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손길은 환자에, 약 나르는 일은 로봇에 맡기려면

한겨레 2023. 1. 2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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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신희선의 로봇 비평][한겨레S] 신희선의 로봇 비평
병원을 달리는 로봇
경기 안양시 평촌동 한림대학교성심병원에서 간호사들의 업무 보조를 하는 로봇이 병원 복도를 이동하고 있다. 신희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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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이 더 이상 ‘몸에 안 맞는 옷’ 좀 그만 입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12일 한림대학교성심병원에서 만난 김영미 간호사가 말한다. 23년차 베테랑 간호사인 그의 눈에 간호사들은 지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불편하게 일하고 있다. 불필요한 노동에 시간을 보내느라 환자를 돌보는 업무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문 응답자 51%가 본인의 담당 업무 범위가 부적절하다고 답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2021년 간호사 실태조사 결과가 김 간호사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2001년 입사해 임상 업무를 봐온 김 간호사는 재작년부터 병원 내 커맨드센터에서 프로젝트매니저(PM)라는 직책을 맡아 병원 운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병원이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다섯 종류 72대의 로봇을 들이는 것도 병원 곳곳의 단순 반복 업무를 로봇에 맡기기 위해서다. 커맨드센터의 핵심 인력인 김 간호사는 병원 내에서 ‘로봇 엄마’로 불린다.

로봇이 일하기 최적 환경 ‘병원’

다섯 종류의 로봇 중 의료진이 가장 기대했던 건 이송 로봇이다. 현재 약제 이송에 넉대, 검체 이송에 한대, 병동 간 물건 이송에 한대를 쓰고 있다. 한 병동에서 비정기적인 물품 이송이 하루 평균 40건 발생한다. 오전, 오후 회진 시간 동안 새로 처방된 약제나 긴급 약품을 받아오고 다른 병동의 기구를 대여, 반납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난다. 4층부터 13층까지 병동 13곳이 있으니, 이 병원에서 하루에 500건 넘는 추가 이송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일들은 보통 보조 인력이 담당하지만, 그들이 다른 업무로 부재할 땐 간호사들이 맡는다.

지하 1층에 위치한 원내 약국 앞 복도에는 ‘약제나르미’라는 스티커가 붙은 하얀색 로봇 넉대가 있다. 로봇들이 서 있는 벽에는 ‘로봇스테이션’이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다. 약 이송은 이렇게 진행된다. 약사가 로봇을 약국 안으로 호출하여 약을 싣는다. 로봇이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한다. 간호사가 병동에 도착한 로봇의 서랍을 열어 약제를 꺼낸다. 어쩔 땐 겨우 손바닥만한 약봉투 하나가 들어 있다. 간호사와 보조 인력이 지하 1층에 내려가 15분을 기다려 받아왔을 약제의 정체다. 로봇이 다시 로봇스테이션으로 돌아간다.

로봇이 돌아다니기에 병원은 다른 곳보다 우수한 조건을 갖췄다. 환자들이 사용하는 휠체어, 병상, 수액 거치대, 보행 보조기 등에 달린 크고 작은 바퀴가 걸림 없이 오가야 하기 때문에 바닥에 턱이 없다. 부피가 큰 배식 카트와 병상이 이동할 수 있어야 하므로 복도의 폭이 넓고 주행을 방해하는 장애물도 없다. 그렇기에 로봇은 큰 문제 없이 길을 잘 찾아 필요한 곳으로 물품 이송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전방에 휠체어, 병상, 수액 거치대, 보행 보조기가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병원에서 환자보다 로봇이 우선할 순 없다. 환자가 갑자기 쓰러지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복도 한가운데를 달리는 로봇은 장애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로봇 엄마’ 김 간호사는 이송 로봇을 쫓아다니며 로봇이 멈추고 서는 자리를 교정했다.

휠체어를 탄 환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문 앞에서 대기하던 로봇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휠체어의 이동 반경을 수십번 시험하고 계산했다. 그렇게 해서 엘리베이터와 통신이 유지될 만큼 가까이, 그러나 휠체어 탑승자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 로봇이 서 있는 위치를 재설정했다. 엘리베이터 1미터 앞에서 대기하던 로봇은 이제 2미터 떨어져 서 있다. 휠체어와 로봇이 교행하는 구역에서 우선권은 휠체어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약제 전달을 마치고 로봇스테이션으로 복귀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로봇이 바닥 중앙에 붙어 있는 스티커 위에 선다. ‘로봇 탑승 위치. 로봇이 함께 탑니다’라는 안내가 적힌 이 스티커 역시 김 간호사가 의견 내어 만든 것이다. 지정된 위치에서만 멈추도록 설계된 로봇의 ‘전용석’을 확보하여 로봇이 엘리베이터에 타지 못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뒤이어 탄 사람들이 가장자리로 비켜선다. “지하 1층에서 내리겠습니다” 하고 로봇이 반복하지만 엘리베이터 안내음과 사람들의 대화 소리에 로봇의 외침은 금세 묻힌다. 10층, 9층, 8층…. 지하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아무도 내리는 기척이 없자 사람들의 손이 ‘닫힘’ 버튼을 향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립니다. 잠시만 양보해주세요.” 소란이 잠시 가라앉은 틈을 비집고 나온 소리 덕분에 로봇이 가까스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린다. 김 간호사는 엘리베이터 문에 ‘로봇의 말에 귀 기울여달라’는 문구를 붙일 계획이다.

도입 필요하다 의견 무려 94%

사람과 로봇이 함께 다니는 공간에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우리는 병원이라는 공간의 목적과 양식을 해치지 않으면서 로봇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사람과 로봇이 따라야 할 새로운 행동 규범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

먼저 로봇을 재설계하여 순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 휠체어와 병상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로봇의 경로를 짜고, 주변 소음에 따라 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위급 상황에서 로봇을 즉각 멈추고 치울 수 있도록 비상 정지 버튼을 사용하기 쉽게 만들어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한다.

사람들에게 로봇의 존재를 알려서 질서를 부여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로봇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할 때, 안내 문구를 통해 로봇의 의도를 대신 전달하는 것이다. 로봇이 서야 하는 위치에 다른 물건이 놓이지 않도록 표시를 해둘 수도 있다. 작고 섬세한 조정들이 사람과 로봇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시킨다.

이송 로봇 도입 4개월 뒤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간호사들은 단순 업무가 경감되어 편해졌냐는 질문에 73%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로봇 도입 필요성을 묻는 항목에는 94%가 ‘그렇다’고 답했다. 간호사들이 로봇 도입을 찬성하는 이유는 자신의 일을 로봇이 대신 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원래 자신의 업무가 아니었던 일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로봇이 병원에서 잘 달릴 수 있도록 질서를 구축하는 일은 단지 로봇이 맡은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돕기 위함이 아니다. 누군가 해야 하지만 경계가 모호해서 ‘둥둥 떠다녔던 일들’을 하나씩 알맞은 곳으로 끌어내리고, 병원의 인력을 필요한 곳에 재배치하여 의료 체계의 질서를 잡아가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과학기술학 연구자

국내 1호 로봇비평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로봇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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