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c vs BBQ 소비자 없는 닭싸움의 실체
패소와 승소 엇갈리는 법정다툼
얽힌 소송 많은 만큼 촌극도 숱해
같은날 다른 재판부 결과 나오거나
같은 결과 두고 “서로 이겼다” 주장
평균 훌쩍 넘는 본사 영업이익률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 인상 주역
두 회사 누굴 위해 닭싸움 벌이나
# '계속 돌진할 것인가, 핸들을 돌릴 것인가.' 두 명의 운전자가 마주 보고 서로를 향해 돌진한다. 상대방이 돌진할 것에 겁을 먹고 핸들을 돌리면 게임에서 진다. 겁쟁이 또는 비겁자가 된다. 치킨게임이다.
# bhc와 제너시스BBQ. 치킨게임을 벌이는 양쪽 다 겁쟁이가 될 생각은 없는 듯하다. 10년 넘게 20여건의 소송을 두고 불복을 거듭하는 끝장싸움을 벌이고 있다. 두 회사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은 낮다. 서로 돌진하는 두 치킨업체가 또다시 충돌할 거란 얘기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실익을 챙기긴 어렵다. 양쪽 다 타격이 불가피하다. 여러 이유로 제기한 소송은 제각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정 기업이 과반의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몇개의 소송에선 진다.
# 문제는 이렇게 지루한 공방이 이들의 진짜 고객인 치킨 소비자와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는 점이다. 경영 파트너인 가맹점주에게도 마찬가지다. bhc와 BBQ는 과연 누굴 위해 싸우고 있는 걸까. 더스쿠프가 두 치킨업체의 하릴없는 닭싸움을 관전했다.
'치킨 전쟁'. 한국 치킨 프랜차이즈 산업의 대표 기업인 bhc와 제너시스BBQ(BBQ)의 소송전을 둘러싼 표현이다. 두 회사는 10년째 20건이 넘는 소송을 주고받았다. 얽힌 소송이 워낙 많다 보니 기업간 소송에선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지난 1월 13일엔 서로 다른 소송 결과가 같은 날 나오면서 기묘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BBQ가 박현종 bhc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71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선 BBQ가 이겼다. 재판부인 서울동부지법은 박 회장을 향해 "BBQ에 27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21년 1월 1심 판결 때는 BBQ의 청구가 기각됐지만, 2심에선 뒤집어졌다.
반면, BBQ가 bhc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침해금지청구소송에선 bhc의 손을 들어줬다. BBQ는 자사 제품인 'BBQ 황금올리브치킨'이 시장에 있는데, bhc가 '블랙올리브치킨'을 쓰는 건 상표권 침해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BBQ의 주장을 기각했다.
여기까진 약과다. 같은 판결문을 읽고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을 때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2심 결과가 나온 '물류용역계약 해지 손배소' 판결을 두고 양측은 "서로 이겼다"며 손뼉을 쳤다. 상품공급계약이 해지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를 다투는 이 재판에선 bhc가 승소했다. 다만, 재판부는 BBQ의 책임을 제한했다. 계약 해지에 bhc 측 책임도 일부 있다는 취지였다. 그러자 BBQ는 "손해배상액이 줄었다"며 사실상 승소라고 강조했다.
■ bhc vs BBQ 갈등의 역사 = 두 회사가 벌이는 치킨 전쟁의 역사는 길다. bhc는 애초 BBQ의 자회사였다. BBQ는 2004년부터 10년간 bhc를 운영했는데, 2013년 BBQ가 bhc를 미국계 사모펀드인 CVCI(현 더로하틴그룹)에 팔았다. 그런데 2014년 9월 bhc의 새 주인이었던 더로하틴그룹이 "BBQ가 bhc의 매장 수를 부풀려 팔았다"면서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법원에 제소했다.
ICC는 BBQ를 향해 'bhc에 96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이때부터 양측의 '난타전'이 시작됐다. BBQ는 서울 중앙지방법원에 ICC를 상대로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bhc는 BBQ에 손해배상소송을 걸었다. BBQ가 bhc를 매각하면서 "bhc가 BBQ 계열사의 물류 용역과 식재료 공급을 10년간 공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약을 맺었는데, BBQ가 "경쟁사에 정보가 새나갈 수 있다"면서 이를 파기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양측은 영업기밀 침해, 정보통신법 위반 등 별별 이유를 들어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다툼은 최근까지도 이어졌다. bhc는 2021년 4월 "BBQ가 오너 개인회사인 지엔에스하이넷에 회삿돈 83억원을 빌려줘 손해를 끼쳤다"며 윤홍근 BBQ 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배임)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처럼 bhc와 BBQ 사이엔 여러 건의 소가 얽혀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 소송전은 '치킨 전쟁'과 무관하다. 소송을 벌이는 회사가 치킨 프랜차이즈를 전개하는 회사일 뿐, 본업인 치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소송이어서다. 각 회사의 치킨 제품의 경쟁력과는 더더욱 관계가 없다.
"손해배상소송이나 영업기밀 침해소송은 경영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양측의 해명 역시 설득력이 낮다. bhc가 BBQ 윤홍근 회장 측에 제기한 배임소송이나 명예훼손소송은 각 회사의 경영 이슈와 연결하기 어렵다.
