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민의 문화 뒤집기] 왜 연예인들은'디스패치'를 통해 사건을 알리고 있을까

성상민 문화평론가 2023. 1. 2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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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한국 문화에 '미담'이 아닌 '일상적인 변화'를
기획사에 부당한 일 당한 이승기, 츄와 관련된 '미담'?
문체부태도, 연예인들왜 디스패치로 문제 해결하는지 보여줘

[미디어오늘 성상민 문화평론가]

흔히들 설날을 비롯한 명절에는 최대한 가족이나 친척, 아니면 이웃끼리 덕담을 나누라는 말이 있다. 고단한 생활 속에서 설날 같은 명절만이라도 우울하거나 힘든 이야기를 말하는 대신, 화목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자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그러기는 참 쉽지 않다. 명절 때마다 친척끼리 모인 자리에서 사소한 말다툼이 크게 번지는 일이 적지 않은 것처럼, 365일 중에 단 하루라도 좋은 것만 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한국 문화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여러 작품들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다시 어떤 작품은 해외에서 상까지 받아오는 일이 계속 되고는 있지만 나날이 지속되는 문화 생태계의 축소는 지금의 풍요가 얼마나 지속될지를 쉽게 짐작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많은 이들의 지속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노동자의 권리가 다른 나라처럼 보장되기에는 아직 먼 길이 남아 있다.

기획사에 부당한 일 당한 이승기, 츄와 관련된 '미담'?

그런 상황에서 작년 말, 그리고 올해 초에는 간만에 한국 문화계에 놀라운 미담이 하나 전해졌다. 지난 2004년, 고등학교 시절에 '내 여자라니까'로 데뷔해 곧바로 인기 스타가 되어 이후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 드라마 '찬란한 유산'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거쳐 지금도 꾸준히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스타 이승기에 대한 일이다. 이승기는 2004년 데뷔 이래 2022년까지 꾸준히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유지했었다. 그러던 중 자년 11월 21일, 연예 매체 '디스패치'가 갑작스럽게 이승기가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음원에 대한 정산을 받지 못했다고 폭로하며 갑작스럽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 지난해 디스패치가 보도한 후크엔터테인먼트의 이승기 음원 정산료 미지급 사건. 사진 출처: 디스패치 홈페이지.

이미 이승기는 11월 18일 소속사에 음원 정산을 정당하게 집행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 증명을 보낸 상태였다. 한동안은 왜 내용 증명을 요구하는지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디스패치의 보도를 통해 그 상세한 정황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후 몇 차례 이승기 측과 소속사의 진실공방이 있었지만, 디스패치를 공개된 여러 관련 자료나 정황으로 볼 때 소속사가 이승기에게 정당한 음원 수익 정산을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더불어 후크엔터테인먼트는 권진영 대표의 비상식적인 행동과 더불어 다른 의혹이 여전히 함께 제기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승기는 12월1일 후크엔터테인먼트에 전속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이후 12월16일 후크엔터테인먼트가 미지급 정산금 48억을 지급하였다. 그러나 이승기 측은 이 금액이 정산 추정액에 한참 모자람을 밝히며 법적 대응을 계속 이어나갈 것임을 밝혔다. 동시에 소송 비용을 제외한 모든 음원 정산금은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소속사와의 부당 계약, 수익의 불합리한 정산 문제는 이전부터 계속 발생했던 문제지만 이전의 사건들은 문제의 근원이 소상히 밝혀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언론도 제대로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은 물론, 사측의 입장이 연예인 본인의 입장을 가리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기의 문제가 동종 사건에 비해서 제법 빠른 속도로 처리가 진행되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이승기가 평소 이렇다 할 물의를 저지르지 않은 선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승기의 매니저가 자신이 기획사에서 근무하며 모은 증거 자료를 '디스패치'에 넘긴 것이 컸다. 직접적으로 소속사의 문제 행위와 책임 소재가 드러나는 증거 자료였기에, 쉽게 부정하거나 질질 끌 여지조차 없었다.

