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황금주’가 뭐길래?…中 빅테크 기업 ‘벌벌’
3년 동안 '방역 만리장성'을 쌓았던 중국. 최근 발표된 경제 성장률 3%가 말해주듯 그로기(심한 타격에 몸을 가누지 못함) 상태에 놓였습니다.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상업 ·생산도 어려웠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당연히 올해 중국 정부의 지상 과제는 '경제 살리기'입니다. 시진핑 주석도 신년사에서 "세금 감면과 수수료 인하를 통해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국민들의 불안과 열망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경제 회생에 대한 고민을 내비쳤습니다.
이 때문에 부동산에 이어 중국 경제의 2대 축인 빅테크 기업을 새해에는 풀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실제로 중국 당국의 고강도 규제를 받으면서 앱 다운로드 시장에서 퇴출 됐던 중국판 우버, '디디추싱'이 최근 시장에 복귀하면서 이런 기대를 키웠습니다. 이른바 사면을 받은 거지요. 그런데... 반전이 있었습니다.
■'황금주' 로 좌지우지... 빅테크 기업 목줄 쥐나?
최근 중국의 사이버공간관리국(CAC)이 알리바바 미디어 자회사 르자오정보기술 지분 1%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 지분으로 뭘 할 수 있겠냐만은, 이 주식은 성격이 남다릅니다. 이른바 '황금주(golden share)'기 때문입니다.
황금주는 보유 수량이나 비율에 관계없이, 주주총회 안건에 대하여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주식을 말합니다. 극단적으로 1주만 가지고 있어도 기업의 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주식인데요. 서구권에서는 공기업을 민영화한 뒤 공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유하는 주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정부는 이 '황금주'를, 처음부터 민간기업이었던 기업에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겁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중국 정부가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 댄스와 경쟁업체 콰이쇼우,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대해서는 이미 '황금주'를 확보한 상태라고 전했습니다.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뉴스·콘텐츠 회사를 타깃으로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이 황금주로 어떻게 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까요? '틱톡' 모회사 바이트 댄스의 황금주 편입 과정을 따라가 보시죠.
2021년 중국 정부는 국영펀드 자금 200만 위안(한화 36억 4천여만 원)을 활용해 이 회사의 황금주 1%를 인수합니다. 이 황금주를 이용해 바이트 댄스 이사 3명 가운데 1명을 지명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이사로 임명한 인물은 공산당 간부 우슈강이었습니다. 우 이사는 1% 지분으로 '투자 계획', '인수합병' ,'이윤 배분'에 대한 의결권과 회사의 컨텐츠를 검열하는 '편집장'을 임명할 권리까지 얻었습니다. 정부의 입김이 고스란히 전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일각에서는 공산당 내부 인사가 이사회에 들어오면서, 알리바바의 마윈처럼 불시에 퇴출되거나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 테니 다행이라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옵니다.
■"민영도 국영도 아닌 중국형 기업"
이런 중국 정부의 행보에 우려 섞인 시선이 적잖게 쏟아집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는 "국영 기업도 민영 기업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중국 기업이 탄생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사실상 국가가 민간을 통제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중국형 기업이 황금주로만 탄생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
앞서 얘기했던 '디디추싱'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디디추싱에, 정부가 시장에서 퇴출시킬 정도의 미운털이 박힌 데는 '미국 나스닥 상장' 시도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국판 우버로 덩치를 키운 디디추싱이 신규 사업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나스닥 상장이라는 강수를 두자, 중국 정부가 중국인들의 개인정보를 미국에 유출할 우려가 있다며 막아선 겁니다.
괘씸죄에 걸려 2021년 6월 이후 앱 다운로드 시장에서 퇴출 된 디디추싱은 최근 중국 정부의 사면장을 손에 들고 다시 시장에 복귀했습니다. 디디추싱은 웨이보 공지에서 "지난 1년여 동안 우리 회사는 국가 사이버 보안 심사에 진지하게 협력하고 심사에서 발견된 보안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전면적으로 시정했다"며 중국 정부에 백기 투항 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으니 1조 4천억여 원의 벌금을 낸 것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사히 영업을 시작하는 줄 알았던 디디추싱.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중국 정부가 디디추싱의 사업 영역인 '차량 호출' 서비스와 정확히 겹치는 '강국교통(强國交通)'앱을 출시하기로 했습니다. 이 앱에는 디디추싱을 포함해 수십 개의 차량공유 업체가 입점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베이징일보는 플랫폼 제작팀의 말을 인용해 "중국 수송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게 될 것이다"고 예상했습니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플랫폼이 출시되고, 민간 영역의 차량 호출 앱들을 포괄하면서 결국 공기업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국 SNS에서는 개인의 이동 정보까지 정부에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옵니다.
■빅테크 살린다더니...국정 자문기구 '정협' 위원에서는 '배제'
중국 빅테크 산업의 미래를 점칠 수 있는 또 다른 장면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나왔습니다. 이른바 '정협'이라고 불리는데요.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단체로 법적인 권한은 없이, 각종 정책을 제안하는 '국정 자문단' 성격입니다. 지난 17일 14기 정협 위원 2,172명의 명단이 발표됐습니다. 중국 국정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책 방향키로 읽힐 수 있는데, 이 정협 위원에 '빅테크' 대기업 총수들이 대거 제외된 겁니다.
지난 13기 위원들과 비교해보면 변화가 명확합니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 창립자 리옌훙(李彥宏), 중국 2위 포털사이트 '소우거우'의 CEO 왕샤오촨(王小川)과 게임 기업 '넷이즈' CEO 딩레이(丁磊), 세계 노트북 시장 1위 '레노보' 양위안칭(楊元慶)이 14기 정협위원에는 모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유일하게 보안업체 '치후360'의 저우훙이(周鴻祎) 회장만 13기에 이어 올해도 정협 위원으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대신 코로나19 방역 전문가 2명이 새로 정협 위원에 진입했습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즈는 환경·자원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분야가 신설됐다고 소개하고, "중국식 현대화를 추구하는 데 있어 환경 보호가 근본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 정부의 복심이라는 관영 매체의 말을 해석하자면, '빅테크' 대신 '환경' 이라는 겁니다.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이 험난한 과정을 이겨내고 중국 정부의 바람대로 다시 경제를 부양할 수 있을까요? 지켜볼 일입니다.
김효신 기자 (shiny33@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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