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된 무자본 갭투자, ‘빌라왕’ 뒤엔 文정부 임대차법 오판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입력 2023. 1. 21. 11:01 수정 2023. 1. 21.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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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학봉 기자의 부동산 봉다방>
‘전세 전문가’ 김진유 경기대 교수 인터뷰-상
임대차 법- 제도 미비로 청년층 파괴 악성범죄 빈발
문 정부 임대차 3법 도입때 일부 보완만 했어도 사기 방지 가능
규제로 고층 아파트 재개발 불가능한 강서구에 사고 집중
올해 고점 계약 2년 만기 도래, 미반환 사고 급증 불가피

“올해는 전세가와 매매가가 폭등해 정점이었던 2021년에 계약했던 전세의 2년 만기가 도래한다. 지금까지는 전세사기가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재테크 차원에서 열풍이 불었던 소자본 갭투자(매매가의 90%이상인 전세보증금을 이용한 주택 매입)에서도 상당수 보증금 미반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전세 보증금 미반환 등 전세사기는 신혼부부 등 사회 초년생과 서민들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만큼, 정부는 사회안전망 구축차원에서 근본적인 피해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임대차보호법, 전세반환 보험제도, 등록 민간임대사업 등 전반적인 제도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17년 우리 나라 특유의 임대차 시장을 학술적으로 분석한 ‘전세’(커뮤니케이션북스)라는 연구서를 출판한 전세 전문가이다. 작년에는 급증하는 전세 사기극을 분석한 ‘고위험 전세와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의 상관 관계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빌라왕' 등 전세 사기 피해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발생한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737건으로, 서울 전 지역 사고의 41%를 차지했다. 사진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빌라 밀집 지역. /뉴스1

김 교수는 빈발하는 전세 사기에 대해 “임차인이 세금 체납여부, 사기 전력, 다주택 여부 등 임대인의 정보를 알 수 없는 정보의 비대칭성에다 공인중개사의 모호한 책임 범위, 대항력 효과와 표준 계약서의 미비 등 법과 제도의 헛점, 전월세 정보의 부정확성 및 세입자에 대한 부동산 교육 부족 등으로 전세사기극이 빈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사고가 터지면 뒤쫓아 다니면서 사고 수습을 하는 현재의 정부 대응으로는 피해를 예방할 수 없다”면서 “다주택자 정보를 갖고 있는 국세청 등이 참여하는 범정부적인 대책반을 만들어 정확한 실태파악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빌라왕 사건 등 전세 사기가 빈발하고 있다.

“신축빌라, 오피스텔 등 저가 주택은 가격이 잘 오르지 않아 매매 수요가 거의 없다. 건축업체가 빌라를 지어도 팔기가 쉽지 않다. 빌라 신축 건축업자, 컨설팅 업자, 중개업자, 바지사장이 사회 경험이 부족한 20~30대를 상대로 일종의 ‘사기 작전’을 펼쳤다. 가령, 건축업체로부터 2억원에 넘겨 받은 빌라를 컨설팅업체와 중개사가 2억5000만원에 세입자에게 전세를 놓고 5000만원을 수수료로 나눠 챙기는 식이다. 세입자들은 건축업체를 믿고 계약을 맺지만 계약을 맺자마자 변제 능력이 없는 ‘바지 사장’에게 명의가 넘어간다.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으로 건축업체는 빌라를 팔고 컨설팅업체와 중개업자는 수수료를 챙긴다. 바지 사장도 공짜로 집이 생기는 마술이 벌어진다. 계약기간이 끝나 세입자가 전세반환을 요구하면 집주인은 바뀌어 있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 연락이 돼도 바지사장은 돈이 없으니 새로운 임차인을 구해오라고 요구하거나 집의 소유권을 이전해가라고 배짱을 부린다. 어차피 돌려줄 돈도 없고 매매가도 전세금보다 낮아 소유권이 넘어간다 해도 집주인은 손해볼 일이 없다.”

