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중고 안은 중앙은행의 해법 달라질까
파이낸스 l 세계경제 구조의 지각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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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모든 것은 쉼 없이 바뀐다. 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그 변화가 구조적인가 하는 것이다. 2020년대의 경제는 과거와 다른 구조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 구조적이라면 변화의 파장은 심대할 수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이어진 구조가 부서지고 있다. 너무나 익숙했던 한 시대가 가고 있다. 거부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고 속도마저 빠른 구조적 변화이기에 경제주체의 적응력은 큰 시험대에 놓일 것이다.
세계화 재편과 교역의 변화
가장 큰 변화는 세계화의 재편이다. 세계화는 인류 역사와 함께한 꿈이었지만 본격적으로 개화한 것은 1990년대였다. 21세기에 막 들어서는 그야말로 ‘초세계화’ 시대였다. 이런 흐름이 영원할 듯 보였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황은 바뀐다. 균열이 생겼다. 왜 질주하던 세계화는 주춤하기 시작했을까? 가장 큰 원인은 세계화로 인한 불평등 심화다. 세계화는 개인은 물론 국가 간 격차를 더욱 늘렸다. 특히 선진국 중산층이 세계화로 가장 큰 피해를 봤다고 믿었다. 중국 같은 신흥 강국의 부상도 세계화를 이끌던 미국을 불안하게 했다. 중간계층의 불만은 결국 정치를 바꿨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은 이를 잘 말해준다.
2021년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초세계화 시대의 종말을 명확히 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공급망 훼손에 더해, 2022년 초 터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화가 더는 지향해야 할 지상 목표가 아님을 서구 특히 미국이 확인한 계기가 됐다. 서구는 세계화에 따른 물리적 연결의 취약성을 절실히 경험했다. 일방적으로 제압할 수 없는 상대방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도 깨달았다. 중국과 중국 기업에 대한 압박은 나날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등 서구는 중국과 헤어지려 한다. 중국 또한 시진핑 체제를 공고히 하며 경쟁을 노골화한다.
이제 초세계화 시대는 저물고 있다. 세계화 재편이 진행된다. 세계화의 핵심은 교역 자유화다. 세계화 재편은 교역 흐름이 바뀐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교역은 과연 어떤 식으로 변할까? 재화와 서비스를 구분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리적 상품 거래는 안보 가치를 축으로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첨단산업 분야는 철저히 통제될 가능성이 크다. 자국 산업 보호와 안보를 이유로 기술이전과 투자를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경쟁국 견제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른바 동맹을 축으로 한 ‘프렌드쇼어링’과 자국 부근에 공급망을 배치하는 ‘니어쇼어링’이 강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북미 투자와 더불어 중국을 대신할 인도, 베트남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상품 교역 흐름의 대변혁은 불가피하다. 투자가 집중되는 곳의 경제성장은 가시화하겠지만, 자본이 이탈하는 지역(대표적으로 중국)은 내수 등 새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성장 둔화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상대적으로 서비스 거래는 제재로부터 자유롭다. 지난 30년의 흐름이 외려 가속될 수 있다. 서비스 부문의 디지털화가 급진전하면서 글로벌 서비스 거래가 증가한다. 안보와 패권을 둘러싼 지정학적 경쟁이 서비스 부문의 디지털 진화 흐름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디지털 자산은 쉽게 변형되기 때문이다. 규제를 피해갈 여지가 많다. 서비스 부문의 디지털화는 소기업과 엔터테인먼트업계에 거대한 가능성을 제공할 것이다. 신흥국 기업에도 기회의 문이 열린다고 할 수 있다. 글로벌 상업망의 디지털 전환에 따라 서비스 부문의 세계화는 더 진전될 것이다. 많은 개발도상국이 이 흐름에 적극 참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급 부족과 고금리
1998년 대형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2001년 9·11 테러,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은 실물경제는 물론이고 자산시장도 파괴했다. 중앙은행은 이런 이례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비정통적 정책을 동원해야 했다. 통화재정 정책의 초점이 충분하지 않은 수요를 진작하는 데 맞춰졌다.
