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설원, 저항의 스노보드…‘서태지 키즈’ 기억하시나요? [ESC]
겨울 스키장 찾는 인구 급감했지만
2000년대 저항·일탈 문화 상징하며
청년층 매료했던 대표 동계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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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뉴스에서 강원도에 70㎝가 넘는 폭설이 예보됐다. 문득 생각이 났다. 10년 전의 나라면 그 뉴스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테지. ‘내일 아침 스키장 셔틀버스를 타고, 약속의 땅 강원도로 가야지. 그곳에서 스노보드를 타야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놀이를 하러 눈 세상으로 떠나야지.’
그리고 10년 후인 현재의 나. ‘나는 일단 그 뉴스를 봐도 스키장에 가지 않는다. 70㎝나 예보되었으니 운전이 힘들 테고, 기름값도 부담스럽다. 아이들도 춥다고 좋아하지 않는다.’ 10년 만에 나는 왜 그 재미있었던 놀이가 재미없어졌을까.
과거의 영화에서 멀어졌지만…
전국의 ‘김연아 키즈’들이 빙판을 향한 것처럼, 전국의 ‘박세리 키즈’들이 필드를 향했던 것처럼,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전국의 스노보더들은 ‘서태지 키즈’였다. 서태지가 보드를 배운 게 1993~1994시즌 무주리조트였다는 전설적인 이야기. 그 당시에는 많은 스키장이 스노보드를 금지했는데, 전국 스키장 중에서 오직 무주리조트에서만 보드를 탈 수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어느 날 그곳에서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스노보드를 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프리 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스노보드가 나오고, <컴백홈>의 무대 의상이 스노보드 복장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뮤직비디오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은 설원을 개구쟁이처럼 뛰어놀았다. 저항의 상징, 힙합, 젊음. 결국 전국 스키장은 스노보더들에게 문을 열었다.
나도 그런 서태지 키즈 중 하나였다. 서태지 이후에도 듀스, H.O.T, 젝스키스 등의 겨울 무대 의상은 대체로 보드복에서 영감을 얻은 듯했고, 뮤직비디오에도 여전히 스노보드가 많이 나왔다. 그때 나도 여느 친구들처럼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스키장에 가면, 꼭 스노보드를 배우리라.’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스노보드는 비싼 취미다. 당시 스노보드 장비는 국산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옷도 비쌌다. 리프트권도 5만~6만원. 무엇보다 당시의 나는 스키장에 갈 방법이 없었다. 금요일 저녁이면 차가 있거나 아버지 차를 빌릴 수 있는 친구들을 꼬드겼다. 여의치 않으면 셔틀버스를 예매했다. 오늘은 (보드로 턴을 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갔다가 다시 다른 쪽으로 가는) ‘낙엽’에서 벗어나리라. 슬라이딩 턴을 해보리라.
접근이 어렵고, 몸은 힘들고, 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취미. 당시의 나는 정말로 스노보드에 ‘미쳐’ 살았다.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다녀온 친구가 북미 최대 스키 리조트라는 휘슬러 스키장의 광활함을 말할 때, 나는 그곳을 상상하며 캐나다 이민을 꿈꿨다. 동호회에 들어서 생전 모르는 사람들과 시즌 방을 잡고, 주말은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일 년 동안 돈을 모아 일본 홋카이도 니세코 스키장에 스노보드 원정을 떠났다. 하다 하다 이런 적도 있었다. 고향 친구 무리 가운데 제일 먼저 결혼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포함해 떠난 어느 겨울 스노보드 여행. 문제는 그 친구가 결혼 후 첫 설 명절에 아내만 시댁에 혼자 두고 우리 무리에 꼈다는 것이었다. 철없음, 좋게 말해 젊음. 그런 단어가 어울리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야기. 이제 나는 스노보드를 타지 않는다. 함께 타던 친구들도 타지 않는다. 내 경우엔 어느 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데, 도대체 ‘이 짓을 왜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드가 너무 익숙해져서 일수도 있는데, 멍하게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행위가 재미없어졌다.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한편 스키장 시즌도 짧아졌다. 수도권 스키장 가운데 일부는 2월이면 문을 닫았고, 설질도 점점 나빠졌다. 기온이 오르니 강설기를 돌려도 눈이 녹아내렸다. 폭설이 와도 보드 타기에 좋은 보송보송한 눈이 아니라 축축한 습설이다. 비용도 문제다. 여전히 스노보드를 타는 데 드는 비용은 비싸고, 그 돈이면 할 수 있는 놀이가 너무 많아졌다. 10년 전쯤 한 외국 보더가 말하길 스노보드의 가장 큰 적은 스마트폰 게임이 될 거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예언이 실현되어 가는 눈치다.
지난 12월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국내 스키장이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정상 개장을 했지만, 크게 줄어든 스키 인구로 고심이 크다고 한다. 한국스키장경영협회 등 업계에 따르면 2011~2012시즌 686만 명에 달하던 스키장 이용객은 2020~2021년 시즌 145만 명으로 급감했다. 보드 인구 또한 크게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과거의 영화에서 너무 멀어진 스포츠가 된 것이다.
그땐 그랬지
올겨울, 아이들과 스키장에 가서 낮에 아이들과 놀아주고 저녁에 혼자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강원도 평창 휘닉스파크의 정상 몽블랑. 기억도 안 나는 초보 시절, 내가 저기서 타고 내려올 수 있을까 싶었던 나의 목표였던 곳. 그런데 이번에 올라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한동안 안 탔는데 괜찮을까? 내 몸은 턴을 기억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선 정상에선 두려움을 느꼈다. 몇 년 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나이 듦이 묘하고도 재밌었다.
우선 노래를 한 곡 듣자. 스노보드를 가장 좋아했던 시절, 가장 많이 들었던 ‘다이나믹 듀오’의 <불타는 금요일>. 그리고 슬로프를 달렸다. 얼레, 돌아가네. 몸은 기억하고 있구나. 한번 뛰어볼까? 소심한 점프. 꽝! 안 아프네. 그래 내가 이걸 좋아했었지. 그리고 누군가 내 옆을 지나갔다. 또 다른 아재 보더. 그의 행색과 출중한 실력을 보아하니 딱 나 같은 사람이었다. 아이들 재우고 나왔구나. 재밌게 잘 타네. 그리고 그걸로 끝.
내 또래의 독자라면, 그리고 한때 스노보드에 미쳐 있었던 사람이라면 스노보드를 생각하면 복잡한 감정이 들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열병에 걸린 듯 좋아했던 시절. 한때는 젊음의 문화, 저항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유입 인구가 해마다 줄어드는 마니악한 문화가 되어버린 스포츠.
10년 전, 큰 눈이 온 다음 날 아침이면 나뭇가지들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쿠궁’ 부러지는 소리가 온 스키장에 울렸다. 70㎝ 폭설이 잦아든 그 다음 날 아침에도 아마 그곳에선 그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 날리는 눈, 스노보드로 슬로프를 긁는 소리. 그걸 상상하자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여전히 스노보드를 타고 있을까? 그들은 여전히 한국에 그들이 뿌리내리게 한 스노보드 문화를 사랑하고 있을까? 아니면 지금의 나처럼 그 시절을 추억하며 추운 겨울의 일상을 살고 있을까?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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