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M] 한전 '김치단속'에 위약금 폭탄 반발에 "그럼 더 자주 단속"
"터무니없어요. 이건 한국전력의 일방적인 기준인 거잖아요."
"이번 단속은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적자 만회든지 일시적인 실적 쌓기용으로‥"
관련 보도: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446924_36199.html
한 마을에서 30년 넘게 산수유 농사를 해온 이덕재 씨는 위약금 2천만 원을 내야 한다며 한국전력의 독촉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위약금 폭탄', 이 씨에겐 날벼락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
두 달 전, 농사용 전기 사용 단속에 나선 한전 직원이 이 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농산물과 식재료가 보관돼있던 한 창고를 열어보더니 한 켠에 놓인 김치통을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김치는 농산물이 아닌 가공품이라 저온 창고에 보관하면 안 된다는 지적.
[이덕재 / 구례 농민] "우리 농민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가지만 한전에서 법규가 그렇다니까.. 힘없는 농민들은 그런 상황을 따져볼 여력이 안돼요."
'농사용 전기는 용도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창고에 김치를 보관하면 안 된다는 계도나 안내는 농사용 전기를 썼던 3년 동안 없었습니다.
오락가락 부과 기준
이 씨에게 위약금 2천만 원을 물린 이유도 황당했습니다. 이 씨가 저온 창고를 사용한 것은 3년뿐인데, 이전에 창고를 쓴 사람들의 위약금도 함께 부과한 겁니다. 이 씨가 항의하자 위약금은 60만 원까지 깎였습니다. 물론, 90%가 넘게 깎인 이유도 기준도 없었습니다.
인근의 다른 농가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블루베리 농장을 운영하는 고흥석 씨는, 자리를 비운 사이 한전의 저온 창고 불시 단속을 당했습니다.
수확한 농산물 옆에 놓인 김치와 장아찌가 문제였습니다. 결국 고 씨에게는 위약금 6백만 원이 부과됐습니다. 저온 창고를 쓴 5년 동안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며, 단속 한 번에 5년 치를 소급한 겁니다.
나중에 불시 단속 사실을 알게 된 고 씨는 '5년 내내 가공품을 넣어두지도 않았고, 대체 어떤 기준으로 한꺼번에 부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러자 금액은 260만 원으로 내려갔습니다. 오락가락한 기준입니다.
취재진은 같은 이유로 위약금이 부과된 농가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마을 일대를 1시간여 동안 돌아다녔습니다. 한 집 건너 한집 꼴로 비슷한 피해를 본 농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농민들은 모두 이번 단속이 갑작스러웠고 무엇이 가공품에 해당해 위약금을 물게 됐는지조차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부과 기준도 모호한 상황. 그런데도 한전은 단속을 강행했습니다.
결국 한전 적자 때문?
취재진은 2017년~2022년 전남 시군별 농사용 전기 부당 사용 단속 현황 통계를 한전에 요구했습니다.
어렵게 받아본 자료엔 의문점이 가득했습니다.
한해 1-2건 물리던 위약금이 지난해 63건(저온창고 단속 41건)으로 늘었고 액수도 수백만 원에서 5천 5백여만 원(저온창고 단속 2900만 원)으로 급증한 겁니다.
왜 지난해에만 단속 건수가 급증한 건지,
대규모 단속이 있었던 거라면, 본사의 지침에 따른 결정이었던 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단속 건수가 급증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자, 한전 구례지사는 "한전의 적자 상황 때문이었다"고 답했습니다. 또, "경영 압박이 들어오자 적자분을 메우기 위해 단속에 나섰고, 전기 요금 인상이 예고된 상황에서 농민들이 저렴한 농사용 전기를 함부로 쓰지 않을까 걱정했다"며 해명했습니다.
<한국전력 관계자 통화 내용 발췌>
[기자] "그런데 작년에만 특별히 (단속을) 한 이유가 있어요?"
[한국전력 관계자] "누적 적자가 한 30조가 되는 상황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저희도 경영 압박을 받다 보니까‥ 누수되는 전기요금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전기 요금이 오를 거다. 이런 이슈가 있는 상황에서. 농사용이 좀 저렴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을(농사용 전기를) 쓰고 싶다는 유혹을 (농민들이) 받지 않았을까‥"
힘없는 농민만‥?
사실 가공품에 대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한전은 지난 2019년 수협중앙회 인천가공물류센터 등 4곳을 대상으로 위약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군납용 수산물인 '말린 명태'는 수산물이 아닌데 농사용 전력을 썼다며 43억 원의 위약금을 내라고 요구한 겁니다.
3년만에 소송은 한전의 패배였습니다.
수산물에 대한 해석이 여럿인 데다 약관도 이를 명확히 정하지 않고, 무엇보다 전기를 쓰는 고객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판결문 발췌 "수산물은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어 그 의미가 명백하다고 할 수 없으므로 고객인 피고에게 유리하도록 이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
수산물과 농산물의 차이가 있을 뿐, 한전이 농민들을 상대로 위약금을 부과한 상황과 같습니다.
명확한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전의 유리한 판단 기준에 따라 농민들만 단속의 대상이 된 것인데
한전은 수협과 진행한 소송과 이번에 농민들을 상대로 한 위약금 단속은 별개라고 주장합니다.
이대로 단속 강화?‥'불통' 한전
한전은 계도와 안내가 충분하지 못했던 점과, 소급 기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한전-취재진 대화 녹취>
[기자] "애초에 명확한 기준 없이 소급적용을 할 수가 없으면 (단속을) 안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한전 관계자] "현장에서 일어나는 부분이라 어떻게 (단속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선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언제부터 했다, 그러면 그때부터 얼마입니다. 사용자와 바로 되는 경우도 있을 거고. 이런 부분들이 서로 왔다 갔다 할거고요."
한전은 이미 수산물과 가공수산물 위약금 소송에 졌습니다.
정상적이라면 이후 한전은 당연히 농산물과 가공농산물 위약금 기준에 대한 검토를 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준을 마련하지 않은 채 지난해 단속을 오히려 강화했습니다.
MBC 보도 이후 전라남도는 기준없는 단속으로 피해 입은 농민이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며, 각 시군 담당 공무원을 통해 현재 운영 중인 저온 창고를 파악하고 피해 사례가 있는지 조사에 나섰습니다.
구례의회는 농민들과 함께 집단 소송을 검토하고 있으며 전국 농민회 총연맹은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피해가 있는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면 오해가 없게 단속을 더 자주해야 겠네요"
하지만 한전은 의외의 반응을 내놨습니다.
김치 같은 가공농산물 단속을 더 자주 하겠다는 겁니다. 한전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단속과 계도를 자주 나가 적발을 자주 해 '알려주지 않았다', '위약금 적용 기간이 길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겁니다.
농산물과 가공농산물에 기준을 마련해놓지 않아 벌어진 일인데 사용자인 농민들과 논의하지 않고 단속만 더 강화하겠다는 겁니다.
농민들은 농사용 전기를 가상화폐 채굴에 쓰는 것처럼, 부정한 사용을 단속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이미 수산가공품에 대한 위약금 부과가 옳지 않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농민들은 당연히 농산가공품 단속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용자의 이러한 의문에 대화가 아닌 단속으로만 대응한다면
"한전의 단속 행태는 전기를 올바른 방향대로 사용하게끔 계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오직 위약금을 물게 하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농민의 비판이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임지은 기자(jieun@kj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447813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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