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그토록 열심히, 즐겁게 똥을 찾아다닌 적은 없었다” [ESC]

한겨레 2023. 1. 2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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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김남희의 걷다 보면]김남희의 걷다 보면 루마니아 ①
소설 ‘드라큘라’ 배경 루마니아
드라큘라 성 대신 숲에 가보니
늑대·곰 등 야생동물들이 서식
똥과 털 등 그들의 흔적 찾아
루마니아 브라쇼브의 시내 풍경. 김남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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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이곳까지의 여행도 즐거웠을 테지만, 아름다운 내 영지에서 보낼 시간도 그에 못지않을 것을 믿소. 당신의 친구 드라큘라.”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조너선 하커에게 보낸 편지를 슬쩍 바꿔보았다. 이 미지의 나라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고는 거의 아무것도 없다. 전설의 드라큘라 백작, 경이로운 체조 선수 나디아 코마네치,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헤르타 뮐러. 딱 이 정도가 내가 루마니아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나는 드라큘라 백작의 초대를 받아 그의 영지에 첫발을 디딘 조너선의 심정으로 이 나라에 도착했다. 무지한 여행자의 유일한 장점은 무엇이든 선입견 없이 흡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낡아서 소박하고 정겨운 시비우의 풍경. 김남희 제공

저항하는 사람들의 도시

헝가리에서 국경을 넘으니 루마니아의 작은 도시 티미쇼아라. 루마니아의 악명 높은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몰아내려는 시위가 시작된 도시라고 했다. 순응하기보다는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끌리는 터라 이 도시의 호감도가 상승했다. 기차역 입구에서 책 자판기와 마주쳤을 때는 급기야 흥분하고 말았다. 자판기와 책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그러면 어떤가. 영혼의 허기를 즉각적으로 채울 수 있다면!

곧이어 큐피드의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와 내게 꽂혔다. 광장 근처의 고등학교 벽에 이 학교가 배출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두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중 한 명이 헤르타 뮐러였다. 그의 소설 〈저지대〉를 인상 깊게 읽었던 터여서 무작정 들어갔다. 바로 달려온 경비원이 단호하게 손을 휘저으며 내쫓았다. “헤르타 뮐러! 헤르타 뮐러” 암호라도 되는 듯 절박하게 이름을 외치니 닫히던 문이 다시 열렸다. 경비원이 복도 끝의 벽 앞으로 나를 데려갔다. 소설 속 한 구절이 적힌 벽의 사진을 찍을 때까지 기다려주더니 다시 축출. 아쉬움 없는 마무리였다.

티미쇼아라를 시작으로 시기쇼아라, 브라쇼브로 내려가는 동안 마주친 루마니아 사람들은 조용한 관심과 차분한 수다에 능했다. 케이팝 덕분에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서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이도 있었다. ‘브라쇼브에서’라고 적힌 가게를 발견해 구경삼아 들어갔을 때 가게를 가득 메운 이들은 루마니아의 20대들이었다. 한결같이 심각한 얼굴로 불닭 볶음면이나 빼빼로 같은 걸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인생을 건 선택이라도 하는 듯 진지한 얼굴이었다. 이역만리에서 한국 음식(비록 인스턴트긴 해도)이 이렇게 인기라니 신기했다.

계획도, 지식도 없이 시작한 여행이라 매일 밤 다음날의 목적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점 5점 만점인 투어가 눈에 들어왔다. ‘트란실바니안 울프 투어.’ 이름부터 심금을 울렸다. 늑대라니! 길들여지지 않는 것들에 매혹당하는 내 본성 때문일까. 나는 인간의 울타리로 들어온 개가 되지 않고 끝내 야생의 존재로 남은 늑대에게 언제나 마음이 끌렸다. 바로 투어를 신청하고 저르네슈티로 향했다.

단 마틴이라는 남자가 꾸리는 이 투어는 일종의 레전드였다. 공산주의 시절 알루미늄 공장에서 일하던 그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늑대 연구를 위해 독일 연구자들이 들어오면서였다(루마니아에는 공식적으로 늑대 1500마리, 갈색곰 6000마리, 스라소니 8000마리가 살고 있다). 그들은 지역 산을 잘 알면서 영어가 가능한 가이드가 필요했고, 단은 이 지역 토박이에 독학으로 익힌 영어가 훌륭했다. 단은 주말마다 독일인 연구자들과 함께 늑대와 곰, 삵 등 야생동물을 찾아다니며 자연스레 지식을 쌓아갔다. 2003년, 단은 공장을 그만두고 야생동물을 탐사하는 가이드 일을 시작했다. 그동안 그는 루마니아 최고의 가이드에 뽑혀 상을 타기도 했고, 그의 딸과 아들도 대를 이어 가이드가 되었다. 나는 그에게 가이드 투어를 신청했는데 그가 휴가 중이라 그의 딸 다나가 가이드로 나왔다.

