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설날이 평년보다 빠른 것 같다면... 당신 직감이 정확합니다

최나실 2023. 1. 2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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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력으로 알아보는 '설 쇠기'의 역사
올해는 지난 100년 중 가장 빠른 설날
설 명절을 앞둔 18일 오후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세배를 배우고 있다. 뉴스1

혹시 이번 설 연휴를 앞두고 불현듯 '설날이 평소보다 좀 빠르네'하고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그런 느낌이 들었다면, 당신의 경험과 직관이 만들어 낸 '정답'이 맞습니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의 설날, 즉 정월 초하루인 음력 1월 1일은 양력으로 1월 22일인데요.

저도 문득 이런 궁금증이 들어, 한국천문연구원 '음양력 변환계산' 서비스의 ‘특정 음력일 찾기’를 이용해 1924년부터 올해까지 100년 동안의 설날, 즉 음력 1월 1일이 양력으로 언제였는지를 찾아봤습니다.

1924년부터 2023년까지 100년간 설날(음력 1월 1일)은 양력(그레고리력)으로 며칠이었을까. 가장 빠른 설은 1월 22일(4회)이고, 가장 늦은 설은 2월 20일(1회)이었다. 최나실 기자

양력 기준 설날은 최대 1개월 차이

그레고리력(태양력)을 기준으로 100년간 가장 빨랐던 설날은 '1월 22일'이었고, 총 4회(1947년·1966년·2004년·2023년) 있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나머지 96번은 모두 1월 22일 이후 설날이 찾아온 것입니다. 가장 늦은 설날은 1985년의 '2월 20일'(1회)이었고, 빈도수가 가장 많은 설날은 ‘2월 5일’(6회)이었습니다.

이 천문연구원 서비스는 기원전(BC) 59년부터 서기(AD) 2050년까지의 특정한 음력 날짜를 양력으로 바꿔주는데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쓰인 역법인 ‘율리우스력’(BC 46년 제정)과 현대 표준 역법인 ‘그레고리력’(1582년 제정) 둘 다 이용 가능합니다.

그레고리력은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기존 율리우스력을 보다 정확하게 개정해 시행한 태양력입니다. 이탈리아·프랑스(1582년 도입) 등 유럽 가톨릭 국가들은 이를 바로 채택했지만, 개신교 국가들은 초반엔 외면했고 아시아권도 한동안은 계속 태음태양력(음력과 양력의 혼합)을 썼습니다.

우리가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조선시대 말 고종 때인데요. 고종은 1885년 11월 17일을 양력 1886년 1월 1일로 정하고, 이를 기념해서 연호를 '건양원년'으로 칭했습니다. 국제적 도입 순서를 따지면 우리는 중간쯤이죠. 20세기 이후에는 중국(1912년), 러시아(1918년), 그리스(1923년), 그리고 뒤늦게 사우디아라비아(2016년) 등이 그레고리력을 채택해 현재는 가장 보편적인 국제 표준 역법입니다.

1985년 2월 17일자 한국일보 1면 사진.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부르며 휴일로 지정한 첫해 귀성 고속버스 예매표를 사려고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구시대 풍습"... 음력설 못 쇠게 했던 일제

1989년 1월 25일 한국일보 사진기사. "구정이 설날로 이름을 되찾고 3일 연휴로 확정돼 귀성 인파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경부선 새마을호 예매가 시작된 24일 서울역에는 인파가 예년보다 많이 몰려들어 2월 4일 자 예매표 9,500장이 5시간 만에 동이 났다."라고 설명돼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설날과 관련한 국내 기록은 '삼국유사'에서부터 발견됩니다. 또 조선 세종·문종 때 편찬된 '고려사'에 나오는 고려의 9대 속절(명절)에 원단(元旦·정월 초하루 설날)이 포함됩니다. 조선시대는 원단·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로 여겼습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설날은 민족의 대명절이죠.

그러나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음력설은 '국제화에 역행하는 풍습'으로 간주돼 공휴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896년 태양력 실시에 뒤이어, 일제강점기(1910~1945)에는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음력설이 양력설로 대체됐습니다. 구정(舊正)과 신정(新正)이라는 표현이 일제 잔재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국가기록원과 과거 신문기사들에 따르면 광복 이후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음력과세(음력에 설을 쇠는 것)는 미개하다", "이중과세(二重過歲·이중으로 새해를 맞이하는 일)는 낭비다"라는 등의 논리로, 음력설을 홀대했습니다. 1949년에는 대통령령으로 양력 1월 1일·2일·3일, 사흘이 국가 공휴일로 지정됩니다.

