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효도급식, 올해도 잇겠다"...사회복지회 행복한동행
390인분 식사에 지역 봉사단 음악공연 재능기부도
"건강이 허락하는 데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
"새해 희망은 역시 올해도 계속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대구 동구 효목동 망우당공원은 매주 토요일 오전 8시면 분주해진다. 한쪽에 놓여 있는 가로 3m 세로 3m 크기의 컨테이너가 열리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게는 1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화구를 정비하고 상을 펴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효도급식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채소를 다듬는 날쌘 칼날과 고기를 자르는 둔탁한 도마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질 때쯤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자리를 잡는다. 국을 끓이면서 몇 차례나 간을 보는지, 식재료를 다듬는 모습이 어떤지 매의 눈으로 살핀다. 감시는 아니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볼거리인 것이다. 곧 따뜻한 밥 한 그릇으로 돌아올 식사를 기다리는 일종의 루틴이다.
16년 동안 눈비, 코로나도 이겨낸 급식
사회복지회 행복한동행은 지난 2007년부터 망우당공원에서 어르신을 대상으로 급식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햇수로만 16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폭풍이 몰아치고 벼락이 떨어져도 이들을 말릴 수는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될 때도 이들은 마스크 등으로 완전무장하고 망우당공원에서 밥을 지었다.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다. 조리부터 설거지, 전달까지 이들의 활동은 일사불란하다. 설거지면 설거지, 현장 정리면 정리 등 역할이 분명하기에 각자 맡은 임무를 철저히 수행한다.
16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야외에서 밥을 했다. 누구나 다 보이는 곳이기에 조리에 각별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맛도 중요하지만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마스크와 두건, 앞치마, 장갑 등 위생용품은 필수다. 값비싼 출장 뷔페 뺨치는 수준의 위생을 고집하고 있다.
소화기능이 약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아직 그 흔한 배탈 사고 한번 난 적이 없었다. 뒤처리도 흠잡을 데가 없다. 음식을 만들면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문제가 파생된다. 행복한동행은 한 대당 600만 원에 이르는 초음파 식기세척기를 이용해 오물 한 점 없이 설거지를 한다. 관할 관청에서 수차례 적발하려고 달려들었지만 모두 감탄사만 남기고 돌아갔다는 후문이다.
정기 급식 봉사, 대구서 유일
대구에는 무료급식을 하는 곳이 50여 곳에 이르지만 정기적인 배식은 행복한동행의 망우당공원이 유일하다. 회당 평균 300인 분에 이르는 식사를 준비하는 게 이들의 역할이자 사명이다. 단순히 밥만 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역 봉사단의 음악공연 등 재능기부도 열리는 장이다. 공연비를 주는 것도 아니지만 벌써부터 재능봉사를 하겠다는 단체의 일정은 빼곡하다.
효도급식의 고객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독신이거나, 자녀와 떨어져 살거나, 집이 없거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파악도 못 하고 있는 등 소외됐다는 게 가장 큰 공통점이다. 나이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 어떤 사람은 주머니에 숟가락을 지니고 다니기도 한다. 노숙인이 대개 그렇다.
단순히 급식이다 배식이다라고 해서 아무나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입장벽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수준 다른 봉사단체를 입증하고 있다. 흔히 나타나는 정치인 등은 마이크를 잡을 생각으로 와서는 안 되는 곳이고, 시쳇말로 방귀 좀 뀐다는 사람은 첫 번째로 배제된다. 이것이 바로 ‘롱런’할 수 있는 배경이다.
이시우(59) 행복한동행 대표는 "우리의 목적은 오로지 어르신들이 걱정 없이 편하게 식사 한 끼 하는 것"이라며 "단순하고 명료한 목적만 달성하면 되기에 부수적인 것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 왔던 유명 정치인도 마이크 대신 식기를 잡고 그림처럼, 바람처럼 봉사한 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이 이 대표가 기억하는 그들의 모습이다.
평균 390인 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어르신들이 적을 때도, 많을 때도 있었다. 이런 상황도 행복한동행에게 익숙하다. 음식이 남으면 개별포장해 노인회관, 경로당 등에 전달하고 음식이 부족하면 즉시 장을 봐 보충한다.