이제 그 시대가 끝났다. 우린 총공급이 불충분한 시대로 진입했다. 세계화 재편에 따른 공급망 왜곡,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공급망 혼란과 축소는 지난 30년 동안 잊혔던 시나리오다. 이제 그것이 일상인 시대가 됐다. 언제든 특정 물품이 여러 이유로 조달되지 않는 시대가 온다. 산업용 필수재뿐 아니다. 식료품 등 필수품도 제재로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 요인까지 더해졌다. 녹색경제로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기존 공급시스템 변화를 불러온다. 적어도 그 전환이 끝나기 전까지 공급이 제한될 수 있다. 넘쳐나던 총공급이 수축되는 시대에 이미 들어섰다.
저금리 시대가 저무는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일본은행을 제외한 주요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대응에 나섰다. 고금리 시대 지속은 결국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오래가느냐에 달렸다. 지난 30년 세계는 초세계화에 힘입어 공급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풍부한 공급은 가격을 낮추는 동인이 됐다. 인플레이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였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세계화 재편은 공급을 줄여 가격 상승의 기폭제가 됐다. 앞으로 세계는 인플레이션 압력에 늘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공급망 재편이 마무리될 때까진 그렇다. 중앙은행의 선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초저금리의 복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
경제성장은 생산성과 노동력 팽창의 함수다. 지난 10년 미국의 경제성장률 평균치는 2%였다. 생산성이 약 1.5%, 노동력 팽창이 0.5% 성장에 기여했다. 앞으론 어떻게 될까? 생산성은 장기적으로 현 상황을 유지하거나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노동력이다. 미국의 노동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매년 1%씩 팽창했다. 그것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 노동력 팽창은 최근 0.5% 선으로 하락했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 코로나19 유행의 후유증에 따른 노동력 상실, 노동에 관한 시대정신의 변화, 이민 규제 강화 등은 노동력 팽창과 경제성장에 부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선진국이 해당한다.
지난 몇십 년 기업들은 저금리라는 울타리에 안주했다. 이미 금리는 올랐다. 고금리는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민간과 정부 모두 신규 자금 조달은 물론 차환 원가까지 급등한 상황에 놓였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고금리에 눌린 경제주체의 위험은 기하급수로 커질 것이다. 저성장 분야의 기업은 물론이고 원자재 비중이 높은 기업은 앞으로 몇 년 동안 이례적인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부채 조달과 상환 비용이 급증하면서 투자는 생각지도 못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다. 경제주체는 어떻게든 비용을 줄이려 하겠지만 선택지는 뻔하다. 통제 가능한 부문의 원가절감이다. 바로 해고다. 투자와 고용이 줄면 성장은 둔화된다.
중앙은행의 트릴레마
이런 구조적 변화가 중앙은행의 태도 변화 시점과 맞물린 게 치명적이다. 10년 이상 중앙은행과 정부는 ‘헬기에서 돈을 살포함으로써’ 경제 취약성과 시장 변동성에 대응했다. 체질을 바꾸기보다 대응에 치중했다. 안정이란 명분을 내세워 그 자체로 불완전한 비정통적 방식을 동원했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은 중앙은행과 정부의 유동성에 기대 성장했다. 허약한 경제구조는 필연이었다. 시장과 실물경제는 중앙은행이란 친구 덕분에 호황을 누렸다. 이제 그 친구가 떠나려 한다. 떠나려는 신호만으로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실물경제가 둔화된다.
중앙은행은 딜레마가 아닌 트릴레마(서로 얽힌 세 가지 문제)에 빠졌다. 성장과 고용을 해치지 않으면서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 이것도 어렵다. 그런데 하나의 과업이 더해졌다. 금융시스템의 안정까지 도모해야 한다. 삼자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이 가운데 무엇을 살릴지 선택해야 하는 궁지에 몰렸다. 현재 최우선 순위는 인플레이션 억제다. 이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면 나머지 과업이 비교적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이제 새로운 규범이 됐다. 2% 이하의 인플레이션은 당분간 어렵다. 그렇다면 결과가 뻔하다. 고금리 하중이 금융시스템과 경제성장, 고용안정에 점차 압박 강도를 높일 것이다. 붕괴를 피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시대가 바뀌지만, 해법은 언제나 같을 수밖에 없다. 우린 창의적 해법을 기대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언제나 그렇듯 상당한 파열 뒤 새판을 짜게 될 것이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무너지며 천문학적 부채를 허공에 날리고 새롭게 유동성을 주입하는 것이 깊은 침체에 대응하는 시스템의 대응 방식이었다. 이번이라고 다를까? 문제는 그때까지 상당 기간 세계는 침체와 둔화의 늪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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