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서울에 비가 내려 유리 장판처럼 미끄러웠다 [청계천 옆 사진관]

변영욱기자 2023. 1. 2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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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사진] No. 2
▼ 미국에서 온 편지

지난 주 (1월 14일)에 백년사진의 글을 처음 포스팅을 한 후 회사 이멜일로 미국에 살고 계신 교포 한 분이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아주 귀한 사진을 찾고 계시다는 내용인데 본인의 허락을 받아 여기서 공유합니다.

“변 사진 기자님,
미국에 살고 있는 연세의대 1962년 졸업생 허정입니다(1937년생).

변선생의 기사를 읽고 수년간 찾고자하는 역사적인 사진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1884년에 미국 의료선교사 호레스 엔 알렌(“안련 참판” Horace N. Allen, M. D.)이 한국에 와서 이듬해 1885년 4월 10일에 제중원을 열었고, 한국 역사상처음으로 시행한 수술이 에텔ether 마취를 하여 대퇴부 골수염수술을 하였습니다.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고, 그 사진을 이분의 손자인 의사가 워싱턴 소재 한국대사관에게 보내어 한국으로 전달하라고 습니다. 그때가 아마 100주년 수교기념 때인 것 같습니다(군사정권시절).

알렌 후손들(증손녀들)과 접촉하며 지내는 동안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또한 손자가 대사관에게 잘 받았는지, 어디로 전달했는지 여부를 알려달라는 서신에 답장도 못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국 대사관, 외교통상부, 청와대에 문의를 했지만 답장한번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진이 어디에 사장되어있는데, 변 선생님이 찾아서 연세의대 동은 박물관에 전달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알렌후손들이 알렌이 고종에게서 받은 훈장, 안경, 사진 등을 희사하여 동은 박물관에 보관중입니다.

생전에 좋은 소식을 얻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허 정 1-352-***-****”

요지는 의료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술 사진’을 찍은 미국인이 계셨는데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에 즈음하여 워싱턴 소재 한국대사관에 보냈는데 그 이후 한국 정부로부터 사진을 접수했고 어디에 전시 또는 보관하고 있다는 답변을 못 받았다는 내용으로 보입니다.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고 우선 이렇게라도 세상에 알려두는 게 좋겠다 싶어 이곳에 기록으로 남겨두겠습니다. 혹시 관련되셨던 분이나 내용을 알고 계신 분은 저에게 메일로 알려주시면 미국에 계신 허정 선생님(87세)께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그럼 이번 주에도 시간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100년 전 오늘 동아일보 신문에 실렸던 사진 중에 가장 눈에 띈 사진입니다

<대한에 대우… 경성은 유리 장판… 근래 희한한 일…> 어제 21일에는 눈보라가 하늘에 날고 바람이 사람의 살을 어일만한 대한(大寒) 절기임에도 불구하고 새벽 1시부터 가는 비가 부실부실 나리기 시작하여 마치 경성에는 돌연히 봄이 온듯하나 비는 오는대로 얼어서 경성시가는 유리장판을 깔아 놓은 듯 통행이 지극히 곤란하게 되었는데 사람마다 이와 같이 대한 절기에 비가 오는 것은 참말 희한한 일이라 하여 매우 이상히 여기며 혹은 금년에 재란이 날 증조가 아닌가 하는 사람까지 있는데 이에 대하여 측후소의 말을 듣건데, 대한절기에 비가 온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조선 전국에 대개 비가 온 듯하다 하며 이번 비로 인하여 농작물에는 별도의 손해가 없을 듯하고 오늘 22일 오후에는 개일 듯 하다더라 (사진은 21일 우중의 경성 거리)


▼ 블랙아이스 현상에 시민들이 웅성웅성
한겨울에 내린 비 때문에 서울 시내가 빙판을 이뤘다고 합니다. 한겨울 새벽에 내린 비에 서울 시내 도로가 얼어 시민들이 미끄러지기 쉬운 상태를 ‘유리 장판’에 비유했네요. 사진설명을 잘 보면, 시민들은 한겨울에 내린 비를 안 좋은 징조로 해석하기도 한다는데 흉흉한 민심이 간접적으로 전해집니다. 오늘날의 기상청일 측후소에서는 ‘별 일 아니다. 오후에 개인다’고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 우산 그리고 시민 가까이 간 사진가
이 사진을 보면서 제일 눈에 띈 것은 오른쪽의 큰 우산입니다. 보기에도 아주 튼튼해 보입니다. 오히려 요즘 편의점이나 동네 슈퍼마켓에서 파는 우산보다 더 튼실해 보이지 않나요? 저 우산은 메이드인 재팬이었을까요 메이드인 조선이었을까요?

사진적으로 눈에 띈 점은 사진가가 피사체 근처로 충분히 접근해서 화면의 원근감이 잘 표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강약중강약의 리듬감이 사진에 표현되어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쉬운 건 아니었을텐데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카메라에 방수 대책을 어떻게 했을까요? 조수가 씌워 준 우산 아래서 사진을 찍었을지 혼자서 우산을 들고 카메라를 조작했을지 자못 궁금합니다. 요즘 사진기자들은 혼자서 우산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카메라의 방수 기능이 좋아져서 잠깐 동안 비를 맞는 것은 카메라 성능에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카메라 전용 우비를 씌우고 현장에 나갑니다.

또 하나. 요즘 사진기자들은 날씨 스케치를 하는데 애를 먹습니다. 피사체에 다가가면 시민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망원렌즈로 멀리서 찍습니다. 그러다보면 앞에 있는 사람이나 뒤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 같은 크기로 표현되어 단조롭습니다.
시민들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 요즘 문제되는 초상권 시비는 없는 사진이 100년 전에 있었군요. 한 수 배웁니다.

▼ 가운데 키 작은 청년

글을 마무리하다 사진을 한번 더 봤는데 가운데 우산을 쓰지 않은 작은 키의 사람이 보입니다. 오른쪽 어깨에 큰 가방을 메고 있습니다. 학생 같지는 않고 중절모를 쓴 신사를 향해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집에 있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음식을 사기 위해 가방에 든 뭔가를 팔아야 했던 건 아닐까요?

▼여러분은 100년 사진에서 뭐가 보이시나요? 댓글에서 여러분의 시선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변영욱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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