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써머리] 전세난민에겐 반가운 '준공 후 미분양' 전세
부동산 시장을 취재하는 김서온 기자가 현장에서 부닥친 생생한 내용을 요약(summary)해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경기침체는 모든 주체들에게 어려운 환경이 됩니다. 수요자든 공급자든 마찬가지지요. 현장에서 만나는 건설사 관계자도, 집을 찾는 세입자도, 중간에서 거래를 주선하는 중개업자도 모두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런 와중에 서울 강남 한복판 중개업소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입주시기를 맞은 새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니 건설사가 보유분을 임대로 돌려 세입자를 구하고 있어요. 이런 물량을 선별해 고려해보는 것도 좋은 대안 중 하나가 되리라 봅니다."
부동산 분야를 취재하기 시작한지 몇년 되지 않은 저로서는 솔깃 했습니다. 건설회사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을 매각하려 고집하지 않고, 세입자를 들이는 방식으로 매각 시기를 늦출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건설회사가 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금융권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대여받는데, 준공 후 미분양을 떠안은 채 매각만을 고집하다가는 막대한 금융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전세물량으로 돌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현장을 더 둘러보니, 그런 사례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강남구 도곡동 일원에서 분양을 마친 한 소규모 단지는 21세대 중 7세대만이 분양됐는데, 물량 소진에 어려움을 겪자 최근 전세 세입자를 채워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체 세대의 분양가는 약 310억원인데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세대의 분양가가 208억원에 달한다고 하네요.
강남구 도곡동 J부동산 관계자는 "최근 새 아파트 분양 성적이 저조하고, 물량 소진이 더뎌지자 분양을 끝까지 밀기보다 직접 전세 세입자를 구하려는 시행사들이 늘고 있다"며 "오히려 팔리기만을 하세월 기다리는 것보다 입지도 좋고 신축이라는 장점을 내세워 전세 세입자를 우선 받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고급 주거상품이 다수 분양된 곳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일원에는 수십억원을 웃도는 고급 주택들이 분양 중이거나, 이미 분양을 마쳤는데 일부 단지는 이미 입주일이 지났음에도 주인을 찾지 못해 밤에도 8~90%에 달하는 세대가 불을 밝히지 못해 아직 공사 중인 단지로 착각할 정도라고 합니다.
서초동 B중개업소 대표는 "이 블록 내에만 10곳이 넘는 사업장에서 호화 주택들이 들어서는 중"이라며 "오피스텔, 생활형 숙박시설, 도시형 생활주택 등 다양한데, 워낙 지난해부터 시장이 좋지 않아 완판된 곳을 찾기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이미 입주일이 지난 한 단지는 분양 사무실에서 인근 부동산과 협업해 임대를 추진하거나, 우선 1~6개월짜리 단기 임대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하네요.
준공 후 미분양이 될 정도라면, 사실 분양가가 너무 높거나 위치와 품질, 브랜드가 크게 좋지 않거나 하는 요인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조기에 분양이 되지 않았겠지요. 그렇지만 임대 물량으로 전환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축 아파트를 매입하지 않으면 취득세와 보유세 등의 세부담을 줄이면서 새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편의를 가질 수 있을테니까요. 이제 공급자로서는 임대를 놓기로 결정을 했으니, 선택은 수요자의 몫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수요자로서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요. 업계 전문가들은 입지와 주변시세를 잘 파악하고 계약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실질적으로 공급한 시행사 또는 건설사와 임대차 계약을 맺는 것인 맞는지, 저당권 설정과 대출 현황 등도 세심하게 파약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서초구 신원동 L중개업소 대표는 "5~6년 전에도 강남권 브랜드 대단지에서 미분양이 많이 나왔는데, 전세로 들어온 세입자가 저점에 물량 매수했는데, 현재 분양 당시보다 3~4배 올랐다"고 말했다. 꿩 먹고 알 먹을 수 있는 재테크가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도 "통상 회사보유분은 저렴한 전세금에 새 아파트로 들어갈 기회가 될 수 있으나, 수요자로서는 성급하게 전세에서 매매로 돌아설 필요는 없다. 경기 흐름과 주변 입지 등을 직접 꼼꼼히 살펴 결정해야 한다"며 "계약을 맺게 될 건설사의 재무가 탄탄한지, 향후 전세금을 돌려받을 때 문제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세입자 입장에선 개인 대 법인 간의 임대차 계약이기 때문에 최근 벌어진 깡통전세 사례를 상기한다면 오히려 안전한 임대차 거래라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미분양 물량이 지나치게 많아 회사가 세입자를 채워 전세금이라도 확보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이거나, 미분양 무덤이라고 불리는 지역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합니다.
한편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총 5만8천27가구에 달합니다. 전월(4만7천217가구) 대비 22.9%(1만810가구) 급증했습니다. 미분양이 한 달 새 1만 가구 이상 늘어난 것은 지난 2015년 12월 이후 6년 11개월 만입니다.
이처럼 미분양 물량이 계속 쌓이면서 경고등이 켜지자 공급 주체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입니다. 회사 보유분을 전세나 단기 임대로 돌려 자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고, 한켠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미분양 주택 매입에 대한 기대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공부문에서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물량은 제한적인 수량에 머물 것으로 보이고, 무엇보다 가격이 분양가보다 훨씬 저렴할 수밖에 없어 그리 큰 매력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전문가 분들의 얘기도 그렇습니다. 황유상 경제만랩 연구원은 "최근 LH가 주변시세보다 비싼 미분양 주택을 15% 할인된 가격에 매입했는데, 야당에선 추후 미분양주택 매입단가를 분양가의 최대 50%까지 할인해야 건설사 특혜 논란이 종식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면서 "따라서 건설사로서는 적자판매가 될 수 있고, 유동성 위기에 닥친 경우가 아니면 이런 흐름에 동참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물론 무주택 저소득층이라면 공공에서 매입한 후 내놓는 물량을 눈여겨보는 것도 선택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네이버 채널에서 '아이뉴스24'를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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