비슷한 시기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 소속의 아이돌 '이달의 소녀'의 멤버였던 '츄'가 소속사에서 부당하게 퇴출당한 뒤, 좌절하지 않고 1인 기획사를 세우며 활동을 재개하는 모습과 겹쳐지며 두 사례는 소속사에 굴하지 않고 맞서는 하나의 모습처럼 이야기가 되었다.

왜 연예인들은 '디스패치'를 통해 사건을 알리고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이 미담은 곰곰이 따져볼 여지가 있다. 왜 이들은 '디스패치'와 같은 연예 매체, 그것도 연예인에 대한 무분별한 파파라치 행위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도 적지 않은 언론을 통해서 자신의 사건을 알린 것일까. 물론 이는 한국 사회와 대중에 있어 디스패치와 같은 언론이 지니는 파급력이 큰 것을 감안한 행동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미 이전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공정상생센터'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예술인 신문고' 같은 공적 차원의 신고 창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길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 논현동에 위치한 디스패치 사무실. ⓒ정철운 기자

물론 이 역시 처리 과정과 절차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공식적인 처리 방안보다는, 가장 파급력이 크고 소속사와 여론을 한 번에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연예 매체를 택한 것일 수도 있다. 덕분에 결과적으로 이승기와 츄 모두 비교적 처리하기 쉽지 않은 소속사와의 갈등 문제를 생각보다는 빠른 시간 안에 처리 과정을 밟아나가는 한편, 팬들의 지지 아래 1인 기획사를 설립해 지속적인 연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을 과연 모든 방송인이나 연예인이 사용할 수 있을까. 디스패치와 같은 연예 언론은 평소에는 연예인에 대한 무분별한 사생활 침해로 지탄을 받지만, 동시에 아무 연예인에 대해서나 마구 접근하지는 않는다. 대중들이 관심을 끄고 조금이라도 조회수를 올릴 수 있는 인지도를 지닌 연예인만을 다룬다. 그 이야기를 다시 돌려서 말하면, 이승기 등이 겪은 피해에 대한 디스패치의 대대적 보도는 이승기 같은 지지도를 지닌 연예인의 제보가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묻혔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것이 되기도 한다.

이승기나 츄를 비롯해 문화 노동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이들에게도 결코 자유롭지 않지만, 이렇다 할 보호와 안전망이 없는 이들에게는 더욱 피하기 쉽지 않다. 언론을 통해 여론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의 해결은 빠르게 문제를 환기하고 해결로 나아가는 것에 이끌 수 있어도, 일반적인 문제의 처리 과정의 개선에 큰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분명 이들이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모습은 '미담'이지만, 그 미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한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문체부 태도, 연예인들 왜 디스패치로 문제 해결하는지 보여줘

역설적으로 사건 발생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보이는 태도는 왜 이들이 공적인 문제 해결 루트가 아닌 다른 길을 택했는지를 너무나도 잘 드러낸다.

지난 1일,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대중문화예술산업 전반의 공정성 강화를 올해 핵심사업으로 추진할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이 회견은 새롭게 정책을 수립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이미 현재도 존재하는 예술인권리보장법 제 19조에 명시되어 있는 예술인과 계약에 있어 불공정 행위의 금지에 대한 부분을 인용하여, 해당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즉, 이미 법적으로는 해당 문제에 대해서 정부 차원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을 문체부가 인정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미 공공 기관 차원의 신고센터도 마련되어 있다. 어떤 점에서 이 회견은 현존하는 법과 기관이 문화예술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음을 문체부 장관 스스로 실토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흔히 스포츠에서 이런 비유를 하고는 한다. 수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달려들어 호수비를 보이는 상황보다는 겉으로 보기에는 설렁설렁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효율적으로 공격을 방어하는 것이 최고의 수비라는 말이다. '미담' 역시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쉽게 일어나기 어려운 '미담'이 도는 이면에는 대다수의 순간에는 그 미담처럼 작동하지 않는 현실이 있다. 미담을 훈훈하게 여기며 공유하는 이상으로, 미담이 언젠가는 '평범한 순간'이 될 수 있도록 전면적인 변화와 개혁을 만들어야하지 않을까. 여전히 무수한 한계와 과제가 산적한 2023년 한국 사회와 문화계가 이 '일상의 변화'를 구현할 수 있도록 조금씩 나아가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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