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거론 ‘드골의 핵무장 논리’, 사실도 앞뒤도 틀렸다
대통령의 위험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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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프랑스의 정치인 샤를 드골을 소환했다. 미국의 확장 억제, 즉 핵우산의 신뢰성을 거론하면서, 드골이 “파리를 지키기 위해서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고 언급한 것이다. 윤 대통령뿐만 아니다. 대선 후보 때부터 줄기차게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나 독자 핵무장을 주장해온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해 10월1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프랑스 드골은 미국이, 뉴욕이 불바다가 될 것을 각오하고 우리를 지킬 수 있겠는가 물으면서 나토를 탈퇴하고 핵개발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발언의 취지는 ‘미국이 서울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북한이 미국 본토까지 핵탄두를 날릴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아이시비엠)을 개발한 만큼, 미국의 핵우산을 더 이상 신뢰하기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국내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전문가와 언론도 드골의 말을 인용하면서 독자적인 핵무장을 주장하곤 한다.
사실도 앞뒤도 안맞는 논리
그렇다면 ‘전가의 보도’처럼 호명되는 드골이 정확히 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드골이 존 에프 케네디에게 핵우산 신뢰성의 문제를 제기한 때는 1961년이었다.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날카롭게 대립했던 유럽의 ‘재래식 군사력 균형’은 압도적으로 공산 진영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더구나 소련은 미국에 앞서 아이시비엠 개발에 성공한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1958년 11월 시작된 제2차 베를린 위기가 1961년까지 이어지자, 유럽 내에선 미국의 안보 공약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에 드골은 미국에 “소련이 재래식 공격을 가해오면 미국이 과연 핵무기를 먼저 쓸 수 있겠느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미국은 핵무기를 유럽에 전진배치하고 있었는데, 소련의 재래식 공격에 미국이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면 뉴욕이나 디트로이트가 핵 보복을 받을 수 있는 위험을 미국이 감수할 수 있느냐는 취지였던 것이다. 즉,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소련이 유럽의 나토 회원국에 핵무기를 사용하면 미국이 소련에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 핵우산의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자, 케네디는 1961년 5월31일~6월2일에 파리를 방문해 드골과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협의했다. 당시 두 정상의 대화를 담은 비밀문서에 따르면, 드골은 케네디에게 “만약 소련이 핵전쟁을 개시하면 미국이 보복할 것이라고 확고히 믿는다”고 말했다. 국내에 알려진 내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드골은 소련이 재래식 무기로 공격해도 미국이 핵 공격에 나설 것인지, 미국의 핵 사용 조건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케네디는 핵 사용 조건으로 두가지 답변을 내놨다. 하나는 “소련의 재래식 공격이 중대하고도 나토의 재래식 군사력을 압도할 경우”이고, 또 하나는 “유럽이나 미국을 향한 소련의 핵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였다. 더구나 그는 이러한 조건이 발생하면 “미국은 핵무기를 이용해 소련에 보복할 것”이라고도 했다. 소련의 핵 사용에는 물론이고 소련의 중대한 재래식 공격이나 핵무기 사용 임박에도 미국은 핵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처럼 국내에선 드골의 발언이 잘못 소개되고 있다. 그가 걱정했던 것은 ‘소련의 핵 공격에 미국이 핵 보복으로 응수할 수 있느냐’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소련의 재래식 공격에도 미국이 선제적으로 핵을 쓸 수 있느냐’에 있었던 것이다. 또 프랑스는 1960년 핵실험을 통해 이미 핵무장에 나서고 있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를 만류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럽의 군사력 균형이 나토에 불리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엔 핵확산금지조약(NPT)도 없었던 것이 주효했다. 또 1950년대 말과 60년대 초에 미국 내에선 ‘폭격기 갭’, ‘미사일 갭’ 등 미국의 핵전력이 소련에 크게 뒤처져 있다는 공포심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드골은 이 점들을 파고들어 프랑스의 핵무장이 유럽에서의 군사적 열세를 상쇄하고 대소 억제를 강화할 수 있다고 케네디를 설득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드골은 미국의 핵 사용 ‘의지’보다 군사적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한반도의 상황과 관련해 몇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는 재래식 전력 면에서 한-미 동맹은 물론이고 남한 독자적으로도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군사력 평가 기관인 <글로벌 파이어파워>의 분석에 따르면, 남한은 2023년에도 세계 6위를 기록한 반면에 북한은 34위로 이전보다 떨어졌다. 이는 한-미 동맹과 한국이 북한의 재래식 공격을 억제·격퇴할 수 있는 막강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드골이 걱정했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미국의 핵 능력이 1960년대 초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졌다는 점이다. 미국 핵우산에 대한 드골의 불안감에는 소련이 미국에 앞서 아이시비엠 개발에 성공한 것이 강하게 스며들었다. 북한이 아이시비엠 개발에 성공하자 국내에서도 미국 핵우산에 대해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과 비교하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아이시비엠과 전략폭격기, 그리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전략 3축체계’를 구축하고 있고, 다양한 전술핵도 보유하고 있다. 이 역시 드골이 걱정했던 때와는 판이하게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윤 대통령 ‘만용 아닌 위기관리’ 해야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북한의 핵 사용 시 미국의 보복 여부보다는 핵전쟁 위험 그 자체에 있다. 앞서 소개한 케네디의 핵 사용 조건은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고 있는데, 그 주된 대상이 바로 북한이다. 또 미국과 북한의 핵 독트린은 ‘데칼코마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닮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의 책무는 북한의 도발 시 백배·천배로 보복하겠다는 만용이 아니라 위기관리에 있다. 대통령의 가장 큰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에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를 전공했다. 조지워싱턴대 방문학자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를 연구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핵과 인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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