숲에 남아 있는 야생동물의 똥. 김남희 제공
양치기의 침실. 김남희 제공
먹이를 찾아 나온 야생 곰. 김남희 제공

길 위에 남은 희미한 발자국

드디어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최후의 일전을 치르기 위해 드라큘라 성을 찾아온 반 헬싱만큼은 아니지만 내 신경도 팽팽히 당겨졌다. 척추를 따라 짜릿한 긴장감이 번져갔다. 반 헬싱 교수가 런던을 피로 물들인 드라큘라 백작을 찾기 위해 숲을 헤매었다면, 지금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똥을 찾아 숲을 헤매고 있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길인데 다나는 곰과 늑대와 여우의 흔적을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이 투어에 대해 한 줄 평을 쓴다면, ‘내 평생 그토록 열심히, 그렇게나 즐겁게 똥을 찾아다닌 적은 없었다.’ 동물들이 다니는 길 위에서 희미한 발자국을 찾아내고, 똥을 뒤적여 먹은 음식과 나이를 가늠하고, 나무에 붙은 곰의 털을 만져보고…. 그럴 때마다 다나는 곰과 늑대의 생태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풀어놓았다.

루마니아는 유럽 최대의 갈색곰 서식지다. 이 곰의 주 먹이는 야생 베리류와 꿀, 헤라클레스 개미. 생선 같은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는 곰일수록 공격성이 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단다. 야생에서 25~30년을 사는 곰은 한 시간에 45㎞를 달릴 수 있다. 인간 중 가장 위대한 이도 그 속도로는 달릴 수 없다. 그러니 곰이 쫓아온다면 삼십육계 줄행랑을 쳐도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가 걸었던 숲에는 야생 버펄로도 11마리 살고, 늑대도 여덟 무리가 살고 있었다. 늑대 한 무리가 보통 5~8마리로 가족을 이루어 산다니 이 숲에는 40마리 이상의 늑대가 사는 셈이다. 은빛 털을 휘날리며 달리는 늑대는 보이지 않았지만 늑대의 똥만큼은 자주 보였다.

나는 다나에게 “늑대가 이 지역 사람들을 공격한 적은 없어?”라고 물었다. 다나는 “적어도 내가 태어난 후 35년 동안은 한 번도 없었어”라고 말했다. 그런데 “곰은?” 다나가 그 물음에 답했다. “엄청 많지. 올여름 산악 모터사이클 대회에서도 소리에 놀란 곰이 도망가다가 오토바이와 충돌해서 사람이 다쳤거든. 곰은 주로 동면에서 깨어나 극심히 배가 고플 때 양들을 습격하거나, 마을로 내려오곤 해서 사람들이 다치게 돼.”

늑대에 대해 다나에게 다시 물었다. “늑대가 그렇게 순정파라던데 맞아?” 다나의 답은 명쾌했다. “늑대는 자기 가족을 평생 돌보고, 암컷이 죽어도 자식들과 함께 지내는 동물이야.” 그 이야기를 들은 뒤 “곰은 어때?”라고 질문했다. “곰? 개랑 똑같아. 아무하고나 교미하려고 다 덤벼. 한 마리가 35마리까지 임신시켰다는 기록도 있어. 그러니 암컷이 새끼를 낳아도 제 자식인지 누구 자식인지 알 게 뭐야? 당연히 안 돌보지. 심지어 암컷이 새끼를 돌보는 시기에 교미하려고 새끼를 죽이기도 해. 그래서 암컷들은 새끼가 독립하는 2살이 될 때까지 수컷을 피해서 다녀.” 다나의 이야기를 듣고 이 말이 터져 나왔다. “아니 뭐 이런 막돼먹은 곰이 다 있어!”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창 늑대 똥을 들여다보는데 어디선가에서 희미한 방울 소리가 들려왔다. 양들의 목에 걸린 방울 소리다. 이 동네의 모든 양은 방울을 매달고 있다. “여기서는 양 한 마리에게만 방울을 달면 곰이랑 늑대에게 초대장 날리는 거야. 어서 저녁 드시러 오세요.” 곰이나 늑대로부터 양들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 동네 양치기들은 보통 5~7마리의 개를 데리고 다닌다.