‘전세 전문가’ 김진유 경기대 교수는 "임대차 제도미비로 청년층의 꿈과 희망을 파괴하는 악성범죄인 전세 사기극이 빈발하고 있다"면서 "임대차 3법 도입때 관련 법을 일부 보완만 했어도 사기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자본 갭투자,플피 투자 방치한 정부

-재테크의 귀재, 다주택자로 알려진 이른바 ‘빌라왕’, ‘빌라의 신’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부동산업계에는 자기 자본이 없이 전세가격으로 집을 사는 것을 무자본 갭투자(무갭투자)라고 한다. 전세가가 집값보다 높아 보증금으로 주택가격을 지불하고도 2000만~3000만원이 남는 플피(플러스 프리미엄) 투자라는 것도 있다. 2015년 전후로 알려졌으며 2020년 전후 매매가와 전세가격이 폭등하면서 젊은층에서 재테크 차원에서 유행했다. 투자 동호회를 결성해서 버스를 대절해서 무갭투자, 플피투자를 했다.

무갭, 플피 투자가 사기극으로 변질된 것이 ‘빌라의 왕’, ‘빌라의 신’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컨설팅업체의 조직원으로 가담한 바지사장도 있고 소액의 수수료만 받고 명의만 빌려주는 신용불량자, 노숙자도 있다. 일확천금의 꿈을 갖고 적극적으로 무갭, 플피 투자로 주택수를 늘린 사람도 있다. 집값과 전세가격이 계속 올랐다면 사기극이 한참 지나서 실체가 드러났을 것이다. 보증금은 나중에 돌려줘야 할 빚인데, 빚을 갚을 의도도 능력도 없었다면 명백한 사기극이다. 사회초년생의 인생을 망치는 악의적 범죄이다”

- 종부세 체납으로 임대주택이 경매로 넘어간 사례도 있다.

“수도권에서 1000채 넘는 빌라와 오피스텔을 임대해 ‘빌라왕’으로 불린 40대 임대업자 김모씨가 사망하면서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발생했다. 김씨는 종부세 등 세금 62억원을 체납했다. 종부세는 임대차 계약보다 뒤늦게 체납이 발생해도 무조건 선순위 권리를 갖는다. 이때문에 경매에 넘겨져도 낙찰이 쉽지 않다. 다주택자 종부세 폭탄 정책이 빌라왕들의 세금체납으로 이어지면서 미반환 사태를 조기 점화시킨 측면도 있다. 다행히 정부가 4월이후 경매로 넘겨지는 주택에 대해 세금보다 세입자를 선순위로 보장해주기로 했다.”

-세입자들이 전세 시세만 잘 확인해도 사고를 피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격이 잘 오르지 않는 빌라 등 저가 주택은 전세가가 매매가에 근접한다. 정부 통계에따르면 최근 3개월 거래된 빌라 다세대주택의 전세가율은 수도권이 82.6% 전국이 82%이다. 천안 동남구( 123.5%), 포항 북구(102.4%), 천안 서북구(100.8%)는 100%가 넘는다. 수도권에서도 서울 강동구(96.7%), 고양 일산 서구(96.4%), 인천 상록구(94.5%) 등은 90%가 넘어 언제든지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신축빌라는 시세 자체를 알 수가 없다. 중개업자들이 시세라고 하면 믿지 않을 수가 없다. 주택시장에 거대한 ‘빌라 사기 생태계’가 만들어졌고 사기 그룹들이 그 세력을 넓혀왔다. 언론을 통해 몇 년전부터 이런 전세사기극이 보도됐는데도 정부는 강남 등 중산층 아파트 가격 잡는데만 골몰, 사기 생태계를 사실상 방치했다.”

자료=김진유 교수

◇구멍난 임대차 보호법 방치한 정부의 책임

-전세는 리스크가 있는 제도인가?

“전세는 가격 상승을 전제로 성립되는 독특한 제도이다.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는 시골의 경우, 대부분 월세이다. 집주인이 매매가 상승을 전제로 일종의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가 전세제도이다. 이사를 갈 때 보증금을 그대로 돌려받는다는 점에서 세입자에게도 유리한 제도이다.

집값과 전세가격이 오를 때는 미반환 리스크가 거의 없지만, 가격이 하락하는 순간 리스크가 드러난다. 5억원하던 전세가 3억원으로 내릴 경우, 집주인이 2억원을 구해서 세입자에게 줘야 한다. 여유자금이 없어 반환하지 못할 경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집값이 전세가격 이상이고 선순위 근저당이 없으면 경매에 넘겨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전세가율이 높으면 그것도 쉽지 않다.”