10년 전 결별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았을 뿐이다. 두 회사가 서로의 소 제기를 두고 '경쟁사 죽이기' '악의적인 소송' '무리하고 허황된 근거'란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소송전의 이상한 수혜자 = 흥미로운 건 어느 한쪽이 이긴다고 해도 승자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여러 건의 소송 결과는 특정 기업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각각의 소송에서 지는 쪽은 타격을 입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끊임없는 소송전의 진짜 승자는 누구일까. 답은 간단하다. 다름 아닌 두 회사를 대리하는 대형 로펌이다. 업계는 두 회사가 현재까지 쏟아부은 소송비용만도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양측 모두 항소를 반복한 만큼, 로펌에 지출한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소송비용이 국민들이 '대표 서민음식' 치킨을 먹기 위해 열어젖힌 지갑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두 회사가 치고받는 공방 속에 소비자는 없다. 언급했듯 치킨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책임이나 고민을 담은 경쟁이 아니라서다.
■ 높은 영업이익률의 비밀 = bhc와 BBQ는 치킨업계 매출 기준 '빅3'로 분류된다. 업계에서 가장 많은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어 전국 어디서나 두 회사 브랜드의 치킨을 맛볼 수 있다. 최근 몇년간은 코로나19 특수로 실적 고공행진을 이어왔다.
bhc는 2021년 매출 6164억원, 영업이익 168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9.0%, 26.5% 증가한 수치다. 얼마 전엔 "2022년 매출이 1조원을 돌파했다"는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BBQ 역시 2021년 매출 3662억원, 영업이익 653억원을 기록했는데, 전년보다 좋은 성과였다. 실적만이 아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두 회사는 가맹점도 늘어났다. bhc의 가맹점은 2019년 1518개에서 2021년 1770개로 16.6% 증가했다. BBQ 가맹점 역시 같은 기간 24.8%(2019년 1604개→2021년 2002개) 늘었다.
문제는 두 회사가 팬데믹 국면에서 이뤄낸 성장의 과실을 소비자나 사업파트너(가맹점)와 나눴는지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여러 재판부가 두 회사 주장의 법리를 검토하던 지난해 6월, 대형마트 홈플러스는 6990원짜리 '당당치킨'을 출시해 치킨 가격 논란에 불을 붙였다.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의 30% 수준이어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당당치킨을 사기 위해 소비자들이 장사진을 펼치는 일이 전국 곳곳의 홈플러스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당당치킨'이 열풍을 일으킨 배경엔 천정부지로 치솟은 치킨값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2021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치킨값 2만원 시대'를 열었다. 2021년 11월 업계 1위 교촌치킨이 제품 가격을 500~2000원씩 올리며 가격 인상 러시를 시작했고, 12월엔 bhc가 제품값을 올렸다. 이듬해 5월엔 BBQ가 전 제품 가격을 2000원 인상했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식재룟값 상승은 물론 인건비 인상, 배달앱 수수료, 배달비 등으로 가맹점주가 어려움을 겪는 터라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수익성을 따져보면 이 주장은 금세 설득력을 잃는다.
기업의 수익성을 판단하는 잣대인 영업이익률을 보자. 2021년 말 기준 bhc 본사의 영업이익률(개별 기준)은 32.2%였다. BBQ의 영업이익률 역시 16.8%로 낮지 않았다.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외식업종 전체 영업이익률 평균은 5.3%를 기록했다. 주요 식품 상장사의 영업이익률 역시 10%를 넘지 못하는 걸 고려하면 BBQ와 bhc의 수익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비결은 물류 마진에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는 가맹점에 공급하는 원ㆍ부자재에 가격을 더 붙여 이익을 남긴다. 이 구조는 본사가 이익을 많이 내면 가맹점주 이익은 줄어든다. 이 때문에 두 회사는 가맹점주를 쥐어짜 높은 영업이익률을 올리는 게 아니냐는 따가운 지적을 받고 있다.
김은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수익구조가 비슷한 프랜차이즈 특성상 10 % 이상 영업이익률을 올리는 건 비상식적"이라면서 "매출과 견줘 영업이익이 지나치게 크다는 건 가맹점주에게 공급하는 필수품목에서 과도한 이윤을 취하기 때문이라는 합리적 추정이 가능하다"고 꼬집었다.
■ 소비자 없는 소송전 = 더 큰 문제는 여러 건의 소송을 이어갈 만큼 두 회사 앞에 놓인 경영 상황이 밝지는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R(Recessionㆍ경기침체)의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 높은 물가 때문에 내수시장이 위축될 공산도 크다. 여전히 100을 밑돌고 있는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이를 잘 보여준다.[※참고: 지난해 12월 국내 소비자심리지수는 89.9를 기록했다. 지수가 100보다 밑이면 경기를 비관하는 소비자가 낙관하는 소비자보다 많다는 뜻이다.]
외식업계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쉽게 꺾일 것 같지도 않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22년 3분기 외식산업 식재료 원가지수는 145.89로 전 분기보다 0.7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1분기부터 7분기 연속 상승세인 데다 매 분기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는 두 회사가 치킨값을 인상할 명분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관계자는 "닭고기 가격이 큰폭으로 떨어졌을 때도 치킨 가격을 공고히 유지해온 bhc나 BBQ 등 치킨업체들이 원자잿값 상승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올리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라면서 "본사는 가맹점주의 요구로 인상이 불가피하다지만, 정작 가맹점에 공급하는 재룟값도 올리는 걸 보면 오로지 본사의 이익 증가를 위한 제품 가격 인상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bhc와 BBQ는 소송전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도대체 그들은 '누굴 위해 닭싸움'을 벌이고 있는 걸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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