작된 겨울은 보통 이듬해 4월까지 계속되지만 길게는 5월 초까지 눈이 내리면서 무려 7개월 동안 겨울이 지속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러시아인들은 기나긴 겨울을 다양한 방법으로 극복하고 즐기면서 문화 예술 스포츠로 승화해 낸다.

파블로프스키 파사드에 있는 호수. 호수의 얼음을 깨 해마클럽 멤버들이 수영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정병선 기자

모스크비치 등 러시아인들은 추운 겨울을 원한다. 겨울 기온이 높으면 못 견딘다. 혹한을 이겨내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의 건강비법 중 하나가 겨울 얼음물 수영이다. 도시와 도심 주변의 호수와 강은 수영, 노르딕스키, 스케이트, 썰매, 아이스 하키, 승마 등 겨우내 러시아인들이 각종 취미를 즐기는 장(場)이다.

지난 1월 초 모스크바 교외 파블로프스키 파사드 지역의 호수.

얼음물 수영을 취미로 하는 ‘러시안 모르쉬(морж·해마)’들로 북적였다. 이른바 해마(海馬)클럽 회원들의 주무대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인데도 얼음 수영을 하는 회원들이 물속을 들락인다.

호수 주변에는 회원들이 조깅과 철봉을 하며 워밍업을 한다. 10대 남녀부터 80대 노인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회원들은 20~30분간 스트레칭을 하며 땀을 낸 뒤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 회원들은 “영하 20도가 넘는 날 하는 수영이 제맛”이라고 한다. 얼음물에 뛰어든 해마들은 수영을 하고 눈밭에 나와 조깅을 한 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얼음물 속에서 수영하고 나온 해마클럼 멤버가 장작불에 몸을 녹이면서 기자와 포즈를 취했다. /정병선 기자

모스크바 남부 베케트호수 해마클럽은 1975년 창립했다. 회원은 약 100명이며 이 중 3분의 1은 여성이다. 주로 새벽 시간에 수영을 즐기지만 낮에도 즐기는 사람들이 꽤 있다. 90세 넘는 모스크비치들도 노익장을 과시한다. 이들은 얼음물 수영 경력 40~50년이 된 베테랑들이다.

러시아에는 모스크바를 비롯 전역에 해마클럽이 조직돼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조기축구팀을 생각하면 된다. 얼음물 수영은 이미 러시아의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햇볕이 없는 겨울에 사우나를 하면서 찬물 속이나 눈밭에서 몸을 씻었지만, 지금은 얼음물 수영이 사우나와 분리돼 하나의 취미로 굳어졌다.

러시아 얼음물 수영은 러시아 정교회의 ‘예수 세례일’과 연관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서른 살에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대중 앞에 나선 것을 기념하는 러시아 정교회의 축일 주현절(예수세례일·Крещение)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레고리력을 쓰는 서방 교회의 주현절은 1월 6일이지만 율리우스력(曆)을 쓰는 정교회는 1월 19일을 주현절로 기념한다. 우리 절기로 가장 춥다는 대한(1월20일) 하루 전이다.

지난 19일 모스크바 오스탄키노 방송탑 근처에서 주현절을 기념해 정교회 신자들이 물에 몸에 담그는 예식을 했다. /AP 연합뉴스

정교회 신자들이 자신의 죄를 씻는 날이요, 죄의 사함을 받는 날이다. 이 때문에 갓난 아이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까지 매년 이날이 되면 얼음물에 몸을 담근다. 정교회 신부들은 이날 강과 호수의 물을 대상으로 축성식을 거행한다. 축성식은 강과 호숫물의 성수화(聖水化)하는 의식이다. 정교회 신자들은 성수에 몸을 담그는 의식으로 여겨 더욱 물속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세 차례. 매번 세 차례 성호를 긋는다.

이렇듯 얼음물 수영은 정교회의 주현절과 맞물려 수백년 된 러시아인의 겨울 건강 관리법이자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취미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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