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운영 산부인과도 “경영난에 분만 포기”…의사도 “아이 가지지 마”[저출산 0.8의 경고]

2023. 1. 2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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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직격탄 입은 분만실
산부인과 의료공백 우려도 ↑
우리나라 합계 출생률은 2018년 0.98명으로 0명대로 떨어진 이후 지난해 0.77명까지 줄었다. 분만실 병상 수 역시 지난해 상반기 1973개로 줄었고, 같은 기간 신생아실은 7338개에서 6743개로 쪼그라들었다. 사진은 2023년 1월 1일 0시 0분 경기도 고양시 일산차병원에서 태어난 '새해둥이' 여아 짱순이(태명)와 남아 짱짱이(태명). [연합]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분만 수 감소로 경영이 악화돼 더 이상 분만을 할 수 없습니다.”

경기도 성남 H 산부인과는 오는 2월부터 분만을 종료하기로 결정하고 임신부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냈다. 함께 운영 중인 소아청소년과도 진료를 중단하기로 했다. 17년 동안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였던 산부인과가 사업을 축소하게 된 건 극심한 저출생 때문이다.

의사도 “아이 가지지 마”

H 산부인과 관계자는 “수도권 신도시라 해도 저출생을 피할 수 없다. 2015년도에 절정으로 환자가 많았다가 계속 매년 줄어들어 결국 분만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19일 오후 1시께 기자가 찾은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진료실 중 출산을 담당하는 산(産)과 대기실은 한산했다. 1시간 동안 진료받으러 온 손님은 한 명뿐. 예약이 치열한 대형 병원에서조차 저출생으로 환자가 없는 상황이다. 부인과 대기실이 설 연휴를 앞두고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로 붐비는 것과 대조적이다. 김영주 교수는 “저출산을 실감하고 있다”며 ‘일단 낳기만 하면 국가가 다 해결해준다’는 인식이 들 정도로 파격적인 정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저출생 여파로 인한 산부인과·소아과는 매년 전례 없는 비상상황을 겪고 있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 지역에서도 진료를 축소하거나 문을 닫는 병원이 늘고 있다. 산부인과 중 아이 출산 과정을 담당하는 분만과, 소아·청소년과 수요가 줄면서 의사 수도 많이 감소했다. 의사들은 의사 수 감소로 의료 공백이 현실화할 경우 저출생 현상이 극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산부인과 의사도 “아이 가지지 마라”, 왜

“아이 가지면 안 된다. 아이를 가져도 낳을 곳이 없으니까.”

산부인과 현실에 대해 말해달라는 질문에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의 “산부인과 의사 수가 크게 줄어 임신부도 진료받기 어려워졌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그는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자들은 5년 전부터 많이 줄었다. 특히 분만을 전공하는 의사가 거의 없다”며 “전체 산부인과 의사면허가 7000여개라면 이 가운데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4000여명, 이 중 분만 현장에 있는 의사는 400여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산부인과 분만실과 신생아실 병상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2124개였던 분만실 병상 수는 지난해 상반기 1973개로 줄었고, 같은 기간 신생아실은 7338개에서 6743개로 쪼그라들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가 없으니 소아청소년과도 비인기 전공이 된 지 오래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2019년까지는 정원을 채웠으나 2020년 78.5%로 처음으로 미달이 났고, 2021년 37.3%로 절반도 못 채운 수준으로 줄어든 뒤, 지난해 27.5%로 처음으로 30%가 깨졌다. 소아청소년과가 급격히 감소한 시기는 우리나라 합계출생률이 0명대로 주저앉은 시기와 유사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합계 출생률은 2018년 0.98명으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감소해 지난해 0.77명을 기록했다.

최영준 고대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과 수가 적다보니 상급병원에 위험 환자가 몰린다”며 “그마저도 진료 전 대기 기간이 길어 병원이 왔는데 너무 늦은 경우가 많다. 예방하지 못해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평균 50살’ 의사도, 산모도 고령화…5년 내 재앙 와
서울 시내 한 산부인과의 신생아실. [연합]

문제는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의 침체 현상이 저출생을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의료 환경이 열악해질수록 아이를 가졌거나 가질 예정인 난임·노산 산모를 돌봐줄 의사가 없어서다.

대한모체태아의학회 회장인 김영주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만 35세 이상 산모가 최근 33%까지 올랐다며 전문의가 오히려 전보다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결혼 연령이 올라가면서 임신부 연령도 올라갔고, 그로 인해 조산·난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그런데 젊은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고 평균 연령이 50세인 전문의밖에 없다. 아픈 산모가 밤늦게 병원을 찾아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산부인과 전문의가 은퇴하면 의료 공백 심해질 것”이라며 “태어난 아이도, 곧 태어날 아이도 돌봐주지 못하고 있는데…어떻게 저출생을 극복하느냐”고 반문했다.

대한모체태아의학회 자료에 따르면 만 35세 이상 산모 비율은 2010년 17%에서 2020년 33.8%로 10년 동안 16% 증가했다. 산부인과 중 산과 교수 연령은 같은 기간 45.4세에서 50.3세로 5살 증가했다. 산모와 산부인과 교수 모두 빠르게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저출생 → 의료공백’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꿔야”
19일 오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서 김영주 산부인과 교수(대한모체태아의학회 회장)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빛나 기자

의사들은 ‘저출생→의료 공백→저출생 가속화’ 악순환을 막기 위해 의료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영준 교수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다 동원돼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냐. 아이가 마음껏 아플 수도 있고, 외부 환경에 안전하게 노출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병원에서 최상의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는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이 아니다 보니 아이 낳고 싶은 사람이 더욱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주 교수는 “프랑스를 벤치마킹했으면 좋겠다”며 “우리나라처럼 출산율이 0명대였다가 1명대로 올라간 프랑스의 경우 공공의료 강화가 비결이었다. 임신하는 순간부터 낳고, 기르는 모든 의료 과정에 정부 지원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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