루마니아 양치기의 연봉협상이 이뤄지는 날은 매해 6월29일. 그날은 동물과 가축을 보호하는 성인 성 피터의 날이다. 목장주들은 그날 짠 소와 양의 젖 양으로 1년 평균치를 내어 양치기들의 급여와 우유 분배율을 정한다. 그러니 양치기들은 제 몫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그 전날 소와 양을 굶겨 젖의 양을 줄이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그날 짠 젖의 양이 적어야 그걸 기반으로 목장주에게 상납해야 할 1년 치 젖의 양도 적어지기 때문이다). 언덕에서 마주친 양치기의 오두막과 침실(이라고 쓰고 나무 관이라고 읽는)을 보니 그 정도 편법은 기꺼이 모른 척해주고 싶어졌다.

9시에 시작한 오전 투어는 오후 3시에 끝이 났다. 우리는 곰이나 늑대를 발견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오후 투어가 남아있었다. 오후 투어에서는 곰을 볼 확률이 80%라고 했다. 다나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야생 곰들에게 먹이를 주는 ‘피딩 센터’였다. 이제 할 일은 오두막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유리창에 바짝 붙어 앉아 곰이 오기를 기다리기. 그 전에 100m쯤 떨어진 길에 비스킷을 잔뜩 뿌려놓아야 한다.

저르네슈티의 숲과 들판. 김남희 제공
설산에 둘러싸인 저르네슈티. 김남희 제공

멀리서 들려온 하울링

곰에게 먹이를 준다는 생각은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발상이다. 곰 사냥이 취미였던 그는 곰에게 먹이를 줘서 살을 찌우고 덩치를 키워 사냥의 즐거움을 높였다. 피임과 낙태를 금지하고, 여성에게 아이를 넷 이상 낳도록 강요하던 독재자가 쫓겨났을 때, 그의 궁에서는 입지도 않은 사냥복 수십 벌이 발견되기도 했다. 여러 면에서 변태적인 인간이었다.

공산주의가 붕괴한 후 사라졌던 먹이 주기 시스템이 다시 살아난 건 먹이가 부족해진 곰들이 마을로 내려오는 일이 자꾸 생기면서였다. 이 부근에서 시범적으로 시작해 지금은 루마니아 전역에서 야생 곰에게 먹이를 주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비스킷, 옥수수 같은 간식을 주는데 곰의 1일 음식 섭취량의 1% 정도에 불과한 양이다. 이 동네 곰은 초콜릿 중독자다. 그래서 오늘의 간식도 초콜릿이 듬뿍 발린 비스킷.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다양한 맛의 캔디 볼이 특식으로 나갔는데 초콜릿 맛만 쏙쏙 골라 드셨단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초조하게 두 시간쯤 기다렸을까. 마침내 커다란 갈색곰이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다나가 중얼거렸다. “덩치가 꽤 크네. 12살 정도는 된 것 같아.” 그 녀석이 초콜릿 비스킷을 와작와작 씹어먹는 동안 몸집이 작은 곰 한 마리가 다가왔다. 아무도 없을 거라고 믿었던지 작은 곰은 큰 곰을 보자마자 놀라 온몸이 굳었다. 큰 곰의 포효와 앞발을 들어 올리는 위협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냅다 줄행랑을 쳤다. 통통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도망가는 모습이 짠하면서도 귀여웠다.

한동안 주변을 돌며 영역 관리를 하던 큰 곰이 다시 비스킷 더미 앞으로 돌아왔다. 안전한 곳에서 바라보는 곰은 무섭다기보다 동화 속 곰처럼 어딘가 비현실적이었다. 야생의 동물을 이런 편법(?)으로나마 마주할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내 인생 최초로 야생 곰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문득 돌아본 저르네슈티의 숲에 밤의 장막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숨겨둔 보석을 슬쩍 보여준 숲이 어둠 속으로 제 몸을 감추고 있었다. 늑대의 무리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할 시간이었다. 멀리서 하울링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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