봉사자들도 봉사에만 전념한다. "봉사자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느냐"라는 말이 쏙 들어간 지도 수년이 지났다. 이 대표가 강조한 '어르신 식사' 한 마디에 85세에 이르는 최고령 봉사자도 묵묵히 따른다. 한번에 가장 많은 음식을 만들었을 때는 900인 분에 이른 적도 있었다. 회당 200인 분에 이르는 국을 끓일 수 있는 대형 솥 6개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도 있으나 무엇보다 이 대표도 인정하는 봉사자들의 봉사정신이 원동력이다.
장볼 때는 항상 발품… 인색한 현실에는 한숨
매주 금요일 오후면 이 대표와 봉사자 등은 식자재마트 등으로 장을 보러 간다. 매년 1월10일에 열리는 총회에서 연간 식단이 나오기 때문에 사야 할 것은 분명하다. 발품을 파는 일은 허다하고 인색한 현실에 한계와 염증을 느끼는 것도 이때다. 10년 넘도록 특정일 특정시간 특정장소에서 최소 390인분에 필요한 식재료를 사지만 그 어느 상인도 물건을 파는 데만 급급할 뿐이다. 고정적인 거래가 될 수 있지만 "살 테면 사보라"는 반응에 한숨만 나온다는 지적이다. 한번은 어르신들에게 제공한답시고 샀던 과일 상자가 말썽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위에는 때깔 좋고 먹음직스러웠던 것들이 아래쪽에는 물러 터져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 그릇 맛 좀 보려고 괜히 트집 잡는 사람들도 걸림돌이다.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인파는 많을 수밖에 없다. 한눈에 봐도 산책 나온 사람들이 한번씩 고집을 피우는 게 그렇다. "세금으로 운영하는 것 아니냐" "나도 세금 내는데" "어차피 어디선가 후원하는 돈으로 하는 것 아니냐" 등 오해의 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봉사자들도 서운한 감정을 감출 수는 없다. 행복한동행은 설립 당초부터 지금까지 고정적인 후원처가 없다.
오로지 후원으로, 재정은 항상 빨간불
초창기에는 이 대표가 직접 친구와 지인 등을 만나가며 후원을 이끌어 냈다.
"정신나간 사람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후원을 요청했습니다. 시청이나 시의회, 관계기관 등에 찾아가서 지원이라도 받으려고 하면 만나주지도 않았죠."
이 대표가 수년 전부터 겪었던 현실이다. 390인 분 기준 회당 130만 원 가량이 소요되는 경비는 언제나 후원에 목말라 있다.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할 수 있는 단체로 지정됐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어쩌다 한번씩 육류 등을 제공한다고 공장에서 연락이 오기도 한다. 한번은 반가운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상품성이 없는 제품 천지였다. 이 대표도 고민이 깊었으나 거절을 하기도 쉽지 않은 등 난처했던 적도 다반사다. 공짜 밥, 무료급식 등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이유도 '얻어먹을 것' 등 구걸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대표는 "어르신들이 조금이라도 서운하지 않게 좋은 재료로 우수한 음식을 만들어 전달해드린다"고 강조했다.
새해 소망은 '올해도 무난히'
30년 넘도록 봉사 중인 이 대표의 목표는 올초 예정됐던 푸드뱅크다. 사무실계약 단계에서 삐끗하면서 동력을 잃었다. 하지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이 대표는 "혼자 살면서 자식도 없으면 갈 데가 없는 게 어르신들의 처지"라며 "행복한동행은 효도배식이 없어질 때까지 봉사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흔히 먹는 밥 한 끼를 어르신들에게 전해주는 마음이 우리 사회에 일었으면 좋겠다"며 "격식과 지위고하를 떠나서 긴 일생을 살아온 어르신에 공감한다면 더 밝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해 소망은 '올해도 무난히'입니다. 효도급식이 계속되려면 저를 비롯해 봉사자들이 건강해야겠죠. 하던 일 계속할 수 있는 것, 그것이 17년째 변함없는 새해소망입니다. 2023년에도 어르신들이 아무 부담 없이 와서 식사하시고, 봉사자들도 모두 하던 대로 계속 봉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그것이 유일한 바람입니다."
한편 행복한동행은 지난 10일 이운동 운영위원장 등 회원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무역회관 4층 대회의실에서 창립 제15주년 기념 및 정기총회에 회원봉사자 및 후원회업체와 음악 재능기부를 해오고 있는 아름다운예술단 등에게 상을 수여하고 격려했다.
류수현 기자 yv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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