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가 수송기 만든 적 없는 한국과 공동개발 나선 까닭은
아랍에미리트(UAE)가 개발에만 수조 원이 투입될 수송기 개발을 위해 한국을 파트너로 점찍은 배경이 뭘까. 산유국으로서 현금 동원력이 풍부한 UAE는 우방인 미국으로부터 수송기뿐 아니라 첨단 무기까지 사들일 수 있는데, 굳이 수송기 개발 경험이 없는 한국과의 공동개발에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21일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UAE와 '다목적 수송기 국제공동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2035년 이전 양산을 목표로 추진하는 사업에 UAE가 기술 이전 등을 조건으로 개발비의 상당 부분을 투입한다는 취지다.
UAE가 한국과 수송기를 공동개발하기로 결정한 건 독자적인 무기체계를 보유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방산업계의 지배적인 평가다. 완제품 수송기를 사서 쓸 순 있지만 부품 조달 및 수리 등에 쓰이는 추가 비용이 만만치 않은 데다, 예상치 못한 고장이 발생할 경우 부품을 조달하는 데 장기간 소요돼 긴급 상황이 생겼을 때 활용하지 못할 수 있어서다. 자체적으로 개발 및 양산을 할 수 있게 되면 긴급 상황이 발생해도 대처가 용이해진다는 얘기다.
방산업계에선 UAE가 예멘 내전에 관여하면서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수송기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이 이번 MOU 체결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 3월부터 본격화한 예멘 정부군과 후티 반군의 내전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 양상으로 번졌고, 이후 사우디와 그 우방인 UAE가 민간인을 살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국 정부는 2021년 공격용 무기 판매와 모든 군사적 지원을 잠정 중단했는데, 이때 물자 및 병력 수송 등을 위해 수송기 사용을 요청한 UAE는 미 측의 거부로 한동안 난감한 상황에 빠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독자 운용할 수 있는 다목적 수송기를 보유해야겠다는 판단이 나온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무기 구입처인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거래선을 바꾸고 독자 운용체제를 갖추는 데 미국과 동맹인 한국만 한 파트너가 없었다. 게다가 한국은 2011년부터 아크부대를 파병해 UAE 특수 부대 훈련을 지도하고 있고, 2018년부터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양국 관계를 격상해 원전 등 여러 분야에서 기술 이전 및 제3국 공동 진출 등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도입을 추진하던 일본산 수송기(C-2)와 관련해 일 측의 관련 기술 이전 거부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도 아직 개발 능력 없어 사들이는 형편
하지만 갈 길은 멀다. 공동개발을 약속하긴 했지만, 한국도 아직 수송기를 직접 만들 능력이 없어 해외 방산업체들로부터 사들이고 있다. C-130, CN-235 등을 운용 중인 우리 군은 7,100억 원을 들여 대형 수송기 3대를 추가 도입하는 2차 사업을 경쟁 입찰 방식으로 추진 중이다.
지난해 공고를 내고 제안서를 받았지만, 입찰에 응한 미 록히드마틴, 유럽 에어버스, 브라질 엠브라에르 3개사 중 록히드마틴과 에어버스가 필수 조건이 누락된 제안서를 제출해 사실상 단독 입찰이 돼 무산됐다. 정부는 재차 3개사로부터 조건을 충족한 제안서를 받아 대상 시험평가를 하고 있고, 이후 대상장비 선정 등의 절차를 거쳐 이르면 올해 상반기 중 최종적으로 기종을 결정하게 된다.
한 방산업체 관계자는 "UAE와의 수송기 공동개발 약정은 향후 다른 무기체계 개발 분야에서도 UAE의 막대한 자본을 투자받을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수송기 개발 성공 여부가 추가 협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MOU는 개발 자체에 대한 약정일 뿐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추후 양국 간 협의를 통해 결정될 전망이다. 전략 수송기 또는 전술 수송기로 사용 목적을 결정하는지에 따라 개발 방향이 달라질 수 있고, 프로펠러 또는 터보팬 엔진 등 어떤 방식으로 개발할지도 미지수다. 다만, KAI가 지난해 9월 터보팬 엔진 추진 방식으로 30톤 이상 탑재할 수 있는 한국형 다목적 수송기 모델을 제안한 것으로 미뤄 터보팬 방식이 좀 더 유력해 보인다. 해당 모델은 범고래 모양으로, 개발 목표는 최고속도 시속 850㎞, 최대 항속거리 5,000㎞ 이상이다.
전략 수송기는 주로 전투 지역에 화물 및 병력을 수송하는 항공기다. 전술 수송기는 전략 수송기에 비해 비행거리가 짧은 대신 비교적 다양한 임무 수행이 가능해 전투 지역 내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앞서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인 조력자 및 가족을 구출한 '미라클' 작전에 동원된 건 미 록히드마틴의 중거리 전술 수송기 C-130J였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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