-법과 제도에 문제가 있었나?

“임대차 보호법에는 세입자에게 불리한 집주인의 세금체납, 매매 등의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 더군다나 집주인의 자금 사정을 세입자가 알 도리가 없다. 전세가격이 급락하면 전세 제도는 사기와 같은 범죄가 아니더라도 상당한 리스크가 발생한다.

임대차 보호법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표준 계약서만 바꿔도 상당수 사기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세금완납 확인 및 증명서 첨부를 의무화하고 신탁여부 확인 및 신탁사동의서 첨부를 의무화했어야 했다. 임대차 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신탁사 동의 없는 전세계약으로 피해를 본 세입자들도 많다.

전세사기와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중개인 역할 및 책임 강화도 필요하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관리도 필수적이다. 가령 10채 이상의 주택소유자의 임대사업자 등록을 의무화하고 일정 수 이상 주택매입자가 추가 매입 시 신고 또는 허가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비상식적 수준의 주택을 소유한 다주택자에대해서는 지역 구분없이 자금조달 계획 제출을 의무화해야 한다.”

-빌라 사기극이 빈발하는 지역은?

“주택도시 보증공사(HUG)의 2018년~2022년6월까지의 서울시 보증금 반환 대위변제 2862건, 변제액 6473억원을 분석한 결과, 건당 평균 대위변제금액이 2억2626만원이었다. 대위변제는 HUG가 집주인을 대신해서 보증보험에서 먼저 전세 보증금을 지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세보증금 대위변제 사고를 분석한 결과 연립 다세대 주택이 전체사고의 85%를 차지했다. 변제금액(전세금)은 1억~3억원이 88.8%를 차지했다 지역적으로는 강서구에 전체의 43.9%가 몰려 있다. 다음이 양천구(13.1%), 금천구(6.8%) , 구로구(6.8%) 등이다. 서울 강서지역에서 70%가 발생했다. 빌라 다세대 주택외에 나홀로 아파트, 주거용 오피스텔에서 전세금 미반환 사고가 자주 터지고 있다.”

-왜 빌라 사기극이 서울 강서구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했는가?

“강서구는 서울에서 가격에 비해 비교적 교통이 편리했고 값싼 신축 빌라가 대거 공급됐다. 다른 지역에서는 신축 빌라들이 많이 공급됐지만, 재개발 재건축 붐이 불면서 매매가격이 많이 올랐다.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오르면 전세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가 크게 줄어든다.

그러나 강서구는 신축 빌라가 너무 많고 김포 공항과 인접해 고층아파트를 지을 수 없어 재개발 재건축 사업성이 없다. 그러니 집값이 오르지 않았다. 2020년 전후로 서울지역의 상당수 지역에서 재개발 기대감으로 빌라가격과 전세가격이 올랐지만, 강서구는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서 전세사기극의 희생양이 됐다.

지금은 미반환 사고가 없어도 부동산 경기침체로 다른 지역의 빌라 매매가와 전세가가 내려가면 강서구와 같은 현상이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 갭투자가 몰리면서 매매가가 급등했던 지방의 아파트도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시에 급락하고 있어 보증금 미반환 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피해 규모는 얼마나 되나?

“주택도시 보증공사의 전세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했지만 집주인이 반환금을 제때 반환하지 않은 사고금액이 2018년 792억원, 2019년 3442억원, 2020년 4682억원, 2021년 5790억원, 2022년 1조원으로 급증하고 있다. 전세보험에 가입한 경우는 피해 금액이 통계에 잡히지만, 전세보증 보험조차 가입하지 않은 보증급 미반환 피해는 집계도 되지 않는다. 현재 전세보증금 미반환 피해자의 60% 정도는 전세보증 보험에 들지 않았다. 전세보증 보험에 가입한 경우, 집주인의 사망 등으로 보증금 반환이 지연될 수 있어도 보증금을 돌려받는다. 반면 보증보험에 들지 않으면,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서 헐값에 매각돼 상당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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