명년(明年·내년), 명후년쯤까지는 그래도 손을 꼽아가면서라도 음력과세를 하야만 하겠다는 기인(奇人·별난 사람)이 있을는지는 몰라도 삼 년 후쯤부터는 확실히 절종(絕種·아주 없어짐)이 될 것을 의심할 자 없을 것이다.
1949년 12월 8일 동아일보 기사 중 일부

음력설과 양력설을 두고 왈가왈부가 계속되다가 설날이 다시 제자리를 찾게 된 건 1985년 "전통 민속문화를 계승·발전한다"며 정부가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지정하면서부터입니다. 1989년엔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았고, 당일 하루만 쉬던 것이 지금처럼 사흘 연휴로 늘어나게 됩니다. 반대로 양력설 연휴는 3일(1949년)→2일(1991년)→1일(1999년)로 점차 줄었습니다. 아쉽지만 양력설, 음력설 양쪽 다 사흘씩 쉬지는 말라는 것이지요.

1998년 12월 2일 한국일보 지면기사. 정부가 1999년 신년을 한 달 남기고, '신정' 연휴를 이틀에서 하루로 전격 축소하는 바람에 달력 업계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음력과 양력의 역법 차이

지난 2009년 1월 11일 민족 대명절인 설을 맞아 고향을 찾은 자식과 손주들을 부모님들이 대문 밖까지 나와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잘 아시겠지만, 지구가 태양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삼은 달력은 양력(陽曆), 달이 지구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1개월’로 삼은 달력을 음력(陰曆)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역법은 해와 달이라는 천체의 주기적 움직임을 기준 삼아서 계절과 일시를 구분하는 계산법입니다.

역법의 역사는 곧 ‘오차 줄이기’를 위한 분투의 기록입니다. 예를 들어, 양력 1년은 365일이지만, 실제 태양력(지구의 태양 공전 주기)은 365.2422일이기 때문에 매년 덤처럼 한나절(6시간)이 더 주어지게 됩니다. 이런 오차를 보정하려고 4년에 한 번 윤년(閏年)이 돌아와, 2월의 끝자락에 29일이라는 ‘윤일(閏日)’을 더하게 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개최 시기가 이듬해로 밀린 2021년 도쿄 올림픽을 제외하면,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2024년 파리 등 윤년마다 하계 올림픽이 열리는 것이죠. 또 많이들 들어보셨겠지만 윤년의 2월 29일, 즉 윤일에 태어난 사람은 양력으로 생일을 챙길 경우 4년에 한 번씩만 생일 파티를 할 수 있습니다.


덤으로 주어지는 1개월 '윤달'

지난해 8월 서울 중구 충무로의 한 달력 판매점에 2023년 계묘년 달력이 나와있는 모습. 올해는 음력으로 보통 '2월'과 덤으로 주어지는 윤달 '2월'이 들어가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윤달을 언제 집어넣을지 결정한다. 뉴시스

한편 윤달(閏-)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달의 위상(모습) 변화는 29.5306일마다 나타나서, 음력 1개월은 29일과 30일을 번갈아 쓰는데요. 이렇게 계산하면 음력 1년은 354일이라,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매년 양력보다 음력이 11일 정도 짧아지게 됩니다. 이런 오차를 보정하지 않고 그냥 두면 17년 후에 음력 오뉴월에 실제로 서릿발을 맞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법과 표준시를 관리하는 한국천문연구원에서는 중간중간 ‘덤으로 주어지는’ 윤달을 끼워 넣습니다. 양력으로 19년이 지날 동안 7개의 윤달을 집어넣도록 돼있는데요. 19태양년(365.2422×19)과 19태음년+7윤달(29.5306×235)을 계산하면 날짜 수가 거의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2,3년에 한 번 있는 윤달은 여벌 달, 공(空)달, 덤 달, 썩은 달이라고도 불려 왔습니다. 평소와 달리 걸릴 것이 없고, 액(厄·모질고 사나운 운수)이 없는 달이라고 하여 이때 집수리나 이사, 결혼 같은 대소사를 치르는 세시풍속이 있었습니다.

올해도 마침 윤달이 있는데요. 양력 2월 20일부터 3월 21일이 보통의 음력 2월이고, 3월 22일(윤달 2월 1일)부터 4월 19일(윤달 2월 29일)까지가 '윤 2월'입니다. 올해 무탈하게 치러야 할 나만의 대소사가 있다면, 재미 삼아 이때를 노려보셔도 좋겠습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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